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22.06] 가장 오래되고 친숙한 콘텐츠, ‘군 예능’에 대하여
글 조서연(문화연구자)
매주 방영되는 ‘필승’과 ‘충성’
한국 최초의 공개 예능 방송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답은 1961년 10월 22일에 제작되어 다음 날 라디오로 방송된 국군방송 〈위문열차〉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예능 프로그램은? 역시 답은 현재까지도 방영 중인 〈위문열차〉다. 지금은 국방TV 케이블 채널과 국방FM 등 일반인에게는 인지도가 높지 않은 채널로 방송되고 있지만, KBS나 MBC의 전파를 사용했던 시기의 〈위문열차〉는 가수, 코미디언, 배우를 막론한 당대의 톱스타들이 출연하는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이자 신인 연예인들의 스타 등용문으로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위문열차〉 외에도 1980년대 후반~1990년대 각 가정의 주말 낮 TV 화면을 차지한 MBC 〈우정의 무대〉나 2010년대 MBC 주말 예능의 부흥을 이끈 〈진짜 사나이〉 시리즈, 작년부터 큰 화제를 모으며 시즌을 거듭하고 있는 채널A의 〈강철부대〉에 이르기까지, 군 예능 방송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콘셉트를 달리하며 시청자들의 일상 속 한자리를 차지해 왔다. OTT와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방송 콘텐츠 시청이 대세를 이루는 요즘에는 방송국의 편성표가 사람들의 생활 리듬에 예전만큼 큰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매주 새로운 군 예능 에피소드가 공중파 및 영향력 있는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송출되고 다양한 플랫폼으로 시청되며 대중적으로 널리 회자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군대의 존재감이 한국 사회의 일상에 얼마나 오랫동안 깊이 스며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바다. 이처럼 군사적인 생활 양식과 사고방식이 개인과 사회 공동체에 의식되지 않은 채 스며들어 있는 현상을 전문가들은 ‘사회의 군사화’, ‘일상의 군사화’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군 예능 방송은 병영과 민간을 넘나드는 한국 사회의 군사화에서 어떤 역할을 어떻게 담당해 왔을까?
<강철부대2> 영상 캡쳐(제공:채널A)
〈위문열차〉에서 〈강철부대〉까지, 60여 년의 변화
군 내 문화활동의 효과에 대한 남복희의 연구에 따르면, 군에서 이루어지는 방송은 군 관련 소식을 국민에게 알리는 ‘보도’ 기능과 장병들의 사기를 높여 ‘정신전력’을 강화하는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위문열차〉나 〈우정의 무대〉와 같은 군부대 위문 방송이 바로 이 두 기능에 충실한 사례다. 전국 각지의 군부대를 매주 방문하여 인기 연예인들의 쇼 무대와 해당 부대 장병의 장기자랑 및 여러 이벤트 코너를 선보이며 군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사기를 높이는 한편, 각 부대의 특징과 전력 등을 국민 대중에게 선전하는 것이다. 징병제 하의 현역 군인들에게 다양한 문화활동과 여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군 당국이 제공해야할 복지의 일종이며, 위문 공연은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위문 공연 형태의 방송이 군 장병을 겨레의 장한 아들이자 이성애자 남성으로, 시청자인 국민 대중을 전방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을 모성과 여성성으로 위로하는 어머니와 애인으로 성별화하면서 이들 모두를 군사화된 국민으로 호출해 왔으며, 이것이 일상적으로 반복되어 왔다는 점이다.
