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챌린지
[2020.10]
나도 그래, 너와 함께 할게
미투 운동 창시자, 타라나 버크
글 박정민 (자유기고가)
성범죄는 장소를 불문하며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어떤 범죄자도 쉬이 용서받아선 안 되지만 유난히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가볍게만 느껴지고, 도리어 피해자만 사회 밖을 겉도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당당히 소리 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를 내는 피해자에게 사회문제를 개선할 의지가 있는 ‘생존자(survivor)’라는 멋진 표현을 붙여준 사람이 있다. 미투 운동의 창시자, 타라나 버크다.
지난 경험과 오랜 고민의 대답. ‘Me, Too’
저소득층 노동자계급 가정에서 태어난 버크는 유년기와 십 대 시절 성폭행과 강간을 당한 적이 있다. 당시 그의 어머니는 그가 폭력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게 사회 공동체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버크의 전기에 따르면 과거의 이러한 경험은 그가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소녀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997년 버크는 열세 살 흑인 소녀로부터 성학대 경험을 듣게 된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소녀를 제대로 돕지도 못했다. 이 경험은 버크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는 이후 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면 어떤 말을 들려줘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찾은 최선의 답은 ‘나도 그렇다’라는 뜻의 ‘Me, Too’였다. 그는 이 짧은 문장을 ‘공감을 통한 권한 부여’로 봤다.
‘나도 너처럼 나쁜 일을 겪어봤다’, ‘네가 느끼는 수치심과 절망에 공감한다’, ‘너의 슬픔과 고통을 더는 일에 나도 동참한다’는 여러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2006년 뉴욕에서 젊은 유색인종 여성을 위한 비영리단체 ‘저스트 비(Just Be)’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미투(Me Too) 캠페인에 나섰다. 성폭력을 겪은 여성의 공감을 통해 유대 의식을 강화하려는 운동은 이때 세상으로 나왔다.
침묵을 깬 생존자를 위한 운동. ‘Me Too’
미투 운동은 지난 2017년 한 영화 제작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할리우드의 여배우들이 이를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me too’라는 해시태그로 다시 등장했다. 아역배우 출신 앨리사 밀라노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한 여성이라면 ‘Me Too’라는 댓글을 달아 달라’는 메시지를 SNS에 띄웠고 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톱스타가 참여하면서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됐다.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미투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유력 인사들의 성희롱•추행•폭행 사실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에 참여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로 명명하고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버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해 1월 개최된 포럼에서 그는 현실을 고발하고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단순 ‘피해자(victim)’가 아닌 사회문제를 개선할 의지가 있는 ‘생존자(survivor)’임을 강조했다. 또 미투 운동이 여성에게만 한정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미투는 성폭력을 겪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 여성운동이 아닙니다. 미투 운동은 폭력을 당한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남자들은 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여성을 중점으로 두고 말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피해자가 여성임을 숫자가 증명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