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깊이읽기 [2020.10] 기후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글 권승문 부소장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세계 곳곳에서 폭염, 폭우, 폭설, 태풍, 가뭄, 홍수, 한파, 대형 화재 등과 같은 이상기후가 일상화되고 있다. 기후변화가 주요 원인인 이러한 현상은 인류 모두의 생존을 위협한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영향이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는 어떻게 우리의 인권을 불평등한 형태로 침해하고 있을까.
기후위기라는 ‘뉴노멀’
기후변화는 해수면을 상승시켜 연안 시스템 및 저지대 지역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키고, 많은 생물종을 멸종 위기에 처하게 만들고, 많은 지역에서 관련 질병을 유발하며, 미래 식량 안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26개국의 기후변화분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네트워크인 ‘글로벌 전략 커뮤니케이션협의회(GSCC)’는 지난 2018년 11월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은행, 런던대 등 전 세계 27개 기관으로 구성된 연구공동체 ‘랜싯 카운트다운’이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기후변화와 보건 관련 연구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결과로 나타난 지구 기온 상승이 이미 심각한 수준의 건강 위험을 초래하고 있으며 현재의 추세로 기온이 계속 상승할 경우 공공보건 의료체계는 곧 한계를 맞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19년 ‘기후변화와 토지 특별보고서’의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본을 채택했다. 이 보고서에는 식량과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기반인 토지 변화와 기후변화 사이의 관계와 그 영향력을 전망하면서 인류의 토지 사용과 식량생산 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인류는 자연과 함께 황폐화될 것이란 경고가 담겼다. 보고서는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식량이 점점 희소해지면서 식량 가격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식량의 질도 더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가 계속될수록 저위도 지역에서는 기아가 발생하고 대규모 이주가 일어나며 고위도 지역에서는 산림들이 크게 훼손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 세계 5억 명의 사람들이 이미 사막화되는 지역에 살고, 토지는 빠르게 유실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극단적인 기상 이변을 일으켜 식량 생산에 어려움을 초래했고 이미 전 세계 인구의 10% 이상이 영양부족 상태에 직면해 있다. 이 여파는 국경을 넘는 이주민의 증가로 이어졌다. 멕시코 국경을 통과한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이주민들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5배 증가한 것이 그 예다.
기후위기의 불평등한 영향과 책임
작은 섬나라, 건조한 산악지대 국가, 저지대 연안 국가 등은 기후변화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 기상 이변, 해수면 상승, 농업 생산성 하락 등으로 위험에 처한 국가들은 대부분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개발도상국과 최빈국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들은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우 적다.
기후변화에 관한 역사적인 책임(누적된 온실가스 배출량)은 미국의 비중이 25%로 가장 크고 독일, 영국, 프랑스, 폴란드의 비롯한 유럽 28개국의 비중은 22%, 중국은 12.7%, 러시아는 6%, 일본 4%, 캐나다 2%, 우크라이나 1.2%, 남아프리카 공화국 1.2%, 멕시코 1.2%, 호주 1.1%를 차지한다. 한국은 1%로, 국가별로는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이 16번째로 많은 국가다.
이들 국가의 비중을 합하면 77.4%에 이른다.
하지만 기후변화 유발에 책임이 거의 없는 국가들이 기후변화에 더욱 취약한 상태다. 세계 인구의 20%이하인 선진국들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0%를 배출하지만, 기후변화의 피해는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3%만을 배출하는 저위도 개발도상국의 약 10억 명이 겪고 있다.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투발루나 전통적인 농어업 국가인 방글라데시가 이른바 ‘기후부정의’의 전형이다.
기후부정의는 기후난민의 형태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영토를 잃게 될 것이 확실한 투발루 국민들은 주변 선진국인 호주와 뉴질랜드에 난민 요청을 했다. 주로 북아프리카와 아랍지역에서 발생한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가뭄과 이에 따른 식량 생산의 급격한 감소, 식량 가격의 폭등, 주민들의 생활고, 국가 내 갈등과 주변 국가 간 갈등이 수백만 명의 기후난민을 양산하고 있다. 시리아로 대표되는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언제든지 다른 취약한 국가들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더욱 큰 고통을 초래한다. 특히 빈곤층, 여성, 아동, 장애인, 노인, 원주민, 소수민족, 이주민, 난민 등이 더 큰 타격을 받는다. 한 국가 내에서도 종사하는 산업이나 거주하는 지역, 사회경제적 능력과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기후변화의 영향은 다르게 나타난다. 1차 산업 종사자들일수록 기후변화에 취약하고, 거주 지역에 따라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이 다르다. 도서 지역이나 저지대, 해안가에 사는 주민들의 취약성이 클 수밖에 없다. 폭우나 폭염, 한파와 폭설 등으로 인한 피해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하며 이들은 그런 상황에 대처하거나 그 지역을 벗어날 능력이 거의 없다.
