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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순 사무총장

사람, 삶을 말하다 [2018.03]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옥순 사무총장

글 유제이 사진 봉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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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8주년을 맞는 장애인의 날이 4월 20일이다. 38년 전과 지금의 장애인 인권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 길 위에 서 있는 사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박옥순 사무총장을 만났다.

 

“백만 원 있어요? 5년 후에 갚을게요”

꽃샘추위가 유난을 떠는 봄날의 오후, 새로 터전을 옮긴 전장연 사무실을 찾았다. 고즈넉한 사무실 분위기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사무실의 거의 모든 공간이 공사 중인 데다 한쪽에는 장애인 투쟁 열사들의 분향소가 마련되어 조문을 받고 있었다. 결국 인터뷰를 위해 아래층 노들장애인야학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박옥순 사무총장이 대뜸 질문을 던진다. “백만 원 있어요? 5년 후에 갚을게요.” 낯선 얼굴은 아니지만 공식적으로는 초면인 상태에서 하는 질문인데 돈 있냐니, 심지어 만 원도 아니고 백만 원이라니. 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당황스러울 법도 하지만 현재 전장연 사무실 상황을 본 터라 어렵지 않게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대항로의 시대’. 대학로에서 장애인인권운동 대항로의 문을 연다는 뜻이란다. 전장연을 비롯,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해방열사단,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는 지금까지 정부의 지원 없이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을 해왔다. 하지만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유지한 사무실의 임대료를 내고 나면 최저임금 수준의 활동가 월급마저도 손대야 하는 현실이다. 현재 전장연이 들어서는 대학로의 건물은 지하철역에서 가까울뿐더러 건물 입구에 계단이나 턱도 없어 장애인 접근권 면에서도 훌륭하다. 하지만 보증금과 월세가 비싸다. 그래서 지금 백만 원을 내면 5년 후에 돌려받는 벽돌기금을 모금 중이다. 사무실과 활동가에게 들어가야 할 돈을 생각하면 심란할 법도 한데 박옥순 사무총장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4500만 명 대신 일하는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어요. 모두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만 모두가 현장에서 활동할 수는 없잖아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4,500만 명 대신 제가 일하는 거고, 그래서 제가 손을 내밀면 다 도와주실 거라고 믿어요.” 틀린 말이 아니다.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원하지만 다 거리로 나서서 싸울 수는 없다. 그를 비롯한 장애인 인권 활동가들은 지금까지 많은 일을 이뤄냈다. 저상 버스 도입,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확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탈시설-자립생활 체계 마련,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장애인 노동권을 위해 계속 싸워왔다. 최근엔 평창동계올림픽을 맞아 ‘3평 투쟁’을 펼쳤다. “평창, 평화, 평등. 이렇게 3평이었어요. 평등 없는 평화 올림픽은 없으니 평등을 위해 노동, 교통, 문화예술, 복지 4개 분야의 장관 면담을 요구했죠. 간절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패럴림픽 개막식에 찾아가 300여 명의 장애인과 부모들이 기어서 투쟁한다고 했어요. 노래도 만들었어요. ‘쨍하고 해 뜰 날 기어간단다’, 재밌죠? 하하하!” 다행히 4개 부처 장관들과 면담 혹은 약속이 성사되었고, 그 연장선에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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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편한 세상이 모두에게 편한 세상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은 장애인 인권을 위해 노력하던 이들이 요구하는 사안이 꽤 많이 반영된 편이다. 줄기차게 주장했던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고 ‘3평 투쟁’에서 요구한 4개 부문의 민관공동협의체도 마련된다. 하지만 정작 활동가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예산 없는 정책은 시쳇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죠. 정책들이 실질적인 효과를 보려면 예산 증액이 필요한데 과연 증액이 될까요? 그걸 위해서 또 싸워야죠.”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그가 언론사를 거쳐 장애인 인권운동을 시작한 지도 30년이 지났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활동하면서 만났을 수많은 장면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이 무얼까 궁금해졌다. “시설에 있던 장애인이 저희 활동가들에게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어요. 하지만 시설에선 나가지 못하게 휴대전화까지 빼앗았죠. 그러자 이분이 밤에 혼자 시설을 나왔어요. 500m를 기어서 나온 거예요. 온몸이 땅에 긁혀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도로까지 나왔고, 지나가던 여성 운전자가 구조해서 경찰서로 데려다줬어요.” 한밤중에 전해진 소식에 활동가들은 한달음에 달려갔고, 다시 시설 입소를 주장하는 장애인의 아버지와 당사자의 논쟁 끝에 결국 탈시설이라는 그 나름의 해피엔딩이 된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장애인들이 스스로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고 원하는 걸 쟁취하는 과정을 보면서 저 역시 힘을 느끼지요. 그래서 즐겁습니다.” 장애인들은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지금까지 꾸준히, 때로는 전투적으로 원하는 바를 이야기해왔다. 이동권을 위해 저상 버스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고, 휠체어 승강기가 탑재된 고속버스도 곧 도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어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 걸 만드느냐’고 하기도 한다. “그분들이 나쁜 사람이라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지하철 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기면서 유모차로 외출하는 엄마들과 노인들이 많이 편해졌고, 저상 버스로 노인과 짐 많은 분들도 좀 더 안전해졌어요. 결국 장애인에게 안전하고 편한 세상은 모두에게 안전하고 편한 세상이거든요.”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안전하고 편한 세상. 4,500만 국민이 모두가 바라는 그 세상을 위해 박옥순 사무총장은 언제나 밝고 씩씩하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박옥순 사무총장이 벽돌담 앞에 서 있는 사진과,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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