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는 2002년 인권상황 연구용역사업의 일환으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의뢰해 범죄수사절차상 피의자의 인권침해실태에 대한 조사를 벌였습니다. 이번 조사는 서울, 영등포, 성동, 인천, 수원, 부산, 대구, 울산 구치소와 전주, 광주, 의정부교도소, 천안구치지소 등 12개 기관에 수용돼 있는 피의자 720명(각 소당 60명 조사, 여성 피의자는 각 소당 10명 내외, 총 122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습니다.
그 동안 범죄수사절차상 피의자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인권침해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자주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범죄수사절차상 피의자의 인권침해실태조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실정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인권위는 △피의자의 권리 고지 △체포 관련 인권침해 △수사과정의 인권침해 △변호인 접견권 침해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경찰관의 인권의식 등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조사결과는 피의자의 인권 및 법제도 개선을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피의자의 권리고지
현행 형사소송법상 피의자를 체포하거나 구속할 때는 피의자에게 피의사실과 피의자의 권리를 고지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결과 피의자의 권리고지 여부는 권리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나타났으며,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영장제시 및 각종 권리의 고지율은 사안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 가운데 피의자권리(변호사 선임권, 묵비권 등) 고지 비율이 84.2%로 가장 높게 나타나, 1987년 도입된 미란다 원칙이 어느 정도 정착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체포 이유 및 범죄사실의 요지 고지(76.3%)와 구속영장실질심사 청구권 고지(73.4%) 등도 상대적으로 잘 지켜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편 체포․구속시 체포자의 신분과 소속을 고지 받은 피의자는 66.7%였고, 체포․구속시 영장을 제시받은 피의자는 50.7%에만 그쳤습니다.
이밖에 권리고지의 인지도에 있어서도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체포․구속시 권리 고지를 받았다고 응답한 583명의 피의자 가운데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한 사람은 210명(36.0%)에 머물렀고, ‘조금 이해했다’(35.0%),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20.1%),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8.9%)라는 답변도 많이 나왔습니다. 또한 응답자들은 고지 받은 권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너무 간단히 말하고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다(62.5%)’를 가장 많이 꼽았고, ‘너무 빨리 말하거나 읽어서 알아듣기 어려웠다’(19.0%), ‘조서에 미리 작성된 내용을 읽을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12.1%), ‘고지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었다(5.9%)’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2. 체포관련 인권침해
1) 긴급체포
현행법상 피의자의 체포는 원칙적으로 영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고, 긴급체포는 제한적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 수사과정에서 긴급체포는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인권침해의 우려도 매우 높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도 체포유형 가운데 긴급체포가 289명(56.2%)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또한 ‘임의동행 후 긴급체포’가 132명(25.6%), ‘현행범으로 체포’는 61명(11.8%)이었으며, ‘영장에 의한 체포’는 33명(6.4%)에 그쳤습니다.
2) 부상
515명의 피의자 가운데 경찰 혹은 검찰 수사관의 체포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61명(11.8%)에 달했습니다. 부상 원인에 대해서는 ‘신체적 폭력으로 인한 부상’ 32명(52.5%), ‘경찰 장구로 인한 부상’ 25명(41%)로 등이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부상을 입은 경찰장구로는 수갑이 69%로 가장 많았고, 곤봉(17%), 방패와 전자충격기가 각각 7%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부상을 당한 후 치료를 받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진료를 받지 않았다’는 응답이 무려 88.5%에 이르렀습니다.
3) 임의동행
조사대상자 692명 중에서 임의동행후 체포된 피의자가 132명(19.1%)이었으며, 이 가운데 ‘동행에 응했다’는 응답자는 75.0%, ‘동행요구를 거부했으나 강압적으로 연행됐다’는 25.0%였습니다.
‘경찰이 임의동행시 자신의 신분 및 소속을 밝혔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피의자 132명 중 112명(84.8%)이 ’고지 받았다‘고 응답했고, 20명(15.2%)은 ’고지 받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경찰로부터 임의동행의 이유와 목적을 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43명(32.6%)만이 ’고지 받았다‘고 응답한 반면, 89명(67.4%)이 ’듣지 못했다‘고 응답했습니다. 한편 ’임의동행의 한계인 6시간 이내에 체포․구속됐다‘고 응답한 피의자는 무려 80%에 달했고, 나머지 20% 가량은 허용된 시간 범위인 6시간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나, 실제 수사과정에서 임의동행이 남용되는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4) 과잉 신체검사
체포 및 구속과정에서 과잉 신체검사(알몸수색)을 경험한 피의자는 44.7%에 달했습니다. 알몸수색이 이루어진 장소에 대해서는 ‘유치장내 신체검사실’이 93.9%로 가장 많았고, ‘조사실 및 강력반 사무실’이 5.5%, ‘샤워실 및 세면실’은 0.6%였습니다. 또한 과잉 신체검사를 경험한 309명의 피의자 가운데 ‘가운을 입지 않고 알몸으로 수색을 받았다’는 응답자는 158명(51.1%)이었으며, ‘과잉 신체검사 과정에서 경찰관의 손이 몸에 닿는 등 신체적인 접촉이 있었다’는 답변은 23.0%, ‘과잉 신체검사 과정에서 경찰이 성적인 모욕감을 주는 말을 했다’는 답변은 4.2%였습니다.
