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2 <특집>
[2019.07]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아동청소년 인권
나는 대한민국에 사는 12살 여자아이입니다
글 윤채완
우리나라의 평범한 아동이 겪을 수 있는 사례를 12살 여자아이의 시선에서 풀어냈다. 아이의 바람은 어른들과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자.
학교, 선생님과 친구
나는 대한민국에 사는 12살 여자아이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평범한 어린이죠. 엄마, 아빠, 10살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어요. 에휴. 요즘은 정말 살기 팍팍한 것 같아요. 학교도 재미없고, 엄마 아빠는 매일 늦게 들어오시고, 가야 하는 학원은 너무 많고, 주말엔 푹 쉬지도 못한다니까요.
동생은 같은 초등학교 3학년이에요. 우리는 중간놀이 시간과 체육시간을 제일 좋아해요. 놀이시간과 체육시간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동생은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학교생활을 엄청 힘들어했어요. 매일 아침마다 울고 불며 안 간다고 떼를 써서 엄마도 울고 동생도 울고 그랬어요. 학교에 왜 가기 싫은지 물어보면 동생은 “너무 지루해”라고 대답했어요. 지루해서 힘든 것 같았어요. 그래도 지금은 그럭저럭 다니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학교가 지루하긴 하지만 재미있을 때도 있어요. 무엇보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얼마 전에 전학 온 친구가 있는데, 새롭게 친한 친구가 됐어요. 그 친구는 중국에서 왔다고 했어요. 이름이 분명 있는데, 어떤 선생님이 그 친구를 ‘다문화’라고 불렀어요. 그 친구 이름을 아직 모르는 친구들이 선생님을 따라서 ‘다문화’라고 부르면 안 될 것 같은데…. 내가 그 친구 입장이라면 이름 대신 ‘다문화’라고 불리는 건 싫을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부르지 않겠어요. 절대.
나의 일상생활
주말에는 집에서 쉬기도 하고 놀러 나가기도 해요. 지난 주말에는 엄마가 염색약을 사 와서 남동생 머리카락을 염색해줬어요. 와, 색깔이 은은하고 예쁘게 나왔어요. 나는 별로 안 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중학교에 들어가면 못할 수도 있으니 하라는 거예요. “응? 왜 중학교에 가서는 못하는 거야?” 엄마 말이 파마나 염색을 못 하게 하는 학교가 많대요. 왜 못하게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내 친구들은 입술에 틴트를 바르고 얼굴도 하얗게 하고 다니는데. 엄마가 그건 하지 말라고 해서 못하고 있어요. 좀 더 커서 하래요. 핑크색, 코럴색 틴트 예쁜데. 치. 내 머리카락이고 내 얼굴인데 어른들은 하지 말라는 게 많아요. 어른들은 다 하면서요.
작년 가을에는 갑자기 강릉에 가자고 해서 갔는데, 엄마가 나랑 동생이 바닷가에서 노는 사진을 많이 찍어줬어요. 근데 그날 저녁 엄마가 SNS에 그 사진을 올리는 거예요. 저한테 딱 걸렸어요. 저와 동생은 사진을 내리라고 엄마에게 항의했고, 엄마는 결국 사진을 지웠어요. 전에는 글쎄, 엄마하고 저하고 찍은 사진을 엄마 얼굴만 하트로 가리고 내 얼굴은 그대로 놔뒀더라고요. 엄마는 내 허락도 없이 내 사진을 막 써요. 아이들은 귀여워서 괜찮대요. 헐. 귀엽다고 남의 사진을 그냥 막 올려도 되는 건 아닌데. 예전에 어린이집 다닐 때 근처 공원에 산책을 가면 지나가는 어른들이 우리 사진을 막 찍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사진 찍지 마세요!” 하고 다 같이 외치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우리가 ‘예쁜 풍경’은 아니잖아요.
언젠가 한번은 엄마 아빠랑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한 거리에 갔다가 저녁을 먹으려 했거든요. 그런데 그 식당 앞에 ‘NO KIDS ZONE, 13세 이하 어린이의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다른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아빠에게 물었어요. “어린이는 왜 못 들어오게 하는 거야?” 아빠가 말하길 아이들이 식당에서 소란을 피우고 또 그걸 부모들이 잘 대처해주지 않아서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정말 기분이 나빴어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방해가 된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어른들은 그냥 조용하고 점잖기만 한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우리들은 어른들처럼 점잖게 있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걸 좀 더 이해해 주고 또 소란을 피워 남에게 방해가 될 때마다 잘 타일러 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식당에는 어른 진상 손님도 많다고요.
병원에 가느라 엄마랑 동생이랑 지하철을 탔었어요. 지하철 안에 작은 텔레비전 화면에 지하철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을 알려주는 동영상이 나오는 걸 봤어요. 동영상 주인공이 제 또래 남자아이인 거예요.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 넘어지고, 지하철 출입문에서 장난치고, 자리 옆에 붙어있는 안전설비를 막 망가뜨리고요. 또 기분이 별로였어요. 왜 아이들만 문제아처럼 보여주는 거예요? 계단에서 어른들이 더 많이 뛰어다니는 걸요.
진정 원하는 것
이제 곧 여름방학이 돼요. 방학은 좋아요. 그런데 엄마 아빠는 방학이 없잖아요. 더 어릴 때는 방학을 해도 매일 학교에 나갔어요. 어린 저를 집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학교에서 돌봐줬거든요. 방학인데 학교에 가는 기분은 정말 너무 쓸쓸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고학년이 됐다고 어렵다고 해요. 동생과 저는 그냥 집에 있다가 텔레비전 보고 숙제하고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학원에 가요. 그리고 엄마 아빠가 들어오기 기다려요. 학교는 방학을 하는데 돌봐줄 어른들이 없을 땐 어떻게 하죠? 어린아이들이 방학일 때는 어른들 일 좀 줄여주고, 우리랑 함께 할 시간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방학이 끝나고 2학기에는 반장선거에 나가려고 해요. 지난 학기에도 반장선거에 나갔는데 떨어졌거든요. 이번에는 정말 엄청난 공약을 만들어야겠어요. 내가 반장이 되면 체육시간을 매일 한 시간씩 하고 또 하고 싶은 수업을 우리가 만들어보자고 공약하려고요. 그런데 아마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할 것 같죠? 분명히 안 된다고 할 것 같아요. 그럼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죠? 흠… 고민돼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미래라고 하면서 아이들의 현재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게임 그만해, 책 많이 읽어라, 공부 좀 해, 좋은 학교 가야지, 그래야 좋은 직장 간다 그러잖아요. 그런데 많은 언니 오빠들이 스스로를 다치게 하고 하늘나라로 간다면서요. 당장 내 마음이 아프고 죽을 것 같은데, 나중에 커서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 있어요. 맨날 아이들이 적게 태어나서 큰일이라고 하던데, 아이들이 행복하고 아이를 키우는 게 행복한 나라가 되면 아이를 더 많이 낳을 것 같아요.
지난 2018년 정부가 실시한 ‘2018 아동종합 실태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 아동의 삶의 만족도는 6.57점으로, OECD 국가 평균 7.6보다 1점 이상 낮은 최하위 수준이다. 정부가 올해 5월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에 대해 국가의 책임이 낮고, 아동을 양육과 훈육의 대상으로 보지만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는 관점 전환은 지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정책에서는 ‘내일만큼 오늘이 빛나는 우리’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 말이 아동들의 삶에서 구체화되려면 정부와 민간, 가정과 학교, 사회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 온 국가와 사회가 필요하다.
윤채완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아동청소년인권과에서 과장직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