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6.05] 흥부와 놀부

글 박애진 그림 조승연

 

흥부와 놀부


옛날 옛날 먼 옛날 어느 마을에 흥부와 놀부 형제가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마을 지주의 아들이었죠.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관례대로 첫째인 놀부에게 재산을 물려주며 동생과 합의해 잘 나누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놀부는 재산이 모두 자기 명의가 되자 뭐든지 마음대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인 흥부와 재산을 나누기는커녕 흥부와 마을 주민 전체의 소작료를 올렸습니다. 자기 땅을 빌려 농사짓는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쉬는 날도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시켰습니다. 자투리땅에 호박이라도 키우는 걸 보면 말뚝을 박아버리고, 자기 땅이라며 말을 타고 옹기전을 지나면서 그릇을 죄다 깨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죠.


  놀부의 땅에 가게를 낸 사람들은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소작을 하는 사람들은 밤낮없이 일해도 소작료를 내고나면 먹고 살기도 빠듯한 양의 쌀만 남았습니다. 견디다 못한 마을 사람들이 법률 규정보다 높은 소작료를 받고, 야근 수당도 주지 않는다고 항의했으나 놀부는 듣지 않았습니다. 흥부가 마을 관아에 가서 따졌지만 놀부에게 뇌물을 받은 사또는 “땅주인 마음대로 하는 게 법”이라며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봄에 까치가 흥부 집 지붕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새끼 까치들이 태어나 까불거리고 놀다 그만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죠. 흥부는 가련히 여겨 까치 다리를 치료해주었습니다.


  다음 해 봄, 흥부 덕분에 살아난 새끼 까치가 어른 까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까치는 박씨 하나를 물고 왔지요. 흥부는 박씨를 마당에 심었습니다. 박씨는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 줄기에 커다란 박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흥부 혼자 다 따기에는 너무 크고 많았습니다. 흥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박을 따는 걸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박을 따서 가르자 온갖 금은보화가 쏟아졌습니다. 흥부는 기뻐하며 함께 일한 사람들과 사이좋게 나누었습니다.


  놀부는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말에 약이 바짝 올랐습니다. 한 해가 지나 놀부 집에도 제비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놀부는 자기 집에 함부로 집을 지었다며 당장 집세로 박씨를 가져오라고 제비들을 달달 볶았습니다. 놀부가 하도 못살게 구는 바람에 무서워 도망치던 새끼 한 마리가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놀부는 옳거니 싶어 제비 새끼 다리를 치료해주고, 내년에 꼭 박씨를 물고 오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다음 해 봄에 제비가 돌아와 둥지를 틀었습니다. 놀부는 하루에도 열 번씩 제비 집을 들여다보며 박씨를 내놓으라 성화를 부렸습니다. 결국 제비는 놀부에게 박씨를 주었습니다. 놀부는 신이 나 박씨를 심었습니다. 가을이 되자 커다란 박이 열렸지요. 놀부는 흥에 겨워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박을 따라고 시켰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놀부의 땅을 빌려 먹고사는지라 싫어도 싫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놀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그저 누가 동전 하나라도 훔쳐갈까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았습니다. 박이 갈라지자 속에서 그간 놀부에게 괴롭힘을 받은 사람들이 튀어나와 놀부를 흠씬 혼내주었습니다. 놀부는 그만 깜짝 놀라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몫을 지불해온 흥부를 데려왔습니다. 흥부는 아버지 유언에 맞게 놀부와 재산을 반씩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놀부와 흥부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도 합리적으로 이윤을 분배했고, 근무 시간을 지키도록 했으며, 법정 공휴일에는 반드시 일을 쉬게 했습니다.


  온 사방에 '갑질'이라는 말이 떠돌아다닙니다. 회사 사장이라고, 높은 지위에 있다고 일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있습니다. 회사가 자기 명의이고, 땅의 주인이라는 이유로 뭐든지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땅에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에게도 마땅한 대가가 주어져야 합니다. 물이 순환하듯 사람들의 역할도 순환합니다. 지금은 어느 회사의 노동자이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그 회사의 물건을 사는 고객이 되기도 합니다.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누구나 정당한 자기 몫을 받아야 하며, 존중받아야 하는,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박애진 님은 환상문학ㆍ과학소설 작가로 장편소설 <지우전-모두 나를 칼이라 했다> <부엉이소녀 욜란드>, 작품집<각인>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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