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 제2집〉 발간
2009. 6.까지 2년간의 성희롱 시정 사례 및 관련 통계자료 수록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는 2009년 11월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 제2집〉을 발간했습니다. 이는 지난 2007년 6월 발간한 〈성희롱 시정 권고 결정례집〉에 이은 것입니다.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 제2집〉은 국가인권위원회가 2007년 6월부터 2009년 6월까지 시정을 권고한 성희롱 사례 32건의 결정 내용들을 모은 것입니다. 아울러 결정문이 작성되지는 않지만 조정과 합의를 통해 피해자의 권리구제가 이루어진 사례들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또한 성희롱 진정의 접수 및 처리 현황에 대한 전체 통계 분석을 더했습니다.
성희롱은 피해자 개인에게는 폭력이고, 사회적으로는 적대적 고용환경과 고용관계 이탈을 초래하여 개인과 사회에 손실을 끼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간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어느 정도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성희롱 문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에 적지 않은 혼란과 오해가 존재하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하여 최근 ‘성희롱 예방 포스터’를 제작, 배포한데 이어, 이번 사례집의 발간을 통해 실제로 발생하는 성희롱 사례 및 그에 대한 판단기준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성희롱 문제의 현주소
〈사례1〉 손바닥을 긁는 은밀한 제스처도 성희롱
관람시설 운영 회사의 부장인 피진정인은 안내 직원으로 근무하던 피해자에게 다가서서 손을 잡고 손바닥을 긁었으며 귀를 만지면서 몸을 쓸어내리는 등 업무적 대면을 명목으로 여러 차례 신체접촉을 했습니다. 특히 피해자는 손바닥을 긁는 행위에 대해 의아하면서도 불쾌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러한 제스처가 성적 관계를 제의하는 은어적 표현으로도 쓰인다는 점을 알게 되자 더욱 심한 성적 굴욕감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사장은 직원들에게 ‘남자끼리도 손바닥 긁는 장난을 한다’고 하면서 ‘가족적 분위기에서 친밀감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라’는 발언을 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피진정인과 같은 사무실로 전보되자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피진정인의 행위가 직장 내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에 해당하고, 회사 측에도 성희롱에 취약한 근무환경을 방치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손해배상과 징계, 재발방지대책 수립 등 조치들을 권고했습니다.
〈사례2〉 직장 내에서 부적절한 호감 표시는 삼가야
소규모 컨설팅 회사의 사장인 피진정인은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미혼 남성인 진정인에게 공공연히 팔짱을 끼었고, 진정인이 거부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그러한 행위를 계속하였습니다. 또한 피진정인은 진정인의 개인적인 술자리에 찾아가 사랑한다고 말하고, 휴대전화 문자 또는 음성메시지를 통해서도 자신의 감정 상태를 밝히거나 ‘대화를 거부하면 고용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표현을 하여 진정인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진정인은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퇴사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피진정인은 진정인에게 이성으로서의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 진정인을 괴롭히려 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라 해도 고용관계의 당사자 간에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행위로서 진정인에게 성적 굴욕감과 고용상 불이익을 미쳤다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피진정인에게 손해배상 및 특별인권교육 수강을 권고했습니다.
〈사례3〉 성희롱 피해를 방관한 직장도 책임을 져야
대기업의 부장으로 근무하던 피진정인은 직장 내에서 수시로 부서원인 진정인의 등과 옆구리를 만지는 행위를 하였고, 해외 출장 중에는 ‘상사를 잘 모시라’고 하면서 진정인의 엉덩이를 쳤습니다.
참다못한 진정인은 이 사실을 회사에 알렸으나 회사 측에서는 형식적인 조사만을 거친 뒤 ‘피진정인이 부인하므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별다른 조치 없이 사건을 종결지었습니다. 오히려 진정인은 문제제기 후 전보 요청을 하였음에도 7개월간 대기발령 상태로 방치되었고, 피진정인과 마주치지 않도록 공간적으로 분리시켜 주는 등의 배려 조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실질적인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참고인들의 진술을 종합할 때 피진정인의 언동이 사실로 인정되고, 회사 측에서 철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진정인의 피해를 가중시켰다고 판단하여 재발방지대책의 수립과 시행을 권고했습니다.
〈사례4〉 불리한 관계에 놓인 상대방의 입장을 악용하기도
모 초등학교의 교사이자 정보부장을 맡고 있던 피진정인은 회식 자리에서 민간업체로부터 파견되어 컴퓨터 보조교사로 근무하던 진정인의 손과 어깨, 등을 만지고 입술에 손을 대는 행위를 하였으며, 이를 목격한 다른 보조교사는 충격을 받아 다음날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피진정인은 진정인에게 ‘누가 회식 사실을 학교에 알렸는지’ 추궁한 데 이어 자신의 권한을 넘어 출・퇴근일지 작성을 요구하고 업무상 실수를 빌미로 연필을 던지며 고함을 지르는 등 진정인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습니다. 결국 진정인이 소속 회사에 배치전환을 요구하고 교육청에 탄원서를 낸 뒤에야 피진정인은 민원을 취하해 달라며 진정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직접 찾아가는 등의 뒤늦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학교에 파견 근무하는 직원이 소속 회사와의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학교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구제받기에 취약한 상황에 있다고 판단하여 관할 교육청에 피진정인의 징계와 재발방지대책 수립을 권고했습니다.
