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가 기획하고 창작과비평사가 편집한 인권만화집 ꡔ십시일反ꡕ이 만화가 10명의 1년여에 걸친 작업을 거쳐 출간됐습니다. ꡔ십시일反ꡕ은 만화의 유쾌함과 인권의 유익함을 접목하려는 뜻 깊은 시도이며, 인권영화(여섯 개의 시선)와 인권동화에 이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문화 콘텐츠 제작 사업의 하나입니다.
지난 1년 동안 10명의 만화가들은 우리 사회의 차별에 관해 각자 소재를 정한 뒤, 해당 분야를 조사하고 취재했습니다. 또한 만화가들은 국가인권위에서 주최하는 강의를 듣고 토론를 함께 하면서 틀을 잡았고, 최종 완성된 작품을 놓고 수차례의 수정과 사실확인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ꡔ십시일反ꡕ은 열명이 모여 만든 책 한권으로 차별에 맞서겠다는 의도입니다. 한편으로는 말 그대로 만화가 열 명이 이루어낸 ‘십시일반(十匙一飯)’이기도 합니다. 차별의 반대(反)를 넘어서 우리사회의 지독한 편견과 굳어버린 습관을 통쾌하게 뒤집어(反)보려는 바람도 함께 담았습니다.
ꡔ십시일反ꡕ에는 사회계층, 빈부격차, 노동, 교육,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등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차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ꡔ십시일反ꡕ은 한국사회의 차별 실태에 관한 쉽고 재미있는 백서이자 자료집인 동시에 이 시대 우리의 자화상이 형상화된 작품집입니다. 또한 ꡔ십시일反ꡕ에는 홍세화의 단정하면서도 유려한 발문도 실려 있어, 청소년과 일반인들을 위한 ‘인권교과서’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ꡔ십시일反ꡕ에 참여한 작가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만화가들입니다. ꡔ십시일反ꡕ은 박재동, 손문상, 유승하, 이우일, 이희재, 장경섭, 조남준, 최호철, 홍승우, 홍윤표 등 만화가 10인이 뜻을 모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결실을 맺었다는 것으로도 큰 의의가 있습니다. ꡔ십시일反ꡕ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한칸의 현실 / 박재동 ․ 손문상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훑으며 날카롭게 포착한 갖가지 차별의 현실을 한 컷 짜리 만화들로 풍자했습니다. 박재동은 특유의 감각과 깊이로 장애인, 교육, 이주노동자, 여성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때론 우회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특히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이라크 전쟁 등 국제적인 사건에서도 차별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냈습니다. 손문상은 지역, 병역, 정규직, 조세 등 계층간의 차별에 주목했습니다. 사회에 내면화된 차별의 논리들을 깔끔한 손맛으로 풀어냈습니다.
2. 습관적인, 일상적인 / 홍승우 ․ 이희재 ․ 조남준
습관이 되어 이제는 익숙해지기까지 한 일상 속의 차별을 잡아냈습니다. 홍승우는 그간 탐구해온 주제를 더 깊게 파고들어, 가족관계에서 고정화된 성역할에 돋보기를 들이댔습니다. 임신과 육아, 가사노동과 직장생활을 생생하게 그리면서도 그 안에 웃음을 실어내는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이희재의 「첫발자국」은 한 장애 여학생이 학교에서 부딪히게 되는 차별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잔잔한 필치로 그렸습니다. 일상 속에서 ‘이동’과 ‘교육’이라는 기본권이 어떻게 침해받고 있는지를 꼼꼼히 묘사했습니다. 조남준은 ‘누렁이’라는 소재로 사뭇 분위기가 다른 두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누렁이 1」에서는 아파트 평수에 따라 나눠지는 계층의 문제를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표현했고, 「누렁이 2」는 가부장의 폭력과 여성차별을 가슴 아프도록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편견과 오만 / 이우일 ․ 홍윤표
우리 사회에 완고하게 자리 잡은 편견이야말로 차별의 씨앗임을 강조하면서 통쾌하게 편견 뒤집기를 시도합니다. 이우일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은 「아빠와 나」 연작을 ‘차별 버전’으로 선보였습니다. ‘아빠’로 대표되는 가부장의 지독한 편견은 소수자들에게 오만함과 폭력으로 발현되고 맙니다. 심각한 주제를 톡톡 튀는 웃음에 버무려낼 줄 아는 작가의 재능이 빛납니다. 홍윤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화를 뒤집어봄으로써 편견의 싹을 찾아냈습니다. 「미운 아기오리」에서는 왕따 문제를, 「인어공주」에서는 장애인 문제를,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는 여성 문제를 이끌어내는 작가의 발상이 신선합니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 유학중인 홍윤표는 온갖 유색인이 모여 사는 프랑스 사회를 보면서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한국사회 차별의 뿌리를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낯선 자화상 / 유승하 ․ 장경섭 ․ 최호철
낯설지만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인 소수자들의 삶을 따뜻한 연대의 시선으로 그렸습니다. 유승하의 「새봄나비」는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 장애인 운동가의 삶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장애인의 위태로운 생존권을 고발하면서, 장애인은 양육권을 행사할 자격이 없는가 하고 우리에게 되묻습니다. 장경섭의 「커밍아웃 블루스」는 한 동성애자가 아버지에게 커밍아웃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상상 속에서 커밍아웃할 뿐입니다. 독특한 분위기와 우울한 독백으로 성적 소수자의 고뇌를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최호철의 「코리아 판타지」는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일상을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극화한 수작입니다.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묘사와 극적인 전개가 돋보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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