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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브릿지 [2024.03~04] 재난피해자의 권리를 상상하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발기인 대회 ‘곁들의 날’ 사진(곁들의 날 행사는 2023년 12월 16일 재난피해자들을 비롯해 1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됐다.)

 

“머리로는 다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로는 어려워요. 우리가 지금 다른 참사까지 살필 상황이 되는 건가? 우리도 해결된 게 없는데.” 재난피해자권리센터의 설립을 준비하며 세월호참사 희생자인 상준이 엄마 강지은 님이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2022년 9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만들어졌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활동이 종료됐다. 사참위는 8년 동안 9개의 국가 기구에 걸친 진상규명조사의 끄트머리에 선 듯 보였다. 하지만 참사의 원인은 여전히 안개 속에 놓여 있었고, 어렵게 법정에 세운 책임자들에겐 연이어 무죄가 선고됐다. 2024년 개관을 목표로 삼았던 생명안전공원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세월호참사 피해 가족들은 길을 잃은 듯 보였다. 적잖은 시간 인권 운동을 해왔던 나 역시 이런 막막함과 허무함은 처음이라 잘 삼켜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의 손을 붙잡아 재난참사의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른 재난 피해자들과 시민들을 모아 함께 행동하기 위한 둥지를 만드는 데 앞장서 달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한 듯 보였다.

 

2022년 10월 159명을 참담하게 놓쳐버린 10.29이태원 참사는 ‘우리가 이렇게 외친다고 세상이 안전해지긴 하는 걸까? 변하기는 하는 걸까?’라는 깊은 좌절과 비통함을 안겼다. 하지만 또한 동시에 생명, 안전 사회를 위해 피해자들의 권리를 곧추 세워야 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절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가족들과 활동가들이 다시 다잡았다.

 

 

우리처럼 오래, 우리만큼 깊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2022년부터 2년간 416재단 활동가들과 세월호참사 가족들은 전국을 돌며 다양한 재난 피해자들을 만났다. 혼자가 아닌 함께, 과거로 되돌릴 순 없지만 미래를 바꾸기 위해 재난 피해자들의 연대체를 만들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재난 피해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재난 피해자들을 연결하며 지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를 만들자고도 설득했다. 모든 재난 피해자의 권리 옹호는 2018년 설립된 416재단의 주요한 소명 중 하나였으며, 누구보다 오래 싸워왔던 세월호참사 가족들은 누구보다 재난 피해자 권리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체감해왔기 때문이다.

 

만남과 설득, 아픔과 진심이 닿아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참사, 인천 인현동 화재참사,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가습기살균제참사, 7.18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 4.16세월호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 등 8개 재난 피해자들이 우리가 겪은 참사를 다시는 아무도 겪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혹여라도 동일한 상황에 처한다면 “우리처럼 오래, 우리만큼 깊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2023년 12월 16일 ‘재난참사피해자연대’를 발족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50여일이 지난 2024년 1월 31일 재난 피해자들의 권리증진을 수임사항으로하는 국내 최초의 민간단체 재난피해자권리센터가 ‘우리함께’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재난참사피해자연대는 피해당사자 단체라는 정체성을,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이하 센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416재단 부설로 만들어진 권리옹호단체라는 차이를 갖고 있지만, 생명안전사회를 꿈꾸며 만들어진 두 단체는 기꺼이 서로의 곁이 되어 함께 가기를 선언했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개소식 사진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개소식 사진.  2024년 1월 31일 개소한 센터 사무실은 서울시 중구 창경궁로 길에 위치해있다.

 

피해자의, 피해자에 의한, 피해자를 위한 센터

 

세월호참사 이후 동료들과 재난참사를 기록하고 연구해오며 피해자들의 연대와 센터 설립에 초기부터 관여해왔던 나는 센터에 합류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사)김용균재단, (사)더프라미스, 다산인권센터 등이 협약을 통해 센터의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나 역시 재난 피해자 중심의 접근을 통해 재난 피해자들의 권리 증진과 관련 정책 및 제도 변화, 시민인식 향상을 위해 한 발 더 내딛어 보길 다짐한 것이다.

 

시민들에게도 문턱이 없는 공간
시민들에게도 문턱이 없는 공간, 재난을 한번 더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 개소 기념으로 개최한 <사람책, 재난을 담는 마음> 강좌 사진. 향후 센터는 시민대상 강좌, 영화상영, 전시회, 다양한 모임 등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개소기념으로 주최한, 정택용 사진전 '너의 기억이 내게 닿는다면'의 일부 전시 사진
개소기념으로 주최한, 정택용 사진전 '너의 기억이 내게 닿는다면'의 일부 전시 사진

 

참담함으로 세상을 견디고 있을 재난 피해자들을 찾아 서로를 연결하고 지원하는 일은 센터의 가장 중요한 소명이다. 재난 피해자들이 상처받은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치유자가 될 수 있도록 전문적 역량을 강화하고, 재난참사피해자연대와 함께 재난 상황에서 전문적인 조력이 가능한 안정적 체계 구축은 센터를 향한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전국의 다양한 전문 기관들을 모으고, 수시로 운영되는 416긴급지원기금과 함께 연계하는 것은 재난 피해자의 회복과 권리 보장에 매우 효과적인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인권에 기반한 재난 예방, 대응, 회복을 위해 관련한 정책을 고안,연구하며 사회화하는 것, 재난 피해자 권리 매뉴얼을 만들고 교육시키는 활동 역시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센터의 문턱을 낮추고 재난 피해자 권리에 대한 상상력을 더하기 위해 다양한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전시회, 강좌, 영화상영 등의 자리를 만드는 것 역시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이 함께 할 때 생명안전사회에 한걸음 더 빨리, 단단히 다가갈 수 있다.

 

일꾼은 적건만, 할 일은 많고, 기대는 무겁다. 무수한 시행착오에 고단한 여정이 되겠지만 비틀거리며 센터는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 재난참사 피해자의 희생에 빚져 우리가 오늘을 살았다. 이제 우리가 그들이 내일을 살아갈 힘을 채워줄 차례기 때문이다.

 

 

글 | 유해정(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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