시절이 변하고 시청자 대중의 선호도가 달라지면서 위문 공연 예능은 민간 방송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국군방송 〈위문열차〉는 사실상 현역 장병을 한정적인 대상으로 삼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러나 군 소재의 예능 방송은 MBC 〈진짜 사나이〉 시리즈를 통해 오히려 화려하게 부활했다. 〈진짜 사나이〉 시리즈는 관찰형 예능이 유행했던 2010년대의 대표적 콘텐츠로서,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병영 체험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총 네 개의 시즌을 통해 그려내었다. 이 프로그램은 당대의 바람직한 시민상을 바람직한 군인상과 동일시함으로써 사회의 군사화에 한몫했다는 점, 이상적인 군인을 남성으로 성별화하고 남성과 여성을 위계화했다는 점, 국방부의 지원을 받은 콘텐츠로서 당시 병영 내 가혹행위와 총기사고 등으로 실추된 군 이미지를 덮었다는 점 등 다방면에서 비판을 받아 왔다. 이는 그만큼 해당 프로그램의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이 컸음을 뒤집어 보여주는 바이기도 했다. 한편 2010년대 후반부터 관찰형 예능이 서바이벌 예능에 주도권을 넘겨주면서, 군 예능의 콘셉트도 변화한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선 예능인 〈강철부대〉는 각 특수부대를 전역한 출연진의 육체적 기량과 전투 능력을 과시하고 이들을 경쟁시켜, 이 부대들이 얼마나 넘볼 수 없이 대단한 곳인지를 보여준다. 〈진짜 사나이〉는 무언가 ‘모자란’ 사람들도 병영 체험을 통해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서사를 만들어냈다는 점, 상명하복의 병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이나 충분히 ‘남성적’이지 못한 성격을 바로 그 ‘모자람’의 요소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진짜 진짜 사나이’로 완성된 상태의 군인들이 등장하는 〈강철부대〉의 시대는, 〈진짜 사나이〉가 역설적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군인들의 모습과 그들이 훈련 중에 보여주는 실패의 순간들까지를 지워버린다. 서바이벌의 세계로 넘어온 군 예능은 이제 단단한 몸을 지닌 남성 군인들만을 비추며, 대테러 미션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21세기 버전의 군사주의를 선전하고 있다.
<진짜 사나이 300> 촬영 현장(제공:MBC)
‘군 예능의 대안’을 묻기 전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묻는다. 군 예능 기획이 이와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와 달리 군인권 개선에 기여하면서 시청자와 군인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대안적인 포맷으로는 어떤 것이 있겠느냐고. 현역 장병들과 징병제의 존재를 생각할 때, 우리 사회와 군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이는 분명 현실적으로 가치 있는 질문이다. 군 관계자 중 이 문제를 성심껏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군 예능의 대안적 포맷이 군인권 개선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아이디어에 회의적이다. 시대별로 인기를 끄는 콘셉트가 달라지기는 했어도, 군 예능 자체는 지난 60여 년간 언제나 인기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였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널리 공유되는 군사 안보에의 굳건한 믿음, 남성 중심적 군사주의 및 군대의 초남성성에 대한 오랜 승인을 바탕으로 한 일이다. 이러한 밑바탕이 변하지 않는 한, 가령 최근의 〈위문열차〉 방송이 그러하듯 현역 여군들의 활약상을 자주 비추는 등의 변화는 토크니즘(tokenism, 소수자를 상징적으로 내세워 해당 조직의 환경이 평등한 것처럼 눈속임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힘들다. 시청자와 군인의 유대감이라는 목표 역시 내 눈에는 조심스럽기만 하다.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와중에도 군사주의의 신화적 위치는 여전한데, 이 유대감이 ‘사회의 군사화’라는 함정으로 빠지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오히려 나는 묻고 싶다. 군 예능의 포맷 개선을 고민하기 전에, 지금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군 예능 콘텐츠가 늘 일상적으로 존재해왔다는 사실부터 먼저 문제 삼아야 할 상황이 아닌가? 군 당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제작될 수밖에 없는 군 예능 방송의 성격을 생각할 때, 군 예능으로부터 변화를 기대하기는 요원한 일이다. 군인권 개선을 위한 대안은 군대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조서연 문화연구자는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며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FIPS)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그런 남자는 없다』(공저), 『그럼에도 페미니즘』(공저)이 있고, 논문 『한국 '베트남전쟁'의 정치와 영화적 재현』 등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