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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보기 [2023.11~12] #2 어차피 인권은 지그재그로 나아간다

 

어차피 인권은 지그재그로 나아간다

 

2022년 8월 21일, 싱가포르의 리 셴룽 총리는 영국 식민지 시절에 제정된 악법인 동성간 성관계 처벌법(형법 377A 조항)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은 기뻐하며 마침내 거둔 성과를 축하했지만, 싱가포르 총리는 또 다른 소식도 함께 발표했다.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의회만이 법적으로 결혼을 재정의할 권리를 갖게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BBC의 보도에 따르면, 리 총리는 동성결혼은 근본적으로 법적인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이기에 이 같은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결혼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니, 무슨 뜻일까. 동성 결혼의 시행 여부는 오로지 행정부만 결정할 수 있고 사법부는 관여할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보편적 인권의 원리에 의해 동성 결혼은 금지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동성 결혼은 대체로 사법부의 판결에 의한 경우가 많다. 네팔의 경우도 지난 2023년 6월 28일, 대법원은 현행의 불합리한 법이 개정될 때까지 동성 커플과 비전통적 커플의 결혼 등록을 잠정 허용하라고 정부에 명령했다. 이로서 네팔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동성 결혼 인정 국가가 되었다. 결국 싱가포르 총리의 발표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비록 동성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은 폐지하지만 더 이상의 급진적 개혁은 없도록 정부가 막을테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싸움의 연속

 

또 다른 아시아 국가인 대만의 경우를 살펴보자. 대만은 한국과 꽤 닮은 면이 있다. 한국이 19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끌어냈다면 대만 역시 1987년에 계엄령 해제가 있었다. 독재 정권이 끝나고 민주주의와 함께 사회운동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시작된 것도 비슷하다. 대만은 2000년에 ‘인권입국(人權立國)’를 외치며 천수이볜(陳水扁)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이듬해 ‘인권보장기본법’을 제정했다. 같은 시기 한국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닮은 점은.

 

대만은 1996년에 한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의문의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성평등에 대한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떠올랐고, 이를 교육에서 강화하기 위해 2000년도에 ‘양성평등교육위원회’를 만들었다. 바로 그 해에 어느 남자 중학교에서 성소수자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학우들의 괴롭힘을 겪었던 성소수자 청소년의 안타까운 죽음은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양성평등교육위원회’는 남녀로 얽힌 성별 고정관념을 넘어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까지 넘어서야 성차별과 성폭력이 사라지고 진정한 성평등을 이룰 수 있음을 깨닫고 위원회의 이름을 ‘성평등교육위원회’로 바꾸었다. 이어서 2004년엔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교육을 실시하는 ‘성평등교육법’을 제정했다. 대만의 인권활동가들은 2019년에 아시아 최초로 동성 결혼 인정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성평등교육법의 시행으로 인해 대만의 40세 이하의 인구에게 성소수자 혐오와 편견이 줄어든 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늘 순탄한 건 아니다. 2017년 5월, 대만 법원이 동성혼 금지는 헌법에 어긋나고, 국민의 평등을 침해한다며 2년 안에 법을 개정하라고 판결한 후 동성결혼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반대하는 이들 역시 급격히 세를 키웠다. 찬반 갈등이 격해지자 법 개정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2018년에 열렸다. 민법 개정이 아니라 특별법을 따로 만들어 동성간 결혼을 인정한다는 안건이 다행히 통과했지만, 대신 성평등교육법에 기반해 학교에서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제외한다는 안건도 같이 통과되었다. 이후 학교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교육을 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싱가포르처럼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어차피 인권은 지그재그로 나아간다

 

다층적 의제가 공존하는 인권 운동 현장

 

1981년부터 시작된 ‘세계 가치관 조사’엔 국민들이 동성애자를 받아들이는지를 묻는 항목이 있다. 2차 조사에서 한국은 동성애자를 거부하는 비율이 4.16%로 나왔다.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만큼 낮은 수치다. 한국 사회의 동성애자 인권 수용치가 엄청나게 높아 보이겠지만 4차 조사에서 그 수치가 82.42%로 극적으로 높아졌다. 몇 년 사이에 한국 사회가 변한 것일까? 아니다. 2차 조사는 1990년에서 1991년이 시행되었다. 당시엔 동성애자 인권단체도 없던 시기였고, 동성애자를 상상조차 못하던 때였다. 아마도 설문 문항 자체가 응답자들에게 낯설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시작되고 사회적으로 동성애가 이슈가 되었던 1999년에서 2001년 사이에 진행한 4차 조사에서 80%가 넘게 나온 부정적 반응은 오히려 긍정적인 출발인 셈이다. 적어도 자신이 누구인지 말을 할 수 있고, 그걸 표현할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사회가 그 존재를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수치이기도 하니까. 2011년에 실시한 6차 조사에서 77.58%로 조금 줄어든 것은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작은 변화다.

 

통상 동성애자 인권 합법화 과정을 크게 3단계로 나눈다. 서구를 중심으로 보면 먼저 동성간 성행위를 범죄하하는 법 폐지, 그 다음 성적 지향 차별을 금지하는 법 제정, 세 번째 동성 결혼과 입양, 인공수정의 권리 등을 인정하는 단계로 간다. 이렇게 보면 지금 한국은 단계 구분없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남성 군인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 6항의 폐지하라는 캠페인과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그리고, 생활동반자법과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인정하라는 운동 모두 현재의 이슈다.

 

 

세계인권선언 75주년 해에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 30주년,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

 

1993년에 한국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 단체가 설립되었으니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이 되는 올해는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난 30년간 성소수자들은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을 외쳤고 억압과 차별에 맞서 싸웠다. 또한 싸움의 방식은 퀴어퍼레이드와 퀴어영화제 등 문화 행사의 개최로 연결되고, 이에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다루는 영화, 드라마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까지 부쩍 늘어났다. 이런 변화는 연극, 소설, 웹툰 등 문화적으로 풍성해졌고 또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비록 국회에서 반인권을 외치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의 눈치를 보며 여전히 차별금지법 하나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리 낙담할 것은 없다. 어차피 인권은 지그재그로 나아간다.

 

한 계단 한 계단 차곡차곡 밟아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 후퇴하고 때론 제자리처럼 보이는 길을 한없이 걸어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인권이니까 더욱 포기할 수 없기도 하다. 그러니 다시 희망을 갖는다. 내년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나라이기를.

 

 

글. 한채윤(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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