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023.09~10]
전환 산업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은 있는가
노조의 위기, 노동 소외 심화를 부른다
신성목 금속노조 만도지부 수석부지부장
기후변화 시대, 폭염이 한풀 꺾인 가을의 한낮이면 지난 여름의 고통을 잊는다. 힘든 기억은 잊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때로는 그런 망각이 있음에 감사하다. 그래도 지난 여름 지하 차도에 갇혀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가족들, 폭염에도 농사일을 포기하지 못해 논밭으로 나갔다가 쓰러진 노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짧은 가을의 평온함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사람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이상기후를 막을 수 있는 길이 더욱 요원하게 느껴진다. 매년 여름과 겨울, 날씨로 인한 사건 사고가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 기후위기에 맞설 의지를 잃기도 쉽다.
이상기후로 인한 직접적인 신체적, 재산적 피해만이 기후변화로 인한 인권 피해라고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서서히 진행되는 거대한 산업 전환의 흐름 역시 한 개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삶의 변화로 작용한다. 전환의 방향, 속도가 예상된다면 사회는 개인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거대한 전환의 파도가 덮칠 것을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낙오되는 이들을 보면서도, 사회가 눈을 감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노동조합에서 정부와 기업들을 향해 ‘기후변화 시대, 전환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 노동자 역시 대표적인 전환 노동자이다. 모듈화(몇 가지의 부품을 조립하여 큰 덩어리의 부품으로 만드는 방식), 전동화(모터와 센서, 중앙처리장치로 구동하는 방식)로의 변화는 기존 석유 기반의 내연기관차량의 전면적 쇠퇴와 함께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기계공업의 꽃이었던 자동차 산업은 이제 전기차 시대를 맞아, 전자나 소프트웨어 관련 기술 확보와 전기차 생산 라인 설치와 재교육과 신규 채용 등으로 거대한 전환의 한가운데 놓여있다. 다만 그러한 전환은, 기존의 여러 모순들과 뒤얽혀 나타나기 쉽다. 현실의 여러 모순에 놓여 있다 보면 당장의 어려움과 문제점에 압도돼 거대한 전환에 대비하지 못하기도 한다.
신성목 금속노조 만도지부 수석부지부장은 그런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26살이었던 1995년부터 자동차 부품사 만도기계(현 HL만도)에서 줄곧 일해 온 그는 지난 28년 동안 한국 자동차, 부품 산업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을 모두 느껴왔다. 지난 21일 늦은 오후 평택역에서 만난 그는 기후변화로 인한 삶의 변화에 대해 “관심은 큰데 내가 주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당장 처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버겁다”라고 말했다.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이 없으신가요?
“관심이 없지 않죠. 다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제, 대기업에서 우선 나서서 해야 하는데 의지가 없어 보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을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회사가 기후변화 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느끼시는 이유는 뭔가요?
“왜냐하면 주변에 달라진 게 별로 없거든요. 말로는 탄소중립을 한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느낄 때에는 달라지는 게 없어요. 익산 공장은 주차장에 태양광을 설치했는데 제가 있는 평택 공장에는 아직 추진하지 않았어요. 그냥 임원들 차만 전기차로 바뀌는 정도에요. 말로는 위기라고 하지만 실감할 수 있는 변화는 적어요.”
그동안 어떤 일을 하셨나요?
“ABS(Anti-lock Brake System, 브레이크 잠김 방지 장치) 조립 일을 했어요. 블록은 손바닥만 해요. 펌프, 모터, 밸브 등이 달려있는데, 자동차가 제동했을 때 빙판길 같은 데에서는 미끄러질 수 있으니까 제동장치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 회전수를 맞춰주면서 잘 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예요. 바퀴를 잡았다가 떼었다가 하는 역할을 하죠. ABS 가공도 잠깐 했고 이후로는 쭉 품질관리팀에 있었어요. 보통 자동차 부품은 3년, 6만 km 이내 주행했다면 무상으로 AS를 받을 수 있습니다. AS로 부품이 교체되면 교체된 부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분석하는 일을 쭉 했어요.”
