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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알리다 [2024.03~04] #2 “자신의 인권을 생각하고 알아야 합니다”

 

영화 '플랜75' 하야카와 치에 감독 인터뷰

 

영화 <플랜75> 티저 포스터
영화 <플랜75> 티저 포스터

 

<플랜 75>는 ‘일본의 불안’ 또는 ‘한국의 미래’일 수 있다는 점에서 비극이다. SF 영화가 현장 다큐처럼 비치는 건 양국이 직면한 초고령 사회의 우울한 상상일 듯하다. “어떤 세상을 꿈꾸느냐?”는 질문에, 하야카와 감독은 “전쟁 없는 세상”이라고 짧게 답했다. 그가 말하는 ‘전쟁’은 국가 간의 침략과 살상만을 의미하는 게 아닐 듯하다. 세대와 계층, 직업과 주거를 아우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이 그의 눈에는 모두 전쟁이다.

 

하야카와 감독이 1월 말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았다. <플랜 75> 홍보를 위한 한국 방문 일정 중 첫 순서였다. 인권위가 20년간 인권영화를 제작했다는 설명에 하야카와 감독은 깜짝 놀랐다. <플랜 75>는 노인인권, 존엄사, 일자리, 돌봄 등 다양한 인권 현안을 아프게 짚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지만 외면하기 힘든 리얼리즘의 세계라서 불편하다. 바로 그 불편함이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진 화두일 것이다. 하야카와 감독에게 <플랜 75>에 담긴 메시지를 물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 인터뷰 모습
하야카와 치에 감독 인터뷰 모습

 

육 : <플랜 75>는 어떤 영화인가요.
하 :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이 수립된 가공의 일본을 다룬 영화입니다.

육 : 75세를 사회적 배제와 용도 폐기 등의 상한선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하 : 일본에서는 75세 이상을 ‘초기 고령자’라고 칭하는 문화가 생겼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일본 정부도 공식적으로 ‘초기 고령자’라는 명칭을 쓰게 됐습니다. 초기 고령자라고 하면 마치 인생의 마지막을 알리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안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육 : ‘니찌’라는 주인공이 78살의 나이에도 계속 일자리를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플랜 75’를 신청하면서 삶을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요.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 : 개인의 의지라기보다는 ‘당신은 필요 없는 존재입니다’라는 국가 차원의 무언의 압박이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우리는 과연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고 싶을까?’ 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육 : 영화 중에 콜센터를 관리하는 분이 상담원인 요코에게 교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플랜 75’를 신청했다가 마음이 바뀌어 철회하는 일이 없도록 잘 관리하라는 말을 하는데요. 그 장면은 표현하기가 참 어려웠을 것 같아요.
하 : <플랜 75>를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고령자들을 굉장히 친절하게 대하지만 본질은 마치 ‘죽어주세요’와 같은 무서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에, 요코 자신도 ‘플랜 75’가 모순된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고령자 이미지는 미디어의 영향

 

육 :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존엄사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감독님께서는 존엄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하 : <플랜 75>는 존엄사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존엄사를 희망하는 분들이 계시고, 정부가 이를 이용하면서 예산을 절감하려는 정책을 취하고 있죠. 이런 복잡한 본질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정부의 모습을 담았을 뿐이지 존엄사의 옳고 그름에 대해 따지려는 영화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육 : 시간이 갈수록 세대 간의 갈등이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노인 혐오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하 : 고령자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만드는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미지로 인해 시민들이 노인들을 위험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플랜 75>를 보신 젊은 분들이 고령자들의 마음을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육 : 이 질문은 한국의 봉준호 감독님이 물어보면 좋겠다고 하신 건데요. 일본 노인 관객들은 <플랜 75>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요?
하 : 4~50대 분들은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무서워졌다는 감상평을 주셨습니다. 오히려 시니어(7-80대) 분들은 앞으로도 잘 살아가자는 기운을 얻었다고 합니다.

육 : 감독님께서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하 : 딱 한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로 ‘전쟁 없는 세상’입니다.

육 : 마지막 질문입니다. 노인이 노인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 : 이것이 대답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타인의 인권을 지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 자신에게 인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알 권리가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것을 깨달아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슬기로운 인권생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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