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슈 [2022.06]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모든 사람은 안전을 구할 권리를 갖는다.”
글 김영아(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MAP 대표)
벨로루시 난민을 막기 위해 폴란드 국경에 설치된 철조망. _ 2021. 9. 27
매년 6월 20일은 전 세계가 ‘세계 난민의 날’을 기념한다. 분쟁, 박해를 피해 고국을 떠나 피난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강인함과 용기에 경의를 표하는 날이다. 또 지지와 포용으로 난민이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운 지역사회의 노력을 인정하고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다. 2000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국제 기념일로 지정된 이날은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이하 ‘난민협약’이라 함)이 50주년을 맞는 다음 해에 처음으로 기념되었다. 유엔난민기구는 매해 세계 난민의 날 캠페인 주제를 발표한다. 난민협약 71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의 세계 난민의 날 주제는 축하 메시지나 고무적인 슬로건이 아니다.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모든 사람은 안전을 구할 권리를 갖는다.”
1948년에 채택된 세계인권선언문의 제14조 ‘비호를 구하고 비호를 받을 권리’를 유엔난민기구가 재천명해야 하는 배경이 암울하다. 지난 10년 동안 난민과 실향민의 수는 두 배 이상 늘어 1억에 달한다. 각국에서의 분쟁과 불안정한 정치 때문이다. 국제연합은 국제적 분쟁이나 사태를 평화적으로 조정하거나 해결하는 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분쟁은 장기화되고 나쁜 독재 정부들은 버젓이 국가 행세를 한다. 전 세계 난민의 85%가 자체적인 경제와 개발 문제에 직면한 중·저소득 국가에 살고 있다. 여기서 난민은 멸시와 착취를 당하고 빈곤선 밑에 살며 종종 강제송환의 위기에 놓인다. 선진국은 난민을 출신 지역 내에 가두기 위해 국경 수비를 강화하고 장벽을 쌓는다. 해상을 통해 온 난민들을 잡아 섬에 가두고 다른 저소득 국가에 있는 난민캠프로 보낸다. 아예 고무보트의 항해와 착륙을 방해하는 해양경비대를 보내고, 공항에서는 미리 받은 전자정보를 통해 망명을 신청할 것 같은 승객을 구별하고 탑승수속 전 항공사가 항공권 발권을 거부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화물, 서비스, 사람, 뭐든지 국경을 넘는 세상인데 유일하게 국경에서 거부되고 밀려나는 존재가 난민이다.
망명신청을 원천적으로 막는 푸쉬백(Pushback)은 유럽과 미국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에티오피아인 5명이 지난 3월 중순 인천공항에 도착해 망명신청 의사를 밝혔다. 에티오피아 연방정부와 티그라이 지역 간의 분쟁과 에티오피아 내 종족 간 갈등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이들을 난민심사에 회부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즉, 난민신청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돌아갈 수 없었던 이들의 공항노숙이 시작됐다. 결국 이들은 출입국이 법원의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권고를 수용하면서 두 달 만에 난민신청 자격을 얻고 한국에 입국했다. 그런데 공익 변호사의 조력으로 소송이 제기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난민심사 기회를 받기 위해 2018년 12월 말부터 287일 동안 인천공항 환승구역에서 지낸 가족도 있다. 콩고 출신 앙골라인 부부는 10살 미만의 자녀 네 명과 함께였다. 이 가족은 2019년 10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물류센터 안에 모여 있는 벨로루시 난민. _ 2021. 11. 19.
