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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6.05] ‘침해’와 ‘차별’을 넘어..

글 신홍주 그림 아이완

 

침해와 차별을 넘어


┃  조정, 합의점 모색을 통해 분쟁 해결


“피진정인 OO회사 대표는 진정인 OOO이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사건과 관련해 5000만 원을 지급한다.”

진정인과 회사와 수년간 지속되던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진정인(김선우, 가명)은 2008년 9월 국가기관에 내부 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되었다가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통해 2009년 3월 복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복직 이후 회사에서는 김선우 씨에게 업무를 아예 주지 않거나 본인의 업무가 아닌 업무를 지시했다. 컴퓨터와 전화기 등의 사무 물품도 지급하지 않았고, 또한 연봉협상도 하지 않아 임금은 2009년에서 2016년까지 동결되었다. 직원 간 회식이나 회의에서도 배제되었고 심지어 출입카드도 다른 직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출입하지 못하도록 설정했다. 김선우 씨는 그렇게 7년 동안 회사에서 '유령인간' 취급을 받았고 이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도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지난 2016년 1월 27일 차별조정위원회는 김선우 씨의 조정신청에 대해 “피진정인인 회사 대표에게 진정인에 대한 위로금으로 퇴직금 외, 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고, 진정인에게는 “위로금을 받는 즉시 퇴사하라”고 결정했다. 양 당사자 모두 위원회의 조정 결과를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제가 겪었던 얘기를 들어주는 국가기관이 있다는 것만도 고마웠습니다”라며, 김선우 씨는 인권위원회의 조정결과에 대해 흡족해 했고, 회사 측 역시 김선우 씨에게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으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지급하는 것보다 위로금을 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해 조정결과를 받아들였다.


조정은 분쟁 당사자들에게 진정을 통하여 제기된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점을 모색하여 궁극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정제도는 진정접수 단계 또는 조사과정에서 당사자의 신청 또는 위원회의 직권으로 조정위원회에 회부하여 당사자 간의 합의로 자발적 해결에 도달할수 있도록 돕는 제도이다. 조정제도는 사건 처리의 신속성과 비용절감, 구제효과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되었다. 조정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2에 따라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있다.


┃  조정은 재판의 화해와 같은 효력


  이외 올해 조정사건으로, 회사 대표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진정에 대해 피진정인들이 800만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성립된 사건과, 학교 측의 행정과실로 인해 손해를 입은 사건에 대해 200만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조정이 성립된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금전적 손해뿐 아니라, 장애인 직원에 대한 편의시설 설치 등으로 조정이 성립되어, 조정이 꼭 금전적 보상만으로 성립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쉽게도 그동안 인권위원회는 조정 제도를 활용하는 것에 비중을 크게 두지 못했다. 실례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 총 16건이 접수되었고, 이는 1년 평균 3건 정도에 불과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진정사건에 매몰돼 있는 조사관 입장으로서는 진정사건을 조정위원회에 회부해 오히려 시간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부담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올해 개최된 조정사건 중 하나는 2016년 3월 10일 진정 접수되어 조사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같은 달 18일 조정요청을 했고, 4월 28일 제2차 조정위원회에서 조정성립이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반드시 조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정이란 사실관계를 따지는 조사 단계를 굳이 거치지 않더라도 양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조정 성립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인구 대비 소송 비율을 따지면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네 배나 더 많다고 하며, 1년간 인구 대비 8명 중 1명이 소송을 제기해 '소송 제일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명칭을 가지고 있다. 타협이나 조정보다 체면과 원칙을 중요시하는 문화적 배경 때문일까? 타인과의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 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사법기관이나 행정기관에서 옳고 그름을 가려달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  조정의 장점, 효과적인 구제와 비용절감


  마찬가지로 인권위의 진정 사건 역시 매년 1만 건 넘게 접수되고 있으며, 이러한 진정은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러한 소송이나 진정 제기만으로는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송 역시 1심, 2심, 대법원까지 진행돼도 승복할 수 없다며 인권위를 비롯한 국가기관을 찾아다니는 사례가 허다하며, 인권위 역시 인권위 결정에 불복하여 행정심판 등에 다시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사법기관이나 행정기관 역시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하게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소송이나 진정  등은 처리 구조상 때론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양 당사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갈등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조정' 제도다. 조정은 제기된 사건의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갈등 상황에 있는 양 당사자 간에 제3의 국가기관이 개입해 갈등을 조정하는 제도다. 조정과정은 비밀에 부쳐지고 따라서 조정기간 동안에 공개된 정보는 조정에 참여한 당사자 외 제3자에게 공개될 수 없다.


  조정은 어느 한쪽이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정이 성립되지 않는 양 방향이면서, 조정 과정에서도 당사자의 행위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기 보다는 갈등 해소 및 치유에 중점을 둔다는 측면에서 가장 인권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정은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발생하므로 그 실효성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조정사건은 위원회의 조정 활성화 방침에 따라 2016년 4월말 현재 최근 3년간 연평균 조정 접수 건수(3건)의 2배에 해당하는 조정사건이 접수(6건)되는 등 연말까지 조정사건 접수 및 조정위원회의 개최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정은 진정 접수 단계 또는 조사 과정에서 당사자의 신청이나 인권위의 직권으로 조정위원회에 회부된 진정에 대해 조정을 통해 당사자 간 합의로 자발적 해결에 도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로 진정사건('15년 평균 처리일수 118일) 대비 처리의 신속성(평균 처리일수 60일)으로 속도감 있는 갈등 해결은 물론 조정 성립 시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 발생으로 구제 효과의 실효성 제고, 사회적 갈등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조정은 침해와 차별을 넘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홍주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운영지원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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