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살 예방의 날’
국가인권위원장 성명
- 재난의 시대, 생명의 가치에 더욱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때 -
9월 10일은 생명의 소중함과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예방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공동으로 제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입니다.
유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2017년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다루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부족하다고 우려를 표명하면서, 교육 및 노동에서의 과도한 스트레스, 노인 빈곤, 성소수자와 같은 특정 집단이 겪는 차별과 증오 발언 등 사회적 근본 원인을 다루는 것을 포함한 자살예방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그 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살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토론회 개최, 자살에 대한 선정적 표현 예방 조항 마련 등을 위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개정 권고(2013),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2016), 노인자살 위험자 조기발견 및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인 자살예방을 위한 정신건강 관련 제도개선’ 정책권고(2019), 혐오표현에 대한 청소년 인식조사(2019), 군 초급간부 자살예방을 위한 정책강화 권고(2020)를 실시하는 등 자살예방을 위하여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2011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2018년 범정부 차원의 ‘자살예방국가행동계획’을 수립하여 자살고위험군 발굴체계 구축,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고위험군에 대한 적극적 개입, 국가 자살동향 감시체계 구축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기구(OECD)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습니다. 우리나라 사망원인 5위가 자살이며, 특히 10대 부터 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로 보고되고 있습니다(통계청, 2019). 경찰청 변사자 통계(2018) 자료에 따르면, 10~30세에서는 정신적 어려움, 31~60세 사이에서는 경제적 어려움, 61세 이상에서는 육체적 어려움이 극단적 선택의 동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욱이 온라인상에서의 혐오표현은 스트레스,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야기하며 일상생활에서의 불안을 유발하거나 자존감 하락을 부추기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장애인(58.8%), 이주민(56.0%), 성적 소수자(49.3%)는 혐오표현을 접한 이후 거의 절반 정도 이상이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국가인권위원회,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 2016).
코로나19의 확산은 우리 사회의 일상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취약계층의 사회적 고립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비대면 접촉이 일상화되면서 공동체의 유대감은 약화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며, 정신건강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한편 온라인을 통한 생명경시, 혐오, 차별, 성희롱적 표현 등 사람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그 내용이 무차별적으로 전달되는 현상은 여전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인권의 출발점이며, 인간존엄성 실현이라는 기본권 보장의 본질적 요소입니다. 그런데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고통 받고 있거나, 경제적 이유로 낙오되어 있거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로부터의 배제 등 인권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인권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할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사회가 좀 더 세심하고 실질적인 자살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소외, 혐오와 차별 극복을 통한 인권적 가치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2020. 9. 10.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최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