한국, 난민협약 가입 30주년·「난민법」 제정 10주년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난민보호의 책임을 분담하라는 요청이나 국내에서 난민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면피하기 위해 아시아 최초로 난민협약 이행법률을 제정했음을 강조해왔다. 종전에 출입국관리법에 일부 조항을 넣고 난민지위심사와 처우에 관한 권리를 법무부 훈령과 지침으로 운용하던 시기에 비하자면 「난민법」 시행으로 난민인정심사 절차를 정비하고 처우와 권리를 법률로 구체화한 것은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9년 동안 「난민법」의 운용하는 데 있어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출입국항에서 난민신청이 가능해졌으나 비호신청도 못 하고 돌아간 사람이 대다수다. 1차 난민면접심사 녹화가 의무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어 난민신청자에 대한 통역 및 면접조서 조작이 있었다. 강제송환 금지원칙이 규정되었으나 강제퇴거 명령이나 다름없는 출국 명령이 남발되고 강제송환 준비를 위한 구금이 이루어진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해 규정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난민신청 후 6개월 뒤에는 취업을 허가할 수 있게 했으나, 취업허가 행정은 그나마 허락되는 단순 노무 최저임금 노동시장에서도 취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난민신청자와 재정착난민의 주거, 생활, 교육을 지원하는 센터 건립을 추진했으나, 2만 5천 명이 넘는 난민신청자 중 1.5%도 수용하지 못한다. 난민신청자에 대한 생계와 의료비 지원이 생겼지만 ‘할 수 있다’ 조항이어서 국가의 의무사항이 아니다. 난민신청 후 6개월 동안에만 신청 및 수령 가능한 생계비는 신청자도 적지만 그중의 4%만 지원을 받는다.
난민신청자 사이에 출신국, 종교, 입국방법 때문에 공정한 심사를 받을 수 없다는 불안이 자리한다. 난민신청자에게 인간답게 생활할 기본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거듭해서 지연되는 심사기간은 난민신청자의 생존을 위협한다.
세계 최저나 다름없는 난민인정율은 긴 대기 시간을 버틸 희망을 주지 않는다. 일부 난민은 난민심사절차를 다 마치기 전에 여권 만료일이 다가와 제3국으로의 출국을 감행한다. 난민인정도 받지 못하고 한국에 갇히게 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항공기 탑승 거부를 당하지 않고 가까스로 제3국에 도착한 난민이 공항에서, 혹은 3개월, 6개월 만에 난민 인정을 받기도 한다. 공정하고 신속한 심사가 「난민법」에 담보되지 않고서는 비호를 구할 권리도 계속 도전받을 것이다.
난민인권네트워크의 난민보호를 위한 난민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 _ 2020. 6. 18.(제공:재단법인 동천)
전쟁, 폭력, 박해 등 그 위협이 무엇이었든지 보호 받을 자격이 있다
2021년 말까지 난민지위를 받은 수는 1,163명, 인도적 체류지위를 받은 수는 2,436명이다. 2013년 「난민법」 시행 후 난민인정율은 9.7%에서 계속 하강하여 2018년 이후에는 1% 이하에 머물고 있다.
반면, 「난민법」 제정 전 인정자 수보다 적던 인도적 체류지위자는 크게 늘었다. 한국에서 인도적 체류지위는 전쟁난민, 젠더 박해 피해자에게 부여되는 경향이 보이는데, 「난민법」이 전쟁난민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 근거로 이용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난민법」은 1951년 난민협약상의 난민 사유를 반영하였는데, 인종, 국적, 종교,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정치적 의견 외에 전쟁은 없다는 논리다.
난민협약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분쟁 환경에서 위와 같은 사유 관련 박해가 더 심해질 수 있으므로 개별 심사에서 그 위험이 판단되어야 하지만 시리아인과 예멘인에 대한 난민심사는 그렇지 못했다.
국제사회에서는 1951년 협약상 사유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난민에게 국제보호지위를 부여하고, 협약 체결 당시 예견하지 못한 난민 사유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난민에게 보충적 보호지위를 부여하고 두 지위에 따른 권리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두지 않음으로써 1951년 난민보호체제를 보완해 왔다. 한국에서 인도적 체류지위는 보충적 보호지위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들, 이주 데이터 연구기관의 데이터에도 한국의 난민보호 현황에 난민인정자와 인도적 체류지위를 합한 수가 적혀 있다. 그런데도 제주를 통해 입국한 예멘 비호신청자들은 인도적 체류지위를 받고 나서도 가짜난민 또는 무비자 사증 제도 남용자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현 난민법은 인도적 체류자를 정의하고 있으면서도 보호 조치에 대해서는 공백으로 두고 있다.
취업활동 허가 외에 비호의 내용, 가족 보호 등에 규정하는 바가 없다. 그 결과 인도적 체류자의 삶은 난민신청자와 기타 임시체류 외국인처럼 불안정하다. 체류허가기간이 6개월에서 1년으로 바뀐 것일 뿐, 기타 범주에 들어가는 사증도 그대로다. 여전히 취업허가를 받아야 하고 단순노무직종만 허락된다. 외국인 건강보험제도 개편에 의해 2019년에서야 지역건강보험 자격이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사회보장제도에 바깥에 놓인다. 출국명령과 강제송환의 위협에서도 안전하지 못하다.
