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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톺아보기 [2023.01] 기후위기가 곧 인권이다

녹취와 정리. 김민아(편집부)

 

인권위는 지난 1월 초,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이다'라고 정부에 의견을 처음으로 표명했다.
[인권] 편집부는 그동안 예민한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기록해온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를 만나 기후위기는 왜 인권의 문제인지와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대담 김현주(국가인권위원회 사회인권과)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

 

Q(김현주 이하 김). 인권위는 지난 1월 초,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이다’라고 정부에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인권위 의견 표명, 어떻게 보셨는지요.

A(조효제 이하 조). 기후위기는 이제 경제와 산업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의 근본이 되는 문제인데요, 이것을인권으로 다룰 문제라고 공식화한 것은 역사적인 선언이었다고 봅니다. 세부적인 권리들 외에도 모든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한 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Q(김). 이제 첫걸음을 뗀 격인데요, 구체적인 정책 제도개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A(조). 정책을 어떤 방식으로 볼 것이냐에 달려있겠죠. 기후 피해를 본 분들의 민원을 직접 다루는 활동도 있을 수 있고, 인식 전환에 해당하는 높은 수준의 정책 변화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인권위가 이 둘의 균형점을 잘 찾으면 좋겠는데 아마 전자는 구체적으로 개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후 문제를 인권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기본 전제 자체를 낯설어합니다. 기후에 관심이 많은 현직 교사들을 만나면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이야기보다 기후위기가 곧 ‘인권’이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만 해도 대단한 일을 하시는 거라고요. 그런 면에서 인권위의 이번 권고는 우리 국민들이 ‘기후위기가 인권의 문제구나’라고 인식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Q(김). 기후위기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중요해지는 대목인데요. 교육과 홍보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면 좋을까요?

A(조). 기후 문제를 교육적으로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기후위기가 도래했는가, 화석연료에 기반한 무한성장 경제 시스템이 오늘날의 위기를 조성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문제 인식이지요. 이제 기후위기가 없다고 부정하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그래? 그렇다면 과학기술로 해결하면 되겠네, 지금처럼 흥청망청 생산과 소비를 하면서도 탄소만 줄이면 되겠네”라는 식의 생각은 여전해보입니다. 이런 생각 속에 숨어있는 함정을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열어 보이면서, 현 시스템으로는 장기적으로 인권이 보장될 수 없다는 점을 설득해야 합니다.

 

Q(김). 선생님께서는 저서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에서 생태와 생물다양성을 특히 강조하셨는데요. 기후위기 문제를 탄소 감축에만 국한하지 않고, 보다 종합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관해 설명을 덧붙여 주실 수 있을까요?

A(조). 기후위기를 탄소 감축, 에너지 전환 문제로만 국한 지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에너지 전환과 탄소 감축은 시급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조건에 해당할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화석 연료를 줄이면서 다른 에너지나 다른 생태자원은 펑펑 써도 되는 걸까요, 우리는 이미 생태 한계를 초과해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후위기를 탄소 감축이라는 좁은 틀에만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콘센트에 들어와 있는 전기가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깨끗한 전기라고 합시다. 그러면 깨끗한 전기로 충전한 전기톱으로는 숲의 나무를 마구 잘라내도 좋을까요? 이처럼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것과 탄소 감축을 함께 결부시켜 생각하지 않으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게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고 봐요. 생태나 환경 전체를 고려한 기후 정책이 아니라 탄소만 줄이면 된다는 식의 기술 관료적인 접근 방식을 저는 ‘영혼 없는 탄소 감축’ 정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홍기빈 박사님은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는 의미가 없다”라고 하셨어요. 동쪽으로 가야 하는데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뛰어가면, 뛰어갈수록 가고자 했던 곳과는 멀어지는 것처럼요.

따라서 2050 탄소중립은 에너지 전환과 동시에 생태적인 문제를 함께 결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 가야 합니다. 1992년 리우 환경 회의 때부터 국제사회는 기후 문제와 생명다양성 문제를 함께 다뤄 왔습니다. 최근 몬트리올 생물다양성 회의에서는 2030년까지 전 지구의 30%를 생태친화적으로 만들자고 하는 ‘30X30 원칙’을 확립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2022년 11월의 이집트 기후변화 총회는 많이 보도했지만, 12월의 몬트리올 생물다양성 총회에는 무관심했습니다. 한국은 이제 겨우 기후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수준인 거죠. 말하자면 두 바퀴로 가야 하는 수레인데 이제 바퀴 하나를 끼운 상태랄까요.

 

‘924 기후정의행진’ 모습 _ 2022. 9. 24(출처: 924 기후정의행진 영상 캡쳐)
‘924 기후정의행진’ 모습 _ 2022. 9. 24(출처: 924 기후정의행진 영상 캡쳐)

 

Q(김). 생태문제는 지구적 관점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어서 한 국가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권위는 어떤 노력을 더 해야 할까요?

A(조). 국가인권위는 국가 안에 있는 국제적인 기구라는 정체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각국의 국가인권위원회들이 전 세계 시민들, 인권단체들과 연대하는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인권 문제로 풀어내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 접점을 지난 2022년 9월 24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보았습니다. 이 행진에서 ‘정의’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환경과 인권 담론을 연결시키는 일종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라서 의미가 큽니다. 그런데 기후정의행진과 인권위 결정문이 석 달 시차를 두고 나왔더군요.

