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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보기 [2023.11~12] #1 교과목에 스며든 세계인권선언

 

- 조례 공포 이후 확 달라진 학교의 모습에서 인권교육의 미래를 본다 -

 

교과목에 스며든 세계인권선언

 

‘인권’이 처음으로 사회과에 등장한 것은 1992년에 발표된 6차 교육과정에서이다. 아동 청소년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법 관련 단원을 학습하면서 인권을 배운다. 1997년에 고시된 7차 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에도 명시된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법과 사회> 과목의 7차 교육과정에서는 국제법 관련 단원의 예시로 ‘세계인권선언’이 명확히 제시되기도 했다. 2007년 개정된 교육과정에서도 초·중·고등학교에서 인권을 배운다. 이후 2009, 2015, 2022 개정 교육과정 역시 인권에 관한 학습 내용과 비중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헌법상 기본권과 함께 등장하는 교과 과정 속 인권

 

교과에서 인권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최근 고시된 2022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의 내용을 살펴보자. 초등 5-6학년의 ‘법과 인권의 보장’ 단원에서는 헌법에 규정된 인권이 일상생활에서 구현되는 사례를 조사하고, 인권 침해 사례를 찾아 해결 방안을 탐색한다. 중학교 사회2의 ‘인권과 기본권’ 단원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심화 반복하여 인권과 함께 헌법상 기본권을 배우고, 기본권 침해 사례와 구제 방법에 관해 배운다. 고등학교 통합사회2의 ‘인권보장과 헌법’에서는 중학교 때 배운 내용을 좀 더 확장하여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인권 사례를 조사하고, 국내외 인권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교육과정 속 인권은 항상 헌법상 기본권과 함께 등장한다. 인권의 개념과 중요성을 배우고, 인권 신장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법의 목적과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다. 출판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많은 사회 교과서에서 이 부분의 읽기 자료로 세계인권선언문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7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권의 지향점으로서 세계인권선언문이 계속 가르치고 배워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논쟁적인 인권 이슈, 균형있게 보는 교육 필요

 

교육과정은 학교에서 어떤 지식과 기능, 가치·태도를 길러야 하는지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 공청회만 보더라도 학교 교육과정, 특히 사회과 교육과정은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곤 한다. 교과서에 ‘인권’이 담긴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이 성숙했으며, 인권을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이는 세계인권선언과 UN 아동권리선언, 국제인권규약 등 인권보장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 우리 사회가 발맞추어 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과정과 교과서 속 인권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교육과정의 성취 기준에 맞춰 서술된 교과서는 지면에 한계가 있기에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교사 대부분은 교과서를 학생 이해 수준에 맞게 해석하고 풀어내기 위해 다양한 수업 자료를 가져와 재구성한다. 교과서 밖의 생생한 자료를 구성할 때면 교사로서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우리 사회 인권 이슈들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논쟁적인 경우가 많기에 수업 시간에 다루기 조심스럽다. 이런 문제로 인해 교과서 속 인권 단원에는 논란이 되는 내용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끝나 법제화된 권리 위주로 담겨 있다. 하지만 법으로 규정된 권리가 인권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우리 주변의 인권이 논쟁적이라는 이유로 수업에서 배제된다면 자칫 배워야 할 것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논쟁적인 현실의 인권 이슈를 여러 관점에서 균형있게 볼 수 있도록 교육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몇 년 뒤 시민으로 살아갈 아이들은 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적용되지 않는 순간도 많을 것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부족한 부분이 있을 테다. 인권과 관련된 문제를 사회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인권 감수성이 필수적이다. 같은 문제를 보더라도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각은 해결 방향에서부터 차이가 날 테니까.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면 인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 정도로만 이해할 수 있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권 문제에 대해 이기적으로 자신의 권리만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의 인권 교육은 균형있는 시각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보되, 나뿐만 아니라 서로의 인권이 함께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인권 감수성 차원에서 보면 교과에서의 인권 교육은 아직 채울 부분이 많다. 교과서 속 문장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이야기들, 예를 들어 세계인권선언을 그저 읽기 자료 중 하나로 보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과 우리 사회에 대입해 입체적으로 해석한다면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겠다. 교과서 밖에서 수업에 활용할만한 자료를 가져와 사례나 활동으로 적재적소에 재구성하는 것은 전문적인 교사의 영역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사 대상의 인권 교육 연수는 교과서가 담지 못하는 생생한 인권 교육을 함께 나누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많은 교사들이 인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수업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도움이 되는 연수를 수강하고 교재 연구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분위기가 인권 친화적으로 더 진전된다면 교과서에 담기지 못한 인권까지도 교사를 통해 채우고, 가르쳐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과목에 스며든 세계인권선언

 

조례 공포 이후 확 달라진 학교, 학생인권 조례는 꼭 필요하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지만, 학교 문화 속에서도 여러 가지를 배운다. 인권 수업뿐만 아니라 학교생활 속에서 인권을 느끼며 배우고 있다. 필자가 초임 발령을 받았던 15년 전만 해도 많은 교사가 지시봉을 들고 다니곤 했다. 그 막대기로 체벌을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에서의 체벌을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서서히 분위기가 바뀐 것이 아니라 어느 한순간에 바뀌었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확 달라졌다. 바로 학생인권조례 공포 이후부터이다. 서울시의 경우 2012년 조례가 제정·공포되었는데 체벌에 대한 학교 구성원들의 온도 차가 2011년과 2012년 사이에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이 조례에 따라 학내 두발과 복장 기준 등을 담은 학교생활 규정이 과거와 달리 크게 완화된 학교가 많아졌다. 현재는 교권과 대립하는 것처럼 해석되고 있어 안타깝지만,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에 준 영향력은 정말 컸다. 이것 역시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인권선언의 영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선언과 합의, 협약, 조례 등을 통해 인권을 지키려는 인간의 노력은 계속되어왔고, 그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도, 그리고 학교도 변화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해 가야할 것이다.

 

 

인권교육 갈 길 멀지만 계속 되어야

 

학교는 우리 아이들이 인권을 머리와 가슴, 그리고 온몸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교실에서 인권을 가르치고 있는 사회 교사로서, 그리고 필자뿐만 아니라 인권 교육을 하는 모든 교사에게는 밝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학교 안에서의 인권 교육은 갈 길이 멀고, 우리 주변에는 함께 풀어야 할 인권 숙제들이 많다. 인권 현안들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아직 인권이 닿지 않은 곳의 새로운 인권 문제를 스스럼없이 꺼내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권 교육은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공감해 주신다면 교육과정은 물론 학교 현장에서 인권 교육이 더 활발해질 것이라 기대한다.

 

 

글. 선보라(북악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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