선진국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심각한 빈곤, 미흡한 대중교통 시스템, 낮은 교육 수준 등 그 지역의 사회경제적 요인들로 인해 그 피해가 더욱 커졌다. 1995년 시카고에 발생한 폭염 재난은 현재 더 극심한 형태로 진행 중이다. 폭염 등 유럽지역에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상기후 현상도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더 큰 피해를 주고 있고, 이에 따라 세계 시민들의 멸종 저항 운동이 촉발하고 있다.
폭염과 우리 사회의 현실
국내에서도 2018년 역사적인 폭염으로 재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 논의는 ‘에어컨 복지’에서 멈췄고, 근본적인 기후변화대응 대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2018년 국내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48명이었다. 온열질환으로 숨진 사람 중 절대 다수는 노인 인구로 빈곤율이 높은 노인층은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도 많아 폭염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노인들이 온열질환으로 가장 많이 쓰러져 목숨을 잃은 장소는 논밭이었다. 한편으로 온열질환은 일터에서 많이 발생한다. 특히 토목•건설 현장 등 폭염에 열악한 노동환경인 작업장은 온열질환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였다.
2018년 폭염과 관련해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전기요금’이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제대로 켤 수 없는 ‘에너지 빈곤층’, ‘기후변화 취약계층’의 고통이 아니었다. 폭염이 기후위기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전기요금 인상 제한으로 국한돼 있는 동안 취약한 주거 환경에 거주한 채 고립된 노인층과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더욱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외국인노동자들은 질병을 얻었고, 목숨을 잃었다.
기후정의는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이 초래하는 비윤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한 사회 운동이다.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인종이나 성별, 소득, 문화, 특정 사회의 구성원 등과 무관하게 기후위험으로부터 평등하게 보호받고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누릴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실질적 정의). 기후변화를 야기한 책임과 그로 인한 피해 간의 불일치를 교정해야 하며(분배적 정의), 기후변화로 가장 영향을 받는 사람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절차적 정의). 정의로운 전환은 지속가능하지 않거나 해로운 산업과 노동이 환경적으로 수용 가능하고 노동자와 지역사회도 지킬 수 있는 산업과 노동으로 전환돼야 하며, 이때 발생할 수 있는 피해와 희생을 예방하고 공적 장치와 프로그램을 통해 부담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요약될 수 있다.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 그리고 인권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원칙으로 기후변화를 완화(mitigation)하기 위해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고, 기후변화의 영향과 취약성을 파악하고 이에 적응(adaptation)하는 방안을 획기적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완화와 적응은 전 지구적 수준에서 국가마다 차별적인 역사적인 책임과 능력을 고려해야 하고, 적응은 기후재난 대비 시스템 등 사회기반확충을 넘어 빈곤과 사회불평등을 극적으로 줄이는 사회정책을 포함한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은 지구 온도를 2도 혹은 1.5도 낮추기 위해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할까. 현재는 지구 온도가 3도를 넘어 5도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시나리오들이 제시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적응을 할 수 없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전망들이다. 또 한국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에 ‘기후부채’를 갚아야 하는 국가로 분류된다. 어느 정도까지 부담을 해야 할까. 그리고 한국은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산업구조로 짜여 있다. 산업계에 어느 정도의 책임을 어떻게 요구할 것이며,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산업시스템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전례 없는 거대한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국가와 계층, 계급 등이 정책 결정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정치적인 장치들을 작동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서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던 과제들이 눈앞에 있다. 다음 세대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논의를 시작하고 행동해야 한다.
적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다. 기후위기는 절체절명의 인권, 생명권•건강권•주거권•물과 위생에 관한 권리 등의 문제다.
권승문 부소장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 탈성장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