지난 28년 동안 자동차 산업이 전환되어 오면서 작업이 조금씩 달라졌을 것 같아요. 전기차로 바뀌면 현장 노동자들이 하는 일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완전히 전동화가 되면, 브레이크에 오일이 안 들어가요. 그럴 경우 부품이 대폭 줄어요. 아직은 내연기관차나 하이브리드 차량이 나오고 있지만, 완전히 전기차만 생산하게 되면 컴퓨터 제어장치가 네 바퀴를 제어하고, 네 바퀴에는 독립된 모터가 달린 제동장치만 있으면 됩니다. 지금 내연기관 차량은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힘을 증폭시키는 부스터가 있고, 마스타에서 유압을 네 바퀴에 달린 캘리퍼로 전달해 디스크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제동을 하지요. 그런데 이제 ABS와 마스타부스터 등 관련 부품이 하나로 통합돼 컴퓨터 제어 장치가 통제합니다. 그걸 IDB((Integrated Dynamic Brake, 통합 제동 장치)라고 하는데, 3개 정도의 부품이 하나로 통합되니까 과거보다 적은 인원으로 생산이 가능해집니다. 물론 전기차 생산량이 늘어나면 교대 근무자들도 더 필요할 수 있지만, 과거보다 적은 인원으로 운영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기후변화가 개인의 삶을 바꿔 가는 모습은 단순하지 않다. 서서히, 그러나 방향을 거스를 수 없다. 자동차와 평생을 함께 한 그도 변화에 적응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미 무너져 내린 노사 불평등한 권력 관계 속에서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거나, 근무 시간을 일방적으로 조정하는 정도의 변화가 오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전환 과정을 쫓아가느라 완성차 회사가 작은 부품 회사를, 또 회사가 노동자들을 배려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과거 지나온 일들에 비춰서 충분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내다봤다. 기후변화 시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중첩된 위기라고 그는 말한다.
회사의 구조조정 소식이 있던데요. 지금 만도지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인가요?
“올해 초 회사가 일방적으로 문막 공장에서 희망퇴직을 받았어요. 36명 정도가 나갔어요. 다 기능직 사원들이죠. 2016년에도 100명 가량 희망퇴직을 받았어요. 문막 공장은 조향 장치를 생산합니다. 문막 공장은 다양한 부품을 자체 가공하고 조립해왔는데 전동화 추세에 따라 수동 제품들이 급격하게 퇴출됐습니다. 조향장치는 차량 당 부품 수가 적은데 전동화가 되면서 더 줄어든 거죠. 회사는 2019년 사무직 희망퇴직을 진행하면서 ‘육참골단’(자신의 살을 내어주고 상대방의 뼈를 자른다)하는 마음으로 인력을 축소했고, 연이어 2020년에도 전 공장에서 기능직 희망퇴직을 진행했는데, 경영부실의 책임을 직원들에게 전가한 점, 희망퇴직 이외에 전환배치,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해소할 여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회사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아요.”
만도 사람인 그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회사가 부도가 나고 정몽원 회장이 물러나는 것을 목격했다. 정몽원 회장이 10년 만에 회사를 다시 되찾았고 세계 부품사 50위의 목표는 이루었지만, 2012년 직장폐쇄의 상흔은 노동자들에게 남았다. 노사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강성 노조로 꼽히는 만도는 직장폐쇄 후 힘을 잃어갔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2016년 회사는 경총에서 수여하는 노사협력대상을 받았다. 노사가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2년~ 2015년까지 약 40%의 누적 생산성 향상을 이뤘다며 자랑하는 공적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는 “직장폐쇄 이후 다수가 참여하는 기업노조와의 교섭이 중심이 되고 소수노조인 만도지부와는 형식적으로 교섭한다. 노조 활동은 어려운 조건이다 보니 회사가 압도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구조”라며 “자동차 부품 시장은 완성차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주요 고객사는 어디인가요?
“제품의 46~48%는 현대차그룹(현대차, 기아)으로 가죠. 제너럴모터스나 테슬라로도 가고요. 만도 공장이 중국, 인도, 미국에도 있습니다.”
완성차 회사와 부품사의 관계는 어떤가요?
“완성차와 1, 2, 3차 부품사 관계는 기술도, 자본도 종속적이에요. 특히 지금은 완성차-현대모비스-부품사로 계열화된 상황이에요. 과거에는 만도 제품이 완성차로 직접 납품했다면 이제는 모비스를 거쳐서 모듈형태로 완성차로 납품됩니다. 이게 다 모비스의 출현으로 부품사가 한 단계 하청으로 밀려나는 건데, 부품사들은 수익이 나빠지는 거죠.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단가를 인하하라고 하고 있고요.”
