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바로미터 [2023.09~10] 영화 ‘수라’를 통해 본 국책사업과 인권
새만금 사업은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건설해 바다를 막고 갯벌을 없애는 사업인 만큼 생태계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삶에 미친 악영향이 어마어마하다. 영화 ‘수라’(감독: 황윤)는 새만금 사업으로 죽어간 생명들의 절규, 20년째 새만금을 지키고 변화를 기록해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활동상, 아직 살아남아 있는 수라 갯벌과 그곳에 깃든 아름다운 생명들을 생생하게 담아내 호평을 받고 있다.
많은 관객들은 특히 기억에 남는 영화 속 장면으로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떼죽음 당한 조개들과 직업을 잃은 전직 어민들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손꼽는다.
“옛날 생각 나지. 막아서 그렇지, 여기가 원래 바다였어요. 조개껍질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 그립네.”
꿈속에서도 갯벌에서 조개를 캔다는 여성 어민들은 갯벌을 그리워하며 주루룩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전직 어민들은 갯벌을 막은 방수제에서, 간척사업을 한 농어촌공사가 주는 풀베기 일을 하면서 한달에 겨우 20~30만원을 번다고 한다.
“이거이거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달 일해야 돈 20~30만원이에요. 이게 뭐하는 거래요. 정말로 죽고만 싶어요. 죽고만 싶어.”
울먹이며 이야기하던 남성 어민 강희정 씨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전북 지역 최초의 국책사업, 새만금 개발 사업은 경제성이 없어 추진 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1987년 12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선심성 공약에 포함되어 되살아났다.
1991년 11월 착공 당시, 농경지와 수자원 확보를 목표로 28,300ha의 토지와 11,800ha의 담수호를 2004년까지 조성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목표가 수차례 변경되었고, 지금까지 지역 발전에 뚜렷한 기여도 없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갯벌 파괴 공사가 30여 년째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사업으로 일터를 빼앗기고 직업을 잃었을 뿐 아니라 목숨까지 잃은 어민들도 있다. 여성 어민 류기화 씨는 카메라 앞에서 “어제는 7만 5천원, 어제 그제는 굵은 거 잡아가지고 12만원 벌었지. 에휴, 이런 직장 다 빼앗기니 억울하지”라고 말했다. 그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 현장에 드러누워 목숨 걸고 저항하기도 했고 청와대 앞에서, 방조제 공사 중단을 위한 재판이 열리는 법원에서, 조개를 잡는 도구인 그레를 들고 시위도 했다. 그러다가 방조제 공사를 한 농어촌공사가 예고 없이 방조제를 여는 바람에 갑자기 들어온 바닷물에 휩쓸려 앞마당처럼 익숙하던 갯벌에서 목숨을 잃었다. 류기화 씨의 장례를 치르며 “누가 바다를 막으라고 했어”라고 울부짖던 여성 어민 등 슬퍼하는 지역 주민들의 모습도 영화 ‘수라’에 담겨 있다.
필자는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의 일원이 되어 지난 20년 동안 새만금 지역 주민들을 수없이 만났다. 새만금 사업 때문에 살기 좋아졌다고 이야기하는 주민을 만난 적이 없다. 바다가 죽고 일자리를 잃었으며, 원치 않는 이사를 해야 했고 생계가 어려워졌으며, 매립지에서 날아온 미세먼지 때문에 비염이 심해지고 창문도 못 열고 지낸다는 호소 등 문제투성이, 절망스러운 이야기뿐이었다.
어민 김현철 씨는 새만금 방조제가 완성되고 나서 직업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바다가 막혀버려 일터를 잃었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 세칭 ‘노가다’에 뛰어들었다. 현장에 가서 보니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새만금 방조제 보강 공사였다. 새만금 방조제를 당장이라도 폭탄을 짊어지고 가서 터뜨려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방조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일에 동원되다니 한숨이 나왔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 다시 어업을 시작하고 싶었다. 배를 없애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어선 감척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큰 돈을 들여 잘 수선한 배는 바닷가에 묶어두었다. 바다가 살아나는 날을 기다렸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오랜만에 배를 묶어두었던 곳에 함께 찾아가보니 바로 옆으로 도로가 났고, 배는 육지 위 수풀 속에서 낡아가고 있었다.
