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소했다. 그동안 제주도민들은 인권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많았지만 인권상담을 받거나 구제를 신청하려면 멀리 육지까지 이동해야만 했다. 하지만 제주출장소가 개소하면서 누구 한 사람, 어느 한 지역 소외되지 않는 ‘평화와 인권의 섬’ 제주도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주출장소 개소

제주도는 육지사람 누구에게나 로망이다. 가볍게 훌쩍 떠나기에도 어렵지 않고, 현지인처럼 몇 달씩 ‘살아보기’도 유행이 되었다. 독특하고 특별한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종다양한 공간과 시간이 쌓여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이름만으로 가슴을 떨리기도 했다.
그러나 섬의 역사를 조금만이라도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섬이라고 부르기엔 부끄럽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제주도만큼 굴곡을 가진 땅도 많지 않다. 소위 4.3사건이라고 알려진 이후부터 강정 해군기지, 그리고 2018년의 제주 예멘난민사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제주도 제2공항 건설문제까지. 제주도의 현안은 어쩌면 우리 사회 인권문제의 단면이었고, 도민들의 치열한 삶과 존재의 문제였다. 그런 땅에 인권사무소가 들어섰다. 정확히 말하면 광주인권사무소 제주출장소이다. 직원 이래봤자 3명, 게다가 아직 1명은 채용중이다.
제주 사회에 인권위 출장소의 개소를 알리는 행사는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10월 28일부터 개소식이 열린 11월 1일까지, 광주인권사무소와 제주출장소는 ‘인권시민사회단체 간담회’, ‘인권영화 상영회’, ‘인권정책사례회의’, ‘인권포스터 전시회’, ‘혐오차별 예방 마주 캠페인’ 등 시민단체나 지방정부의 관계자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모든 인권이슈는 시민과 시민사회에 바탕하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민들과 제주시민사회와의 연대와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제주출장소 또한 지난 몇 년간 제주지역 정치권 인사들과 시민들의 오랜 노력 끝에 설치의 결실을 맺었다. 그동안 제주도민들은 인권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많았음에도 인권상담을 받거나 구제를 신청하려면 육지까지 가야 했다. 또한 조사관들이 조사를 하려 해도 진정 사건 한두 건으로 제주도를 방문하는 것도 만만찮았으니 당연히 미뤄지고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주출장소가 생김으로써 그 시간이 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제주출장소 개소 퍼포먼스

제주출장소가 개소행사를 진행하면서 도민들에게 관심을 끈 행사는 혐오차별예방 마주 캠페인이었다. 도민과 함께 인권의 의미를 되새기고, 지역 인권주민의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하고, 참여자들은 인권침해와 혐오차별행위를 예방하는 ‘인권보호 지킴이’로 적극 활동할 것을 약속하는 행사였다. 인권 상징물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에서 직접 포즈를 취하고 혐오차별 예방 활동에 동참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참여자가 원하는 방식에 따라 영상이나 사진을 촬영하고 자신의 SNS 등을 통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제주도내에 혐오차별 반대의 적극적인 의지를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11월 1일 개소식과 함께 제주인권교육센터에서는 있었던 ‘인권 나도 한마디’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인권에 대한 메시지를 작성해 벽을 만들고 그 벽에 적힌 서로의 메시지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확인하고,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이제 제주도에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첫 발자국이 새겨졌다. 인권은 어떤 경우에도, 누구나 존중받고 보호되어야 할 중요한 권리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인권기구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졌다. 제주도민의 요구는 높았으나 그것에 응답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답이 한없이 늦어졌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더 부지런히 더 구석구석, 더 진중하고 세심하게 살필 것이다. 누구 한 사람, 어느 한 지역 소외됨이 없는 ‘평화와 인권의 섬’ 제주도를 만드는 데 국가인권위 제주출장소가 자그마한 기여라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면 출장소의 딱지를 떼고 어엿한 인권사무소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민들의 지원과 협력, 국가기관과 도민들의 연대가 그 일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인권옹호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고민 필요

140명의 참가자는 지자체에서 인권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광역 지자체 인권위원, 지역의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지역에서 인권 거버넌스를 이루는 핵심 구성원들이다. 인권옹호자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독립성과 다양성의 원칙 속에서 기존에 존재하는 규범과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뒤집어 보는 지혜와 습관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국가기관이나 지자체 기관의 업무는 법적 안정성을 중요 가치로 삼고 반복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인권기구의 업무 그리고 인권옹호자의 활동은 법적 안정성보다 인권 친화적 변화를 주요 가치로 추구해야 하는 본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김원규, ‘인권 침해 구제업무를 하는 인권옹호자의 역할’). 그 일선에서 업무를 하고 있고 인권옹호자들이 업무 방식이나 추구하는 가치에서 혼란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면에서 당연하다. 인권옹호자들에게 앞으로도 인권 친화적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다양하고 열린 실험적 시도를 필요로 할 것이다.
빡빡하다고는 하지만 며칠 동안의 일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업무와 활동에서 앞으로의 방향이나 구체적인 지향을 발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약간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모두 몇 번의 실패를 거듭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을 때 더불어 우리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박 3일 동안 서로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무엇 하나라도 담아 가는 것이 있다면 여전히 이런 자리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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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출장소의 위치는 제주시 중앙로 273, 나라키움 제주복합관사 2층입니다.
고산동산 버스정류장에서 도보로 3분 거리입니다.

김도연 조사관은 광주인권사무소 제주출장소에서 근무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