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만난사람 [2016.02] 마음 깊은 곳에 길을 내리
글 박경화 사진 이강훈
┃ 편견 이상의 편견
장애를 빗대 '불구(不具)'나 '비정상(非正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비하의 의미를 담은 단어들을 피하면서 장애와 장애인을 지칭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시대. '미쳤다'라는 평가를 아무렇게나 받기도 하고, '정상적인' 판단이나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고 가볍게 치부되며, 심지어는 아무렇지도 않게 몇 년씩 신체의 자유가 구속되기도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정신장애인들이다.
사전적으로 정신장애는 심신장애와 같은 말이다. '사물을 판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불완전한 상태'라고 정의된다. 사전 그대로 '마음과 정신(心神)'상의 문제이다 보니 물리적으로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신체장애에 비해 관련 연구나 인권 보호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낮은 상태다. 남에게 알리기 부끄러운 질병이나 유별난 성격 정도로만 오인되기도 일쑤다. 밝혀지지 않은 뇌의 비밀스러운 메커니즘처럼 꽁꽁 숨겨져 있던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의 인권을 위해 한 걸음씩 전진하는 사람, 권오용 한국정신장애연대 사무총장(예인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을 만났다.
┃ 불안과 불면의 밤, 새로운 새벽을 안기다
실패를 모르고 질주하던 5년차의 젊은 검사는 어느 날부터 살아가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까다로운 사건도 그의 손을 거치면 술술 풀려나가던 때였다. 낮에는 격무로, 밤에는 술자리로 정신없이 달리던 1992년 연말. 그에게 급격하고도 심각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불빛 하나 없는 긴 터널을 혼자 터벅터벅 걷는 듯한 날들이었다. 휴직계를 내고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검사직을 완전히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출근해서 하는 일이라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어둠 속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것이 전부였다.
“병문안을 온 친구가 정말 반갑고 고마운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우울증이었습니다. 무기력했고, 삶의 목적이 없었어요.”
고통은 본인만의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길고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불면과 불안을 이기기 위해 삼키는 약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기나긴 싸움 끝에 천만다행으로 종교의 힘을 빌려 점차 약을 줄였다. 이윽고 혼자 힘으로 잠을 자고 말을 하며,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을 때 그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정신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의 삶으로 눈을 돌렸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지난날의 자신을 버린 거죠. 돈벌이는 안 되더라도(웃음) 세상에 쓸모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사회사업대학 사회사업학 석사학위(MSW)를 취득하고 지역사회의 정신보건센터와 함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리고 2005년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인 '클럽하우스 해피투게더'의 시설장이던 여기동 교수(문성대 간호학과)와 인천시 중구정신보건센터가 힘을 모아 인천 종합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정신장애인과 가족들이 함께하는 송년음악회를 개최했다.
“관객이 들지 않을 것 같아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찾아주신 정신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이 한 자리 한 자리 채우던 순간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요. 할 일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정신보건포럼 활동과 정신장애인 사회복지시설 간담회 등을 통해 정신장애인 인권 실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2010년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각계 전문가, 인권활동가 등 151명의 발기인과 곽정숙(전 국회의원), 정신보건사회복지학회 등이 참여해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Korea Alliance on Mental Illness)를 출범시켰다.
┃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않다
“영문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한국정신장애연대는 미국의 정신장애인 환자와 가족의 모임인 나미(NAMI, National Alliance on Mental Illness)를 모델로 했습니다. 미국 전역 1200개의 단체가 참여하는 풀뿌리 인권운동단체인 나미를 본보기 삼아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교육 훈련 사업, 인권 옹호, 상담·자문 등의 지원, 그리고 연구 활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죠.”
권오용 사무총장은 “처음엔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며 웃는다. 정신장애의 정의부터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심리적 갈등 상황에서 유발되는 우울, 불안, 강박이 심화되는 신경증(Neurosis)과 조현병, 조울증 등의 정신병(Psychosis)이 그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질환을 앓은 적이 있거나, 현재 병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정신장애인으로 분류하지는 않아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벼운 신경증 정도는 아주 빈번히 발생하니까요. 이렇게 사람마다 그 증상의 차이가 매우 큰 것이 정신질환의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장애인의 범주를 특정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장애는 개인적, 환경적, 증상적 부분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상호 과정의 결과이니까요.”
