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6.05] <국제인권 따라잡기 5> 인종차별 철폐협약
글 김형구 그림 강우근

식민지주의는 한 줄의 글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문명화된(civilized)'과 '문명화되지 않은(uncivilized)'이라는 기준에 따른 제도적 차별에 기초했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이하 '인종차별철폐협약'이라 함)은 위와 같이 차별을 근거로 유지되던 식민지 지배로부터 국가가 벗어나던 시대를 배경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유엔은 1963년 먼저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 선언을 총회에서 채택함으로써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국제공동체의 보편적 입장을 확인하고 2년 후인 1965년 12월 21일 인종차별 철폐 협약을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그리고 약 3년 후인 1969년 1월 4일 발효 정족 회원국 수를 충족함으로써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조약으로 발효하게 되었습니다.
인종차별철폐협약은 인종차별을 “인종, 피부색, 혈통 또는 민족이나 종족을 이유로 구별, 배척, 제한 또는 우선권을 주는 말합니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또는 기타 공공생활의 분야에서 평등하게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인정, 향유 또는 행사를 무효화시키거나 침해하는 목적 또는 효과를 가지는 경우”로 정의하고 있습니다(제1조 제1항). 다만 체약국이 자국의 시민과 비시민을 구별하여 어느 한쪽에의 배척, 제한 또는 우선권을 부여하는 행위에는 인종차별철폐협약이 적용되지 아니한다(제1조 제2항).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그 차등적 조치는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야 할 것이며 이 조문을 근거로 국적에 따른 비합리적인 차별이 무제한 허용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이 협약은 체약국에 사람이나 조직에 의한 인종차별을 후원하거나 옹호 또는 지지하지 않을 의무뿐 아니라 인종차별을 야기하거나 영구화하는 효과를 가진 법규를 개정, 폐기할 의무와 같이 국가가 주체가 되는 의무와 민간이나 집단 또는 조직에 의한 인종차별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입법을 포함한 모든 적절한 수단으로 금지하고 종결시킬 의무를 명시적으로 부과하고 있습니다. (제2조).
특히 협약 제5조에서는 (a) 법원 및 기타 모든 사법기관 앞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 (b) 정부 관리에 의해 자행되거나 또는 단체에 의해 자행되는 폭행, 신체적 피해로부터 보호를 받을 권리, (c ) [국내법에 따라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는 사람들 사이에] 인종차별에 근거한 정치적 권리 및 참정권, 선거권에의 차별을 받지 아니할 권리 (d) 특히 혼인 및 배우자의 선택권,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 평화적인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관한 권리, 노동조합 및 가입권, 주거에 관한 권리, 교육과 훈련에 대한 권리, 실업에 대한 보호,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받을 권리를 포함하는 기타 민권들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78년 12월 5일 유보 없이 이 협약에 가입했고 1979년 1월 4일부터 이 협약의 적용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인종차별과 관련한 작위 및 부작위 책임을 모두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는 현재 인종차별 행위의 억제와 철폐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을까요?
한 실례를 살펴보겠습니다. 2009년 성공회대 교환교수로 한국에 체류하던 인도인 교수는 귀가하는 버스 속에서 한 취객에게 “아랍인은 테러리스트다”,“냄새가 나고 더럽다”는 말과 함께 봉변을 당합니다. 그런데 출동한 경찰은 오히려 가해자에게는 존댓말로 응대하고 피해자에게는 하대하는 반말로 취조하며 1시간이나 조사를 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는 훈방처리 되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심각한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였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이러한 행위를 범죄로 처벌할 인종차별법 내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습니다. 과연 손상된 피해자의 인권은 충분히 구제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최선의 조치를 다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인터넷을 보면 극단적 외국인 혐오에 근거한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종차별을 선동하는 듯한 게시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가 있었고 몇 번에 걸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있었습니다만 아직도 인종차별행위를 범죄로 처벌하는 법률은 한국에 없습니다. 아무쪼록 새로 출범한 20대 국회에서는 인종차별금지법 내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현실화되기를 소망합니다.
김형구 님은 국제법과 국제형사법을 공부했으며 한국항공대학교 및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국제법, 국제기구론, 국제인권법, 국제항공법, 국제형사법과 관련한 내용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