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국가기관 최초로 원폭 1세.2세 실태조사“원폭1세, 일반인보다 우울증 93배, 조혈계통 암 70배 더 많이 발병” “원폭2세 사망자 중 10세 미만이 52.2%, 과반수가 원인불명.미상”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도)는 2004년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 원폭피해자 2세에 대한 기초현황과 건강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의뢰해 「원폭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과 건강실태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국내외 자료에 따르면 1945년 원폭으로 피해를 입은 한국인은 약 7만여 명(추정치)이며, 이 중 1만여 명(1세 2,300여 명, 2세 7,500여 명, 1세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등록자 기준이며 2세는 추정치)이 현재 한국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이번 조사는 원폭피해자 2세의 현황과 건강실태를 파악함으로써 원폭피해자의 건강상의 문제와 의료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여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수행됐습니다. 본 조사는 △원폭피해자 1세․2세를 대상으로 한 건강관련 우편설문조사(1세 1,256명, 2세 1,226명) △일부 피해자들에 대한 건강진단(1세 223명, 2세 49명) 및 심층인터뷰(2세 47명) △원폭 피해와 관련된 일본과 한국의 지원제도에 대한 검토 등을 통해 피해자 자신과 그 가족들의 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파악하는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조사결과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1. 원폭피해자 1세의 건강실태경남 합천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일부 원폭피해자 1세(223명)에 대한 건강진단 결과(혈압 등 17개 항목)를 ‘대조군’(2001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통해 비교할 수 있는 일반국민)과 비교한 결과, 이완기 혈압, 간효소 AST/ALT, 혈액요소질소 등은 원폭피해자 1세 집단의 수치가 높았고, 헤마토크리트, 공복시 혈당, 크레아티닌 측정값은 낮게 나타났습니다. 또한 우편설문조사 분석(1,256명)을 통해 나타난 원폭피해자 1세들의 질병이환상태(질병이 발생하는 정도)와 2001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 ‘대조군(일반국민)’의 질병이환상태를 비교해 ‘표준화이환비’(대조군을 기준으로 할 때 분석집단의 질병 발생 정도를 비율로 나타낸 값)를 계산했습니다. 그 결과 일반국민에 비해 원폭 1세대에게서 우울증이 가장 흔하게 발생했고(93배), 그 다음으로 백혈병이나 골수종과 같은 림프, 조혈계통의 ‘악성 신생물(암)’(70배), 빈혈(52배), 정신분열증(36배), 갑상선 질환(21배), 심근경색증이나 협심증(19배), 위․십이지장궤양(13배), 천식(9.5배), 자궁암(8.7배), 위암(4.5배), 뇌졸증(3.5배), 당뇨병(3.2배), 고혈압(3.1배)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대장암, 간암, 피부암, 폐암 등의 표준화이환비는 통계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2. 원폭피해자 2세의 건강실태원폭피해자 1세의 우편설문조사를 통해 자녀들의 성별, 생사여부 등 기본 정보를 충실히 제공한 1,092가구의 자녀 4,080명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원폭피해자 2세 중에서 7.3%인 299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들의 사망시 연령은 10세 미만(52.2%)이 가장 많았습니다. 또한 사망 원인으로는 원인불명이거나 미상인 경우(60.9%)가 가장 많았으며, 감염성 질환(9.4%), 사고사(8.0%)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현재 생존해 있는 원폭피해자 2세 3,781명 중에서 선천성 기형과 선천성 질병이 있다고 보고된 경우는 19명(0.5%)이었는데, 이 중 정신지체가 7명(0.2%)으로 가장 많았고, 척추이상 4명(0.1%), 골관절 기형 2명(0.05%) 등이 그 뒤를 이었으며, 다운 증후군, 심장 기형, 선천성 면역글로블린 결핍증, 선천성 황달, 소이증, 토순 등은 각 1명씩 보고되었습니다.이 밖에도 전국에 산재해 있는 원폭피해자 2세에 대한 우편설문조사도 병행하였는데, 응답자 중에서 본인의 생년월일, 성별 등을 정확히 기재한 1,226명의 설문지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원폭피해자 2세 남성들이 스스로 보고한 질병의 경우, 같은 연령대의 일반국민에 비해 빈혈 88배, 심근경색․협심증 81배, 우울증 65배, 천식 26배, 정신분열증 23배, 갑상선 질환 14배, 위․십이지장 궤양 9.7배, 대장암 7.9배, 뇌졸중 6.1배, 고혈압 4.8배, 당뇨병 3.4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반면 간암, 위암 등의 표준화이환비는 통계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한편 원폭피해자 2세 여성들의 경우는, 심근경색․협심증이 89배, 우울증 71배, 유방양성종양 64배, 천식 23배, 빈혈 21배, 정신분열증 18배, 위․십이지장 궤양 16배, 간암 13배, 백혈병 13배, 갑상선 질환 10배, 위암 6.1배, 뇌졸증 4.0배, 당뇨병 4.0배, 고혈압 3.5배 높게 나타났으며, 유방암, 자궁암 등에서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또한 2004년 11월 3일부터 11월 15일까지 대구적십자병원에서 원폭피해자 2세 49명(환자로 파악된 자 일부 포함)을 대상으로 건강검진(혈압 등 20개 항목 검사)과 함께 심층면접(47명에 대해 개인의 질병력, 경제적 상태, 가족의 지지를 포함한 사회적 관계 등 면접)을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건강검진 항목 중 수축기혈압, 콜레스테롤 등에서 원폭피해자 2세 집단이 대조군(일반국민)에 비해 높게 나타났습니다. 