그의 말처럼 정신질환과 정신장애의 경계는 지금도 모호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분석 방법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신장애인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의사결정권 제한 등의 개념을 포함한 새로운 개념이 통용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Psycho Social Disability(심리 사회적 장애)'라고 부르는 흐름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과 더불어 우리 정신장애연대가 추구해야 할 활동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분기점은 2012년에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장애포럼'이었지요. 이 행사에서 국내외의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우리 사회에 '당연하게' 존재하고 있던 차별의 벽을 확인하고, 국제 사회의 기준에 걸맞은 인식과 제도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권오용 사무총장과 한국정신장애연대가 깊은 영감을 받은 것은 유엔총회가 2006년에 채택한 새로운 '장애인권리협약'의 개?하고 있던 의사결정권구금, 법적인 제재??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 협약은 장애인의 '법적 능력(Legal Capacity)'을 인정한다. 장애인은 법적 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받아야 하는 존재일 뿐이지 이를 누군가가 대신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같은 의미로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에서도 그 권리를 인정받아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7년 이 협약에 서명했고 2009년부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실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은 생각 이상으로 아주 비참한 수준입니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정신병원에 구금한 후 전화통화도, 면회도, 퇴원도 모두 막아버리는 사례는 너무나 많이 일어납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환자가 사망해도 그 병원은 버젓이 영업을 계속하고, 구금을 요구한 당사자도 처벌받지 않아요. 몇 년 전 경기도 화성에서는 정신장애인의 가족에게 '이사를 가거나 당사자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것'을 강요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수천 명에 이르는 진정인이 나섰고, 수도 없이 집회를 열었지만, 주민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어요. 자격증 취득도 못하고, 국회 출입도 제한됩니다. 이렇게 정신장애인의 취임·취업·활동을 제한하는 차별적인 규정을 둔 법률만 70여 개가 넘습니다. 심지어는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애인복지법에서도 정신장애인은 일부 규정에서 배재하고 있습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관습의 편견 안에서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설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 그 아프고 참담한 실정과 제도의 현황을 파악하며 권오용 사무총장은 지난 5년간 '기본기'를 다졌다. 올해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위해 '모델법안'을 만들 예정이다. 비슷한 제도적 현실을 가진 일본과 대만의 학자들과 함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부합할 수 있는 법안을 한 줄 한 줄 만들어갈 계획이다. 국제법을 의식해 '흉내만 내는' 법안이 아닌, 깊이 있는 지식과 경험이 내재된 아이디어를 풍성하게 채워갈 예정이다.
┃ 더불어, 조금씩, 단단하게
지난 5년간 인권위에 접수된 정신보건시설의 인권침해 진정 사건은 1만여 건에 이른다. 같은 기간 접수된 전체 진정 사건의 18.5%에 이르는 수치다. 정신보건시설에 수용된 8만여 명 중 73.1%가 보호의무자의 강제입원제도에 의해 입원한 실정. 인권위는 부당하게 강제 입원된 사람이 '인신 구제 청구' 등의 제도로 퇴원을 할지라도 또다시 이송업체 구급차로 곧바로 다른 병원에 옮겨지는 '회전문 입원'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강제입원제도는 현재 위헌법률 심판이 제청돼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이다.
“인권위와 보건복지부 등에서도 저희 정신장애연대의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또 함께해주고 계십니다. 정말 감사드릴 일이지요. 저희는 언제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부 기관과 함께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침해 사례를 공유하고 이의 개선을 위해 기꺼이 대안을 내놓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권오용 사무총장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해줄 것을 당부한다.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지만, 창의적인 생각과 다양한 역량을 가진 정신장애인이 많습니다. 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노동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활동가를 발굴하는 것도 저희가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장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가는 것, 그래서 나아가 전 국민의 사회복지와 인권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는 것. 그것이 저희의 궁극적인 바람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편견의 더께를 벗겨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초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디지만 꾸준히 걸어왔고, 천천히 걸어온 만큼 깊이 있고 지혜로운 지식과 전문성을 쌓았다. 변화는 그저 지금 시작되었을 뿐이다.
박경화 님은 크리에이티브 랩 '이로이로'의 대표로 기획과 글쓰기를 업으로 한다. 십여 년에 걸쳐 수 천 장의 글을 지어 왔으며, 2016년에는 글이 길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