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수첩 [2018.03] ② 양심적 병역 거부 신념과 의무 사이
글 백종건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법원의 무죄판결이 70건을 넘어섰다. 왜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다른 무죄판결이 계속 이어지고 있을까? 그런데 왜 대법원은 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소송 문제에 대해 판결을 미루고 있는 걸까? 이 문제는 왜 해결되어야 하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꿈을 포기한 사람들
우리나라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99%는 종교적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종교적 배경을 가진 집안에서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형에 이어 동생이, 대를 이어 줄줄이 감옥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아들 여섯을 둔 한 어머니는 1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들들의 옥바라지를 했다. ‘군대에 가야 하는’ 나이가 되면 수감될 것을 아는 삶은 청소년 시절부터 평범한 꿈을 갖기 어렵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네가 다니는 교회를 다니면 나중에 너 감옥 간대”라는 말하는 친구를 둔 청소년은 인생 계획에 감옥이라는 무거운 짐을 포함시켜놓고 살아야 했다. 정 모 씨(20)는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햄버거 가게 에서 해고를 당했다. 병무청에서 병역거부로 재판을 앞둔 그를 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의 통보에 따른 해고였기에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 국가인권위는 매년 계속되는 이러한 처분에 대해 시정하라고 권고를 내렸지만 시정되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최소한의 아르바이트조차 할 수 없어 생계를 위협받는 경우가 많다. 감옥에서 형기를 마친 후에도 차별은 계속된다. 전과로 인해 공무원 시험을 비롯, 공공 기관, 금융권은 애초 계약직조차 지원이 불가능하다. 범죄경력을 필수로 조회하지 않는 기업들도 통상 남성의 경우 병역필 여부를 확인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군 면제 사유인 병역거부로 인한 수감 사실을 알릴 수밖 에 없다. 한 병역거부자는 입사를 지원한 중소기업 면접에서 면접관으로부터 “당신이 아무리 뛰어나도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을 뽑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결국 대부분은 석방 후에도 청소, 단순 노무직,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어려운 삶을 살다 보니 가정을 꾸리는 것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설사 가정을 꾸린다고 해도 아들을 가져 자신이 겪은 고통을 물려주게 될까 하는 염려에 자녀를 갖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늘어나는 이유
사실 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처럼 쉽게 판결할 수 있는 사건은 그리 많지 않다. 대법원 판례도 있으며,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양형도 이미 정해져 있다. 심지어 당사자는 성실하게 출석한다. 하지만 일선 판사들은 ‘가장 쉬운 사건이면서도 가장 힘든 사건’이라고 표현한다. 누군가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거나 때리면 그에 마땅한 형벌을 주면 되지만, 남을 해칠 수도 있는 무기를 들거나 연습하지 않겠다는 청년에게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중형을 선고해야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다른 사건에서 추상같은 훈계를 하다가도 병역거부 사건이 되면, ‘미안하다’,‘개인적으로는 대체 복무제가 도입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꼭 항소해서 다른 판결을 받으면 좋겠다’,‘선고를 미루고 싶으면 미뤄주겠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법원에서 70건이 넘는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등 큰 변화가 생겼다. 특히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 중 상당수는 예전에 이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내린 바 있는 판사들이다.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판사들이 생각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재판소의 대체 복무제 도입 권고
2004년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하면서도, 대체 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국가에 권고했다. 대법원 역시 유죄판결을 선고하면서도 입법적 해결이 시급하다고 계속해서 재촉하고 있었다. 국가인권위도 수차례 대체 복무제 도입을 촉구했지만 국회는 14년 이상 이러한 권고를 무시하고 있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도 대한민국이 가입한 자유권규약 등에서 해석상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으니,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은 조약 위반이라고 시정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헌법 제6조 제1항에서는 조약은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 역시 법률로서 인정하고 있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떠오르는’ 신생 권리가 아니라 ‘확립된’ 권리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법원은, 국제인권법 및 대한민국이 가입한 조약상 대한민국 정부가 대체 복무제를 도입할 의무를 인정하고, 국가가 그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과 불이익을 오로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지는 것은 잘못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검찰에서는 무죄판결들에 대해 상급법원에 상소하고 있지만 대법원도 2017년 6월 이후로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 판결을 하고 있지 않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나 국가 차원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에서 현재 계류 중인 사건 중에 가장 오래된 사건은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으로 7년째 심리 중에 있다. 곧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오해들
문 :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양심적이면 군 복무는 비양심인가요?
답 : 신문이나 방송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화제가 될 때마다 병역거부 앞에 붙는 수식어인 ‘양심적’(Conscientious) 이라는 단어로 인해 ‘병역거부가 양심적이면 군 복무는 비양심적이냐’고 반문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양심적이란 그 기초가 종교가 되었든 평화주의가 되었든 그로 인해 내린 ‘개인의 진지한 결정’ 즉 신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군 복무를 하는 사람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병역 이행에 감사하기도 하면서, 자신들은 도저히 총을 들 수 없으니, 군 복무에 상응하는 대체 복무를 통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문 : 병역을 거부하면 당연히 감옥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답 : 세계적으로 여전히 징병제 국가는 많이 있지만, 대체 복무제 없이 병역거부자를 수감하는 나라는 현재 대한민국, 싱가폴, 에리트레아 3개국에 불과합니다. 대만, 아르메니아, 이스라엘, 쿠바, 그리스 등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대체 복무제 등 대안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지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미국 등 참전국들은 전시였음에도 대체 복무를 인정하였습니다. 프랑스, 캐나다, 독일, 호주 등은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난민으로 인정하고 망명을 받아주고 있습니다.
문 : 우리나라는 휴전 상태인데 전쟁이라도 나면 어떻게 합니까?
답 :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가두기만 한다면, 혹시 전쟁이 나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총을 들거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는 데다 특히 감옥에 가둬두는 경우 이들을 대피시켜야 하니 정말 방해만 될 뿐이지요. 오히려 대체 복무제 도입을 통해 전쟁은 물론이고, 각종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국가와 시민을 위해 민간에서 돕도록 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사회 복무 요원, 전문 연구 요원, 공중보건의 등 연간 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현역군인이 아닌 다양한 형태로 대체 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백종건 님은 사법시험 합격자 중 ‘첫’ 양심적 병역거부자이며, 많은 병역거부자의 무료 변호를 맡아왔습니다. 현재는 수감으로 인해 취소된 변호사 등록을 위한 두 번째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훈련을 받는 군인의 뒷모습과, 2017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보고서에 있는 통계그림이 있습니다. 감옥문을 그린 그림의 설명으로 대한민국에서 광복 이후 지금까지 양심적병역거부로 감옥에 수감된 사람이 1만 9200명, 수갑을 찬 손 그림의 설명으로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 272명, 의사봉 그림의 설명으로, 대법원 포함 국내 법원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며 선고를 미루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710건 이상을 나타내는 그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