완성차 회사나 본사, 정부가 전환 노동자들을 위해 무슨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종속 구조부터 변화시켜야 해요. 전환 과정에서 완성차 회사와 부품회사가 상생하는 것을 모색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대로라면 부품사들은 점점 어려워지고 노동자들 처우도 나빠질 수밖에 없어요. 완성차는 부품사 단가 인하를 통해 수익을 더욱 창출하고 그 일부를 성과급 체계로 노동자에게 보장한다는 점에서 노사가 성과급 공동체가 되는 것 아닌가 싶네요. 2차 하청업체 역시 3차 하청업체를 더욱 쪼는 거죠. 2000년도 이후 확산된 성과급 체제는 결과적으로 자본의 규모에 따라 노동자들의 차이를 극대화시켜 분열로 흐르게 됩니다.”
신 수석부지부장은 생산라인을 전동화 라인으로 바꾸면서 근무 체계가 바뀌었다고 했다. 주간 2교대제로 근무해오고 있지만, IDB 신규 생산 라인을 깔면서 근무 형태를 3교대로 바꾸고 노동자들은 24시간 근무하게 되었다. 신규 채용이나 기존 노동자들의 재교육 없이 라인증설을 최소화하고 노동 시간만을 바꾸는 식으로 생산량을 늘려가는 게 현재 회사의 방침이며 다른 부품사들도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기차 전환 시대, 부품사(부품사 노동자들)에게는 기회일까요, 위기일까요?
“양 측면이 다 있다고 생각해요. 하청으로 가면 갈수록 우선 자본이 전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만큼 위축이 되죠. 하지만 전동화로 부품이 통합되면 그만큼 더 정밀한 작업이 필요하며 높은 품질 수준이 요구됩니다. 노조가 교섭력이 높다면 라인을 재구성하거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식으로 일자리를 나누는 등 기업의 투자를 극대화하고 직원들에 대한 교육을 확보한다면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도 역시 교섭력이 높다면 라인 증설을 최소화하고 3교대로 운영하는 일은 없었겠죠. 그런데 저희는 노조도 분할되어 있으니 협상력이 떨어지는 거죠.”
회사 차원의 전환 교육은 따로 없었나요?
“예전부터 교육은 거의 없어요. 제가 생각할 때, 회사는 파레토 법칙(8대2)에 머물러있어요. 주도적인 2명만 있으면 이들이 이끌고 가고 나머지가 따라가면 된다는 식이죠. 사무직 1명과 기능직 100명을 바꾸지 않겠다는 전임 회장의 발언이 아직도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 고민은 무엇입니까?
“지금 회사는 기능직을 뽑을 생각을 별로 안 해요. 제가 평균 근속에 평균 나이 정도예요.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을 해온 시기에 입사해서 청춘을 보낸 1965~66년생들이 은퇴할 시점이 다가오는 거예요. 회사는 전환기를 맞아 공정이 슬림화되니까 이제는 퇴직자가 생겨도 신규채용 없이 버티는 겁니다. 기능직 채용을 안한 지 10년이 넘었어요. 전체 직원 수는 변동 없는데 기능직만 줄었으니 사무연구직만 늘어나는 겁니다. 전기차로 전환되면서 부품이 줄어드는 만큼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예요. 다만 젊은 노조원들은 고민이 많죠. 이대로 정년을 할 수 있을까. 선배들은 정년퇴직하겠지만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거죠.”
복잡하게 나뉘어버린 전선은 답을 찾아가기 어렵게 한다. 신 수석부지부장은 그 점을 애석해했다. 그는 풀꽃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다고 했다. 서울이 고향이지만, 제2의 고향인 평택에서의 삶에 만족한다. 그러나 그가 건네 준 2030년까지의 브레이크, 스티어링, 서스펜션 등 부문별 만도 기능직 노동자들의 정년퇴직 예정표를 보면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전환기 자동차 산업 현장에서 계속 일을 해야만 한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국가가 짠 큰 틀 안에서 무가치하게 부품처럼 일을 하는 노동 소외 현상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국가와 정부, 산업계가 해야 하는 일은 분명하다. 그와 그의 동료, 후배들이 능동적으로 이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이어야 한다.
글. 최우리(한겨레 기자)
사진. 전재천(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