〈사례5〉 공직 사회도 성희롱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아
공무원 시보(공무원법 상 신분보장이 일정기간 미적용되는 수습 공무원) 로 임용되어 모 시의 소속기관에서 근무하던 진정인은 부서장인 피진정인으로부터 애인 관계를 맺자는 제안을 받았고, 음식점에서 신체접촉을 당했으며, 피진정인에게 이끌려 모텔에 들어갔다가 간신히 신체접촉을 모면한 일도 있었습니다. 진정인은 기관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 시정을 구했으나 피진정인은 ‘남녀관계는 애매모호한 것’이라는 식의 변명을 내세웠고, 심적 고통이 가중된 진정인은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모 구청의 공무원인 진정인은 구청 인사업무 담당자인 피진정인과 고충상담을 계기로 알게 되어 피진정인에 대한 답례로 함께 식사자리를 가졌는데, 피진정인은 대화 중 ‘난 직설적이어서 여자와 자고 싶으면 자고 싶다고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한 데 이어 우산을 쓰고 함께 걷던 진정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입을 맞추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진정인은 주위에 이러한 사실을 알리면서 피진정인이 인사 권한을 갖고 있는데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였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신규 또는 하위 직급 공무원의 임용과 승진 등 신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피진정인들이 그와 같은 성적 언동을 한 데 대한 책임을 인정하여 임용권자에게 이들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를 권고했습니다.
통계로 살펴본 성희롱 사건의 여러 측면과 시사점
〈진정 접수 추이〉
2005년 6월 23일 성희롱 시정 기능이 국가인권위원회로 이관된 이후 진정 접수 건수는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면서 현재 연간 150건 내외의 사건이 제기되고 있고, 2009년 6월말 기준 누계는 562건에 이릅니다.
〈성희롱 당사자의 현황〉
위 562건 중 여성 피해자는 97.7%(549건)로 여전히 성적 불평등이 심각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성이 피해자인 경우도 13건이며, 이 중 성희롱으로 인정된 예도 있어 성희롱은 단지 특정 성만의 문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사자 간의 관계를 보면 직장 내 상하관계의 비중이 단연 높고, 교육-피교육 관계나 보호・수용관계에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아 성희롱이 권력관계와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피진정인의 지위에서는 기업 등의 경영자(24.2%)와 중간관리자(22.6%)가 약 절반을 차지합니다. 또한 공무원・공공기관 임직원 15.1%, 교직원 13.3% 등 모범을 보여야 할 지위에서 많은 성희롱이 발생했습니다.
〈성희롱의 발생기관, 장소 및 양태〉
성희롱의 발생기관을 부문별로 보면 기업, 단체 등 사적 부문이 72%를 차지하는 한편, 공공기관과 교육기관 등 공적 부문도 28%로 성희롱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발생 장소는 직장 내인 경우가 절반을 차지하고, 직장 밖에서도 업무의 연속선상에 있는 회식이나 출장 중에 적지 않은 성희롱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밖에 교육현장과 수용・보호시설 등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입니다.
성희롱의 양상은 신체적 성희롱 35.1%, 언어적 성희롱 30.8%, 시각적 성희롱 3.6% 등으로 나타나지만 그 양상이 어느 한 가지에만 해당하기보다 복합적인 경우도 30.6%나 됩니다.
〈진정 처리 결과〉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년 6월까지 522건의 성희롱 진정을 처리했습니다. 이 중 시정 권고, 당사자 간 합의, 조정 등 인용 사건이 25.2%를 차지하고, 위원회의 조사 중 자체 시정이 이루어진 사례도 16.3%에 이릅니다.
시정 권고의 내용으로는 피진정인에 대한 인권교육 수강, 징계 또는 경고조치, 손해배상을 비롯하여, 해당 기관의 재발방지대책 수립, 당사자간 근무지 조정 등을 권고하였습니다. 또한 진정인의 후속적인 권리구제를 지원하기 위하여 법률구조요청을 권고한 사례도 있습니다.
합의, 조정이 성립했거나 조사중 해결된 사건에서는 피진정인의 사과가 가장 주된 내용을 이룹니다. 성희롱은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미 성희롱적 언동이 발생하였더라도 초기에 잘못을 진솔하게 인정함으로써 문제를 치유할 여지가 적지 않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