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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날 기념사
담당부서 : 홍보협력팀 등록일 : 2003-04-25 조회 : 4141

 

 기 념 사

삭풍이 몰아치던 겨울동안 죽은 듯 메말라 있던 나뭇가지마다 신록이 돋아나는 계절, 새삼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해 엄숙한 생각을 갖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마침 법의 날로 새로 정한 4월 25일은 4월과 5월, 이 신록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기에 있기도 합니다만, 우리에게 4월과 5월은 그저 꽃과 신록의 계절로만 다가오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4․19와 5․18을 연상하는 것은 근현대사의 곡절을 겪어온 우리민족에게 숙명 같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일과 같다거나, 우리민족을 들쥐에 비유하던 이방인들의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빠른 경제성장보다도 더 값진 절차적 민주주의의 놀라운 진전을 일구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단일한 사안에 대해 상반된 시각과 입장이 존재하고 이로 인한 논쟁과 갈등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평소 법이란 강제력을 수반한 권력의 규범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 그 사회의 사회적 합의와 이성적 인식이 도달해 있는 수준의 반영이라고 여겨왔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목적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절차의 합리성을 요구합니다.  정치적 폭압이 해소된 이 시대에 사회적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은 법에 근거한 절차의 합리성이 더욱 요구되며, 동시에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이 함께 존중되는 다원화된 성숙한 사회를 위해서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도 품어봅니다.

법의 날은 1963년 아테네에서 열린 ‘법의 지배를 통한 세계평화 대회’에서 결의한 후 각국에서 기념일로 지정되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전송되는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게 되는 요즘인지라 ‘법의 지배’라는 말과 ‘세계평화’라는 말 모두가 예사롭게 떠올려지지 않습니다.

양차세계대전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로 점철된 20세기가 저물고 새 천년이 시작될 때 우리는 많은 기대와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 법의 권위와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진 약탈과 혼란을 지켜보면서 참담한 심정에 빠져드는 것은 저만의 심경은 아닐 것입니다. 

부처께서는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시뻘겋게 달구어진 숯덩이를 손에 쥐고 놓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간의 갈등이나 사회 구성원간의 갈등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분노의 표출이 국제사회 갈등의 근원을 해소할 수 없듯이 ‘법’ 역시 강제력만으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합리에 기반한 사회적 합의와 갈등조절 능력 여하에 따라 그 나라 법규범의 수준이 결정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제 40회 법의 날을 맞아 다시 한 번 법의 사회적 기능을 떠올리면서 전쟁의 상처가 하루빨리 아물고 우리사회 갈등이 치유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03년 4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김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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