이렇듯 대규모 국책사업, 새만금 사업은 많은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일찌감치 이와 같은 피해를 예견하고 새만금 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한 소송들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다 패소했다.
지난 2001년, 새만금 갯벌 주변 지역에 살고 있는 어민, 주민들과 전국의 시민·종교단체 인사들 3,640명이 새만금 사업이 헌법상 환경권과 직업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헌법소원 제기했으나 헌법재판소는 청구를 각하했다.
지난 2000년에는 만 18세 미만의 어린이·청소년들 200명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현 세대는 미래세대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래세대가 누려야 할 자연자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으며 정부라 할지라도 공공의 이익에 반하여 자연자원을 처분할 수 없다”고 문제제기했다. ‘미래세대 소송’으로 일컬어진 이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미래세대는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다.
자연이 파괴되면 인권도 지켜질 수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연자원은 현 세대만의 소유물이 아니며 어느 한 지역의 전유물도 아니라는 문제제기, 새만금 사업이 미래세대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호소가 당시에 받아들여졌다면, 20여 년이 흐른 2023년 여름, 수만 명의 전세계 청소년들이 갯벌을 파괴하고 급조한 새만금 잼버리 행사장에서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탄식만 나온다.
국민들은 국책사업을 명분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정부를 심판해달라고, 사업을 멈춰달라고 법정에서 최후의 호소를 해보지만, 사법부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책사업을 반대한 주민들에게 정부가 구상권을 청구하는 소송이 제기된 적도 있었다. 2007년 4월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하자 많은 제주도 강정마을 주민들과 단체가 반대 운동에 나섰다. 그중 700여 명이 연행되었으며 500명 가까이는 범법자로 내몰려 사법 처리되었다. 벌금도 수억 원을 내야 했는데, 해군은 2016년 2월 기지가 완공된 뒤 강정마을 주민과 단체를 상대로 34억여 원의 손해배상(구상권) 청구소송까지 냈다. 국책사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최초의 사례다.
여야 국회의원 165명이 ‘구상금 청구소송 철회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각계의 비판이 잇따르고 법원도 조정안을 제시하자 소송을 제기한 지 한참 뒤인 2017년 12월에야 정부는 소송을 철회하긴 했다. 그러나 정부가 하는 일에 함부로 반대하지 못하도록 본때를 보이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한 부끄러운 기록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조 단위 예산이 소요되는 대규모 국책사업들은 대부분 선거를 앞두고 공약 사업으로 등장한다. 법에 저촉되어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워지면 무리하게 특정 사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한다. 보수는 ‘경제성장’을 앞세우고 진보는 ‘지역균형’을 명분 삼아 행정 절차도 무시하고, 자연을 파괴하고 약자를 착취하는 개발사업을 정당화한다.
무리한 국책사업 추진의 폐해를 목격한 우리 국민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국책사업을 미끼로 표를 챙기려는 정치꾼에게 속지 않도록, 깨어 있는 유권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하는 일을 어떻게 막겠느냐고 체념하지 말고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감시하고 끝까지 문제제기해야 한다.
자연이 파괴되면 인권도 지켜질 수 없다는 사실, 무리한 국책사업은 결국 망국의 길이며 국가적 위상도 추락시킨다는 것을 새만금에서 파행적으로 진행된 잼버리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똑똑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소 잃었으면 늦었지만 외양간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국가는 힘이 없고 저항이 없는 곳을 찾아 국책사업을 추진합니다. …(중략)… 처음에는 주민들의 동의가 없으면 추진하지 않겠다며 주민을 안심시킵니다. 그 다음에 일부 주민을 돈으로 매수하여 분열을 일으키며 마을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계속 저항하는 사람에게 협박하고 각개 격파하여 고립시킵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법과 공권력을 동원하여 힘으로 밀어부칩니다. 국가사업의 배후에는 대개 재벌이 운영하는 토건세력들이 숨어 최고의 이익을 가져갑니다.”(출처: 한상욱, “전국에서 목격한 국책사업 추진방식은 똑같았습니다”, 오마이뉴스, 22.04.19.)
국책사업으로 고통받는 전국 곳곳을 순례한 한 활동가의 지적을 정치권과 정부는 뼈 아프게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글. 정희정(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문화팀장)
사진. 영화 ‘수라’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