한국에서 난민은 난민상황을 종료할 수 있는가
현재 세계적으로 난민이 난민상황에서 벗어나는 데 평균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난민을 발생시키는 분쟁과 인권침해를 해결해야 하는 노력이 이루어져야겠지만 난민보호 체계에서는 난민의 시민권 또는 국적 취득과 체약국으로의 난민 재정착이 있다. 현 「난민법」은 난민의 귀화 장려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 난민은 국적법에 따라 체류기간, 언어, 소득 및 재산 요건 등을 갖추어야 귀화신청을 할 수 있다. 보호해줄 모국이 있는 외국인이 국적을 신청할 때와 동일한 조건이다. 난민에 대한 여러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사실 확인 중 난민지위 부여가 국적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강조되는데, 난민협약은 체약국이 난민의 귀화 절차를 신속히 행하기 위하여 또한 이러한 절차에 따른 수수료 및 비용을 가능한 한 경감시키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자신을 보호할 국가를 상실한 난민이 국적 취득을 통해 한 사회에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될 때 인권도 실현되고 사회에 대해 기여도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관점은 논의의 뒷전에 있다.
「난민법」으로 해외에서 난민을 한국으로 재정착시키는 제도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2019년 12월 글로벌 난민 포럼에서 한국 정부 대표는 장기 난민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국제 공동체와 집합적인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면서, 한국이 2015년 난민재정착 시범사업을 시작한 아시아의 두 번째 국가라는 점과 재정착 난민 수를 두 배로 늘렸다는 점을 구제적인 노력으로 들었다. 자세히 보면, 2015년 22명, 다음 해 각각 34명(2016), 30명(2017), 26명(2018), 37명(2019), 17명(2020)이 한국으로 재정착 되었고, 2021년에는 코로나로 중지되었다. 2019년 세계적으로 재정착된 난민수가 107,800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치적으로 내세우기도 민망한 규모다. 또, 한국으로 재정착된 난민은 이미 장기 난민상황을 지내다 왔지만 국내 난민인정자와 마찬가지로 영주권과 귀화에 있어 어떠한 배려도 받지 못하여 한국에서도 난민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난민법」 하나로 난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할 수는 없다. 출생등록, 가족관계 증명, 차별로부터의 보호, 시민적 및 정치권 권리,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 등은 관계 법령의 정비와 관계 부처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난민이기에 갖는 권리들, 즉 비호를 구할 권리, 차별받지 않고 공정하게 심사받을 권리, 자의적으로 구금되거나 강제로 송환되지 않을 권리, 인간으로서 존엄을 위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고 인신매매로부터 보호될 권리는 「난민법」이 보장해야 한다. 한국 난민보호에 대한 평가와 「난민법」 개정논의는 이러한 권리들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 향후 개정될 「난민법」에는 사회통합과 귀화 장려, 난민심사와 정착 지원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에 대한 정부의 의무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난민법」 내 난민보호 형태 난민인정자(국제보호지위)
인도적 체류지위(보충적 보호지위)재정착(한국으로 재정착시키고 난민인정자 지위를 부여)
난민 누적 현황(2021년 기준)난민인정자 총 1,156명
인도적 체류자 총 2,412명
난민 신청 총 78,383건(1994년~2021년)
G20국가별 2010년-2020년 난민인정(국제보호지위)율
1위 브라질 67.0%, 18위 러시아 2.7%, 19위 한국 1.3%, 20위 일본 0.3%
한국 재정착 난민보호 2015년-2021년 166명
2019년 37명 (*전 세계 107,800명) 2020년 17명 (*전 세계 34,400명)
한국 「난민법」 밖 난민보호 형태
인도적 특별체류조치 : 미얀마, 우크라이나 특별기여자 : 아프가니스탄
2022년 한국의 유엔난민기구 기부 현황 민간 29위, 정부 31위, 1인당 기부액 26위
출처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유엔난민기구, Global Change Data Lab
김영아 대표는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에서 난민의 존엄 회복과 사회참여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난민아동 학대 대응 가이드』(공저), 『용기와 시: 유동성 시대의 난민과 예술』(공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