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6.02] <유럽인권재판소 판결 읽기2> 테러혐의자 추방 인권침해인가?
글 박성철 그림 이우일
┃ 영국, 테러혐의자 추방 시도
아부 카타다는 오사마 빈 라덴의 오른팔로 불렸다. 1960년 요르단 서부 베들레헴 인근에서 태어나, 30대 초반인 1993년 9월 영국으로 망명했다. 런던 북부 핀즈베리파크 무슬림 사원 등지를 누비며 이슬람 사상가로 이름을 알린 카타다는 유럽에 이슬람 교리를 전파하며 근본주의자들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던 중 1999년과 2000년 두 차례 폭탄 테러 혐의로 요르단에서 기소돼 궐석재판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영국은 카타다가 안방에서 자유로이 종교 갈등을 부채질하는 게 못내 불편했다. 테러범죄방지와 안전법(Anti-terrorism, Crime and Security Act 2001)을 도입하면서, 2002년 10월 카타다를 체포 구금했다. 그 후 2005년 카타다가 보석으로 석방되자 영국 정부는 자국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인물로 카타다를 지목하고 요르단으로 추방하려 했다.
카타다는 추방에 맞서 법정투쟁을 시작했다. 10년 가까운 공방이 이어졌다. 영국특별이민항소위원회(The United Kingdom Special Immigration Appeals Commission)는 카타다의 이의를 기각해 추방이 적법하다고 보았으나, 제1심과 항소법원은 추방이 허용되지 않는다며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은 다시 판결을 뒤집어 영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카타다는 마지막 보루로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에 제소했다. 2012년 1월 17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Right to a fair trial)'를 규정한 「유럽인권협약(The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제6조 위반을 인정한 유럽인권재판소의 첫 판결이 내려졌다[Abu Qatada v. The United Kingdom, App no 8139/09 (ECtHR, 17 January 2012)].
┃ 어느 누구도 비인도적 처우 받지 않아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침해 이전에, 어느 누구도 고문이나 비인도적인 처우 또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정한 유럽인권협약 제3조 위반여부가 치열하게 다퉈졌다. 만일 카타다가 요르단으로 추방되면 고문과 같은 반인권적인 처우를 받게 될 게 뻔하다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영국 정부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었다. 영국은 양해각서( 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 체결이라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카타다가 비인도적 처우를 받을 처지에 놓일 여지를 없애려, 요르단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카타다를 송환받은 요르단정 부는 카타다가 반인권적인 대우를 받지 않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독립기구의 감시도 받도록 약속했다.
영국 정부는 양해각서 체결로 문제가 풀렸다고 주장했다. 요르단 정부가 양해각서를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데다 카타다가 워낙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며 독자적인 인권기구에서 모니터링까지 하기로 했으므로, 본국으로 돌아간 카타다가 고문당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할 수 있다는 걱정은 막연한 기우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다.
카타다는 양해각서가 해법이 될 수는 없다고 맞섰다. 양해각서 조항에 모호한 내용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더 본질적 차원의 문제로 단지 두 정부가 체결한 양해각서는 너무나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보편적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국제규범의 정립과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강제 조치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도 서로 이해관계가 맞는 두 정부가 형식적으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방식으로 인권 문제를 풀어가려는 시도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일갈했다.
요르단을 위시한 중동의 정세가 불안정하고 다양한 세력이 복잡하게 충돌하는데다 정부가 공권력을 안정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얼굴이 알려진 인물이라는 점은 도리어 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도 항변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유명한 인물이라고 해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 카타다, 강제조치 없는 양해각서는 면피용
독립기구의 감시도 고문을 방지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였다. 감시기구 자체가 독립성이 취약할 뿐 아니라 고문과 같은 행위는 속성상 대단히 은밀하게 자행되기 때문에 쉽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말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모니터링하겠다는 감시기구는 허울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면피용이 될 뿐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유럽인권재판소는 카타다가 추방되면 고문과 같은 비인도적 처우를 받게 될 것이라는, 유럽인권협약 제3조 위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카타다가 인권유린 행위를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는 추상적인 반면, 양해각서를 통해 카타다가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구체적인 조치들이 취해졌다고 평가했다.
유럽인권재판소가 인권협약 위반이라고 판결한 근거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침해였다. 만약 카타다가 본국으로 추방되면 고문으로 얻어낸 증거로 재판받을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영국 정부의 카타다의 추방은 유럽인권협약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카타다가 요르단에서 테러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기소돼 종신형을 선고받을 때 유죄를 뒷받침한 증거는 동료에 대한 고문으로 얻어졌다는 의심이 짙었다. 카타다에 대한 재심이 진행되어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리라고 본 셈이다.
유럽인권재판소는 법의 지배를 받는 사법제도라면 고문과 같이 야만적인 행위로 얻어진 증거를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예외가 없다고 천명했다. 설령 그 증거가 실체 진실에 부합하고 신뢰할 만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결단코 허용될 수 없다는 뜻이다. 재판 절차는 법의 지배라는 이념과 가치의 주춧돌이며, 만일 고문으로 얻은 증거가 재판에 유입된다면 사법절차는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된다고 말했다. 어떤 사법제도라도 고문으로 더러워진 증거에 손을 대는 순간 신뢰를 잃어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판시했다.
┃ 유럽인권재판소, 고문으로 얻어진 증거 안 돼
재판 절차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정의와 인간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고문으로 획득된 증거는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물러설 수 없는 이 원칙은 법의 지배라는 가치 그 자체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반인권적인 행위로 취득한 증거 채택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합의 판단했다. 고문으로 얻은 증거는 재판을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기제로 만들고 결론마저 믿을 수 없게 해 사법제도의 뼈대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판결했다.
나아가 카타다에게 고문으로 얻은 증거임을 입증토록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보았다. 카타다가 궐석재판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을 때 이미 고문으로 받아낸?은 밀실에서 자행되는데도 카타다가 타인에 대한 고문사실까지 증명토록 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태?를 입히는 숙련된 고문기술자들이 여전히 암약하고 있으며 법원, 검찰, 심지어 의료 전문가까지 공모해 고문 흔적을 감추는 현실을 감안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요르단에서 고문 관행이 널리 퍼져 있을 뿐 아니라 고문으로 얻은 증거가 법정에서 손쉽게 인정된다고 썼다. 요르단 법률이 고문에 의한 자백을 배제하는 조항을 두고 있지 않은 한계도 밝혔다. 그러다 보니 법원이 자백에 관대한 태도를 취하게 되고, 고문으로 얻은 자백인데도 그저 자백을 했다는 이유로 널리 유죄가 선고되는 현실을 직시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양해각서가 카타다 한 사람을 보호하는 조치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요르단 사법제도의 토양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본 것이다. 양해각서 체결로 카타다에 대한 고문을 막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피고인과 증인들을 고문해 만들어진 증거가 카타다에 대한 재판에 영향을 끼치는 것까지 피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고문은 야만성에 터 잡은 절대악 그 자체이며 사법절차를 썩어 병들게 하는 원인으로 설명했다. 고문으로 얻은 증거를 만연히 수용하는 행위는 사법 정의를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태도여서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박성철 님은 변호사로 법무법인 지평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