한편 심층면접 결과 응답자 중에서는 근골격계 질환(18명), 전신탈모․소양증․종기 등 피부질환(9명), 정신질환(5명)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응답자의 42.5%가 직업이 없다고 답했고, 일부 응답자들은 ‘차별이 두려워 원폭피해 2세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결혼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습니다.이 같은 결과로 볼 때, 원폭피해자 2세도 원폭피해 1세들과 마찬가지로 일반국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강상태가 열악하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3. 일본의 원폭피해자에 대한 지원 실태조사1994년 일본정부는 피폭 50주년에 즈음하여 기존의 ‘원폭의료법’(1957년 제정)과 ‘원폭특별조치법’(1968년 제정)을 포괄하여, 원폭피폭자에 대해 군인 및 군속의 원호에 준하는 국가보상의 정신에 의하여 ‘피폭자원호법’을 제정했습니다.이로써 일본에서는 피폭자의 건강관리와 생활향상, 복지증진을 위하여 국가가 폭넓은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피폭사망자의 유족에 대해서도 국가위로금 성격의 특별장제비를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피폭자의 국적과 상관없이 한국인 피폭자들도 그 수혜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현재 일본에서는 원폭피해자 자손에 대한 영향을 연구, 조사하는 차원에서 원폭피해자 2세에 대한 건강진단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1세와는 달리 원폭피해자 2세에 대한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원호대책이나 법률은 없습니다. 다만, 일부 지방자치단체(사이타마(埼玉)현, 동경(東京)도, 카나가와(神奈川)현, 오카야마(岡山)현, 야마구치(山口)현 등)가 해당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원폭피해자 2세를 대상으로 의료지원이나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4. 한국의 원폭피해자에 대한 지원 실태조사원폭피해 한국인과 관련된 기존자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① 1973년 12월 경남 합천에 일본의 시민단체인 핵병기금지평화건국민회의의 지원을 받아 원폭피해자 진료소를 설치한 것이 한국에서 원폭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지원사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②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1977년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재한피폭자 무료치료 지원사업을 펼쳤습니다.③ 한․일 양국은 1979년 6월 25일 재한피폭자 의료원호사업으로서 피폭자의 도일치료, 한국인 의사의 도일연수, 일본인 의사의 한국 파견 등 세 가지 원칙에 합의했으나, 이 합의내용 중 실행된 것은 피폭자의 도일치료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매년 60명씩 2개월간의 제한적 치료 수준으로 시행되었습니다. 결국 이 사업은 그 실효성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1986년 11월 2일 중단됐습니다.④ 1989년 한국에서 전국민보험제도가 시작되면서 정부는 피폭자에 대해 본인부담금 중 50%를 부담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⑤ 노태우 대통령의 1990년 일본 방문을 통해 두 나라 정부가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위해 40억엔 규모의 지원금 갹출에 합의하고, 국내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복지사업의 규모가 다소 확대됐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원금 갹출은 전쟁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지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정부가 아닌 대한적십자사를 상대 당사자로 하여 지원금을 지불하고 집행을 위탁했습니다. 한편 1996년에는 일본측 지원금의 일부와 정부 지원금으로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건립돼 원폭피해 1세들의 요양시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5. 실태조사의 의미 및 향후계획이번 실태조사는 원폭 피해자 2세의 건강문제에 대해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실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원폭에 의한 피해는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충분히 규명되지 못하였지만, 본 연구결과 원폭피해는 그 특성상 1세뿐 아니라 2세 이후에까지 미칠 가능성이 상당 부분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원폭피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원폭피해자 1, 2세에 대한 역학조사 및 분자생물학적, 유전학적 조사 등이 실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권위는 향후 정부 차원에서 2세 이후에까지 미칠 건강상의 피해 문제에 대해 보다 종합적이고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원폭 피해자의 건강권 보호 및 복지를 위한 정책을 다각도로 검토할 예정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