3. 수사과정의 인권침해
1) 욕설, 폭행
‘경찰에서 욕설이나 폭언을 들었다’가 50.1%이며, ‘협박을 받았다’가 26,0%, ‘협박․폭력․고문․성추행․성폭력 등의 가혹행위로 허위진술이나 자백을 강요받은 경험이 있다’는 19.5%로 나타났습니다.
2) 신체적 인권침해
경찰에서 수사를 받은 조사대상자 615명 중 74명(12.0%)은 ‘수사과정에서 경찰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부상까지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피의자는 15명(2.4%)이었습니다. 또한 신체적 폭력을 당한 사람 중에서 약 20%는 부상을 입었다고 응답했고, 나머지 80%는 부상까지 가지 않는 수준의 가벼운 폭력을 당했다고 밝혔습니다.
신체적 폭력을 당한 부위에 대해서는 ‘머리’가 31.8%로 가장 많았고, ‘얼굴’(23.5%), ‘상체’(18.9%), ‘무릎 및 다리’(17.4%), ‘둔부’(3.8%) 순으로 집계됐습니다. 또한 폭력에 사용된 도구로는 ‘손이나 발’이 약 70%에 이르렀고, ‘손으로 맞았다’ 47.2%, ‘발로 맞았다’ 22.4%, ‘책이나 서류 뭉치 등 사무용품’ 21.6%, ‘곤봉과 수갑 등 경찰 장구’ 6.4%, ‘야구 방망이나 파이프, 드라이버 등’이 2.4%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폭력 횟수에 대해서는 ‘1~2회’(77%)가 대부분이었지만, ‘5회 이상’과 ‘10회 이상’도 각각 5.4%에 달했습니다.
수사과정에서 경찰장구의 사용과 관련하여 ‘최장 1시간 이상 수갑을 찬 적이 있다’고 응답한 피의자가 185명( 26.7%)으로 가장 많았고, 2시간 128명(18.5%), 3시간 8명(14.2%), 4시간 55명(7.9%), 5시간 59명(8.5%) 등으로 조사됐습니다. 또한 12시간 이내가 91명(13.2%), 24시간 이내는 9명(1.3%)이었고, 응답자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수갑을 찬 경우는 무려 72시간이었습니다.
4. 변호인 접견권 침해
변호인을 선임한 피?의자 539명 가운데 ‘변호인 접견이나 변호인에게 연락할 것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응답자는 5.0%로 나타났고, 거절횟수는 1회(33.3%) 2회(40.7%), 3회(22.2%), 4회(3,7%)였습니다.
변호인 접견이나 연락 요청을 거절 당한 사유로는 ‘수사중’(70.4%)이 가장 많았으며, ‘수사지연 목적으로 판단한 경우’와 ‘접견시간 경과’ 각각 11.1%로 조사됐습니다. 이밖에 ‘규정 불충족’의 이유로 거절당한 경우도 7.4%나 됐습니다.
5. 의료권 침해
조사대상자 692명 가운데 ‘체포당한 뒤 아픈 적이 있었다’고 응답한 피의자는 171명(24.7%)이었습니다. ‘아픈 적이 있다’고 응답한 피의자를 시점별로 보면 ‘경찰 수사시’(31.0%), ‘검찰 수사시’(19.9%), ‘경찰과 검찰 수사시’(49.1%)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응답자들은 대부분 체포(구속 포함) 이전부터 질병을 앓아온 것으로 조사됐으며, ‘체포(구속 포함) 이후 병에 걸렸다’고 응답한 피의자는 26.9%였습니다.
질병에 대한 적절한 조치 여부와 관련 27.5%만이 ‘적절한 조치를 받았다’고 응답한 반면, 72.5%는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피의자들은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유치장 및 구치감 구금시 특별한 배려 없이 건강한 피의자와 동일하게 취급됐다’(39.8%)를 가장 많이 꼽았고, ‘적절한 약을 제공받지 못했다’(38.0%), ‘약품 지급시간과 진료 대기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12.3%), ‘신문장소와 방법이 건강상태상 감당하기 어려웠다’(8.2%), ‘신문시간이 너무 길어 건강상태상 감당하기 어려웠다’(4.7%) 순이었습니다.
6.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미흡
여성 피의자 122명 중 체포․수사기간 동안 생리를 경험한 사람은 73명으로 약 60%를 차지했습니다. 이 가운데 64.4%는 ‘남자 수사관에게 생리대를 요청해야만 해서 불편했다’고 응답했고, 27.4%는 ‘생리대를 지급받기 어려워 함께 유치장에 구금된 피의자에게 빌려야 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또한 여성 피의자의 21.9%는 ‘생리와 관련하여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7. 경찰관의 의식
국가인권위는 이번 조사를 실시하면서 현재 경찰종합학교에서 교육받고 있는 경사 360명에 대한 의식조사도 벌였습니다.
그 결과 경찰관의 82.3%가 ‘범죄자의 인권보장과 범죄문제의 해결은 양립하기 힘들다’고 응답했으며, 87.5%는 ‘수사상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상의 권리를 다소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경찰관들은 피의자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서 상당히 높은 인식을 보였습니다. 응답자의 86.9%는 ‘피의자에게 구속영장 실질심사 청구권을 반드시 고지하여야 한다’는 데 긍정적인 의견을 밝혔고, 93.3%는 ‘피의자에게 체포나 구속되는 이유를 반드시 고지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또한 95.6%는 ’피의자에게 변명할 기회를 반드시 주어야 한다‘고 답했고, 92.4%는 ’피의자의 가족에게 피의자의 체포나 구속 이유 및 시기와 장소 등을 고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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