후대 역사가들이 2022년 말 한국 사회에서도 인권과 환경이 밀접하게 연결되는 역사적인 접점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겁니다. 결과적으로는 인권위가 패러다임 전환의 꼭짓점에 있었던 셈이지요.(웃음) 우리 인권위가 아태지역 국가인권기구연합(APF) 의장국이 되었습니다. 기후취약국들이 많은 아태지역에서 기후-인권에 관해 리더십을 발휘할 좋은 기회입니다.

 

Q(김). 결국 기후위기가 인권의 영역이라는 것인데요. 국제사회는 어떤가요?

A(조). 2008년에 이미 유엔인권이사회의 결의안이 나왔고요.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하셨던 메리 로빈슨 선생은 퇴임 후 기후 정의 재단을 설립해 활동하셨습니다. 작년까지 유엔 인권최고대표셨던 미첼 바첼레트 선생 역시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상실, 공해 독성 물질의 문제를 전 세계 인권의 3대 위협요소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2022년에는 유엔 총회에서 ‘건강한 환경인권’이 보편적 인권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인권운동과 환경운동이 연대해서 활동하는 경우도 늘어났습니다.

 

Q(김). 국제사회 흐름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왜 기후위기 문제를 더디게 받아들일까요?

A(조). 인지적 용량 이론이란 게 있습니다. 인도의 농민들을 상대로 한 연구를 보면 농민들이 겨울과 이듬해 봄까지는 그런대로 살아가다가 가을 추수가 되기 직전 식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하면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비합리적인 결정이나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더라는 거예요.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연구자들은 인지적 용량에 여유가 없어서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사람들의 평균적 인지적 용량이 100이라고 할 때, 여유가 있고 고민이 적으면 비어있는 공간이 큽니다. 이성적인 선택이 가능하죠. 하지만 100중 95를 눈앞의 고민과 결핍 문제로 씨름해야 한다면 다른 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지는 거지요. 목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어떤 이야기도 머릿속에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차별이나 혐오가 심한 사회에서는 기후나 생태와 같이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문제가 머릿속에 들어오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이 없거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참사가 잦은 나라에서는 장기적 위기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습니다. 기후 환경문제는 차별, 불평등, 노동, 젠더, 생계, 안전 등의 사회적 문제들과 함께 접근하지 않으면 대중의 호응을 받기 어렵습니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그렇습니다.

 

Q(김). 긴 호흡으로 가자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A(조). 그렇지요. 당대적 감수성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역사적 감수성이 있어야지요. 기후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듯이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후 문제는 탄소 농도가 한참 높아진 후에 본격적으로 위기가 나타나는 ‘시간 지체’의 특징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탄소 농도를 낮춰도 기온이 안정화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해요. 다시 말해 기후위기는 굉장히 길게 보면서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문제인 겁니다. 그런 긴 과정에서 더욱 커질 약자들의 고통에 대해 인권운동이 지속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Q(김). ‘네이밍’(이름 짓기)에 따른 인지적 효과가 큰 거 같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 등을 보면 탄소중립 그 자체가 기후변화 극복이라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조). 중요한 지적이라 생각해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법의 명칭에 ‘성장’이라는 말을 넣을 정도로 우리는 경제성장 지상주의적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로마 격언에 “이름이 전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충족적 예언인데요, 이름 붙이는 순간 현실이 따라간다는 거죠. 우리도 네이밍 전략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태풍의 이름을 붙일 때 예를 들면 ‘엑슨모빌 태풍’이라고 붙일 수도 있겠죠.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해요. 건설적인 움직임에 좋은 네이밍을 부여하는 것도 좋고요. 네이밍과 연결하여, 미디어 문해력도 비판적으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폭우로 인한 반지하 거주 문제에 대해 보도는 많았지만 이걸 기후위기와 본격적으로 연결시키는 보도는 적었습니다. 발화된 것보다 발화되지 않은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어요. 또한 정치인들의 발언을 듣고 “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까?”라는 비판의식을 작동시켜야 합니다. 결여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김). 마지막으로 인권위에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A(조).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인권위가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습니다. 교육, 홍보, 개인진정, 정책 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제 역사적인 첫발을 떼셨는데,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시작이 반입니다. “기후위기가 인권의 문제이다”, 그리고 “건강한 환경 자체가 중요한 보편 인권이다”라는 점을 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게 안내할 수만 있어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연관해서, 기후-생태위기와 사회적 고통인 인권 문제를 함께 연계시켜 접근하는 구도를 처음부터 확실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둘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점을 못 박아 두어야 합니다. 모든 변화는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면서 일어납니다. 기후위기는 시스템과 구조적 조건 때문에 인권이 침해되는 문제입니다. 인권 교육에서도 개별적인 침해를 넘어 시스템과 구조의 문제까지 볼 수 있게 하는 시각이 굉장히 중요해졌습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이며 한국인권학회장입니다. 하버드대 인권펠로와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준비기획단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탄소 사회의 종말」,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인권의 최전선」, 「인권 오디세이」 등이 있습니다.

 

* 대담을 진행한 김현주 님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후위기와 인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 인권위가 의견표명한 기후위기 골자는 인권위가 말하다1(32p-33p)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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