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6.12] 검은 늑대

글 정도경 그림 조승연

 

검은 늑대



옛날 옛적 어느 산속에 늑대 무리가 살았습니다. 늑대들의 우두머리는 하얀 암컷 늑대였는데, 그 하얀 암늑대는 예전에 힘세고 흉포했던 하얀 수컷 늑대의 딸이었습니다. 흰 암컷 늑대는 아버지를 닮아 간교하고 흉포했고, 그 주변에는 똑같이 잔인하고 간교한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하얀 암컷 늑대 무리는 힘없는 다른 늑대들에게서 먹을 것을 빼앗았고 겨울이 오자 자기들끼리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약하고 병들고 다친 늑대들을 춥고 어두운 구석으로 쫓아냈습니다. 하얀 암컷 늑대 무리는 자기들만의 편안한 자리에서 남들에게서 빼앗은 좋은 먹이를 마음껏 먹으며 흥청망청 지냈습니다. 암컷 늑대 무리는 어린 새끼들이 죽어가도 구경만 할 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현명하고 나이 든 늑대가 항의하자 그만 그를 물어 죽였습니다.

  늑대들은 분개했습니다. 그중 젊고 힘센 검은 수컷 늑대가 분연히 저항해 일어섰습니다. 검은 수컷 늑대 주위에는 함께 분노해 그를 따르는 늑대들이 모였습니다. 많은 늑대가 주변에 모이자 검은 수컷 늑대의 무리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암컷이 우두머리가 된 것이 문제다. 하얀 털로 검은 마음을 감추는 것도 문제다. 우두머리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그러자 흰 털을 가진 다른 늑대들이 항의했습니다.

  “나는 털이 하얗지만 거짓말을 한 적도 없고 남을 괴롭힌 적도 없다. 나도 포악한 우두머리에 맞서 너희와 함께 싸우고 있다.”

  암컷 늑대들도 항의했습니다.

“나는 새끼를 낳아 열심히 길렀고 나이 든 늑대들을 돌보며 무리를 위해 애썼다. 나도 너희와 함께 싸우고 있다.”

  그러자 검은 수컷 늑대는 더욱 화를 냈습니다.

  “무리가 위험에 처했는데 감히 나의 말을 듣지 않고 불평하다니! 역시 하얀 털이 문제다! 암컷들이 문제다!”

  그래서 검은 수컷 늑대는 자신과 같은 젊고 힘센 검은 수컷 늑대들을 모아 자신에게 항의하는 하얀 늑대들과 암컷 늑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암컷 늑대들이 공격받자 어린 늑대들이 항의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남을 괴롭힌 적이 없다! 우리 모두 함께 싸우고 있는데 공격하다니 부당하다!”

  검은 수컷 늑대는 더더욱 화를 냈습니다.

  “감히 어린것이 나에게 훈계하다니! 암컷들이 잘못 가르친 탓이다!”

  그래서 검은 수컷 늑대 무리는 암컷 늑대들을 물어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암컷들이 모두 죽은 뒤에는 하얀 털 늑대들을 공격했습니다. 하얀 털 늑대들이 모두 죽은 뒤에는 털에 조금이라도 하얀 색이 섞여 있는 늑대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은 수컷 늑대는 흰 암컷 늑대의 무리가 어린 새끼들을 죽이고, 많은 늑대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 것이 모두 흰 털 때문이고 암컷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늑대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회색 수컷 늑대가 흰 늑대와 검은 늑대 무리를 중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회색 늑대는 하얀 늑대 무리가 더 힘이 세고 지혜가 많기 때문에 무리를 계속 이끌어야 한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검은 늑대 무리를 설득했습니다.

  어떤 늑대들은 회색 늑대 무리에 끼었고, 어떤 늑대들은 흰 암컷 늑대가 역시 강하다고 감탄했으며, 어떤 늑대들은 검은 수컷 늑대의 편에 섰습니다. 흰 암컷 늑대와 그 아버지 때부터 늑대 무리를 뒤에서 조종해온 간교하고 악독한 늑대들은 무리가 이렇게 혼란에 빠져 분열해 저항하는 세력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조롱했습니다.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것은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약한 늑대들이었습니다. 그사이에 사악하고 욕심 많은 늑대들은 간교한 흰 늑대를 앞세워 자신들의 권력만을 지키려 했고, 회색 늑대와 검은 늑대는 저항한다면서 서로 싸웠습니다. 늑대들은 혼란과 분열 속에서 긴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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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님은 소설가로 중편 <호(狐)>로 제3회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문이 열렸다> <죽은자의 꿈>과 단편집 <왕의 창녀> <씨앗>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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