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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보기 [2024.03~04] #2 안전할 권리를 최우선에 두는 사회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 그 시작이다

 

지난 1월 9일 ‘10·29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참사 발생 438일만의 일이었다. 그 날의 진실에 한 발 다가섰다는 안도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집권여당 국민의힘이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 하더니 같은 달 30일 정부는 끝내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 외에 더 이상의 진상조사가 필요없다는 것이 궁극적인 이유였다. 그렇게 특별법은 국회로 돌아왔다.

 

유가족들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촉구하며 오체투지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참여연대)
유가족들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촉구하며 오체투지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참여연대)

 

 

수사는 진상규명의 일부일뿐

 

경찰은 참사 발생 76일만에 특수본 수사 결과를 내놓으며 10.29 이태원 참사의 발생 원인은 ‘군중 유체화 현상’이라고 발표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못해 물이 흐르듯 사람들이 떠밀려 다니는 현상이 발생했고 그것이 참사가 일어난 이유라는 것이다. ‘원인은 다 밝혀졌으므로 더 이상의 조사는 필요 없다’가 곧 정부의 입장이 되었다. 이어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할 필요도 없고 특별법도 필요가 없다는 논리가 완성됐다.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파견해도 소용 없었을 것’이라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원인은 다 밝혀졌다며 특별법 제정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수사는 책임자를 가려서 법적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책임자가 어떤 법적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밝히는 것만이 참사의 원인을 밝히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분명 수사가 밝힐 수 있는 것이 있지만, 몇 사람의 행위만으로 사건의 전모를 그려내기 어려운 사회적 참사의 경우 수사가 해결해 주는 것은 일부분일 뿐이다.

 

안전을 중시하는 사회라면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직접적 원인만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적 원인까지도 찾아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당장 드러난 현상이나 원인을 따지는 외과적 치료 외에도 체질 개선을 위한 근본적 조치야말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군중유체화 현상’이라는 직접적 참사 발생의 원인만이 아니라, 인파가 몰리도록 방치하고 예방하지 않은 정부시스템과 제도, 공직자 규범과 관행까지도 조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다. 안타깝게도 이 당연한 이야기가 현 정부와 여당 앞에서는 통하지 않고 있다

 

 

참사가 반복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정부가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태도는 10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다. 참사를 단순 사고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희생자를 탓하며 기민하게 움직였다. 예방, 대비, 대응, 구조, 수습 전 과정은 국가기능의 총체적인 부재로 점철됐고 결국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이태원 참사 발생 반 년만에 발생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역시 마찬가지다.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전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고, 결국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며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와 너무나 닮아 있다고 한탄한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기이다. 세월호 참사는 전 국민을 슬픔과 충격에 빠뜨린 비극적인 사건인 동시에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세월호 참사 이전처럼 살 수 없다”는 큰 울림을 준 사회적 참사였다. 그러나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사회적 참사는 반복되고 있고 사회적 각성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야할 길이 너무도 멀다. 앞선 재난에서 얻은 교훈대로 더 적극적으로 안전할 권리를 말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존중하자고 외쳤지만, 이태원 참사 이후 2차 가해가 극심했고 결국 159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우리 사회가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갔냐는 질문에도 답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이태원 참사 대응이 과거 세월호 참사 당시의 대응보다 더 나빠졌다는 인식은 단지 기분탓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3개월 만에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입법에 합의했던 것과 달리 이태원 참사는 참사 발생 16개월이 지나도록 진상조사 필요성에 대해서도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세월호로부터 쌓아온 교훈을 현 정부가 애써 무시하고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다시 후순위로 미루고 있다는 것으로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국내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 지연되는 사이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에 독립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11월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10.29 이태원 참사를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에 우려를 표하는 동시에 전면적이고 독립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했다. 또한 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위한 독립기구 설립,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권고했다.

 

사람의 생명을 중요시하는 사회라면 책임자들이 다른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재난 예방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에 많은 힘과 비용을 들일 것이다. 특히나 요즘 같이 기후위기 등으로 재난이 일상화된 위험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권력의 이해관계나 예산 부족을 문제로 언제라도 안전을 후순위에 둘 수 있는 사회에서는 공직자들이 재난 예방과 대응의 권한을 가지고도 안전에 대한 책임을 개인들에게 떠넘기기 마련이다. 이런 각자도생의 세상에서는 결국 ‘오늘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뿐 나를 지켜줄 국가는 없다’는 사회적 불신과 불안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모습이 딱 그렇다.

 

 

안전할 권리를 최우선에 두는 사회

 

“19살 때 세월호, 27살인 지금은 이태원 참사로
나의 친구들을 잃어 마음이 아파.
이제 성인으로 그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는 생각에 미안해.
국민을 지킬 권리가 있는 국가, 정부가 제 기능을 못했어.
앞으로 나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거야”

참사 직후 이태원역 1번출구에 한 시민이 남긴 메시지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사진 참여연대)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사진 참여연대)

 

 

안전할 권리를 다시 최우선으로

 

인간에게 안전할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언제라도 이 권리가 후순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내내 목도하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야말로 시민들의 안전할 권리를 후순위로 둔 정부로 인해 발생한 참사의 전형이다. 그런데 어떻게 정부가 시민들의 안전할 권리를 후순위로 둘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가지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위험을 알고, 줄이고, 피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보장할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중

 

 

정부가 안전권을 보장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지키는 것을 의무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데에서 문제의 뿌리가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의 권한을 위임받은 이들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사고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의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은 없으며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은 제한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보아왔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구조실패 관련자들이 모두 무죄 판결이 난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정한 사회적 약속은 쉽게 무력화되고 국가의 공적인 기능은 힘을 잃게 되는 수순일 뿐이다.

 

안전문제를 국가의 관리대상으로만 여기고 공직자의 의지에 따라 시민의 안전할 권리를 후순위로 미룰 수도 있는 지금의 상황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려면 반복된 참사가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촉발된 것이고 이후 대응 과정에서도 국가의 역할이 부재했다는 인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갖추어져 있지 못하고, 안전사고 발생시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살균제 참사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실제 조사기구를 설치해 진상규명을 한 재난참사 사례가 거의 없다. 현행법 상 이태원 참사 당시 행정안전부는 재난 및 안전관리법 상 규정된 재난원인조사를 해야했지만 경찰 수사를 핑계로 진행하지 않았다. 국내 안전 관련 정책을 관장하는 부처임에도 행정안전부는 이러한 의무를 쉽사리 무시했다. 진상규명에 기초해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 일도, 그 대책의 이행여부를 점검하는 체계도 없었다. 이처럼 재난 및 안전 관련 주요 법령이 있다고는 하지만 시민의 안전할 권리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강제하고 실제 적용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안전할 권리를 최우선에 두는 사회

 

그래서 더욱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159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된 말도 안되는 이 참사가 어떻게 발생했고 무엇때문에 예방하지 못했는지 밝혀진 것이 별로 없다. 초동 조치와 구조, 수습 과정에서의 총체적 실패는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 사회적 시스템을 제대로 점검하지도 못했다. 특별법을 통해 반드시 독립적 조사기구를 설치하고 근본적 원인을 밝혀내자고 외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재 발방지대책의 시작이자 기초가 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는 시민들의 다짐과 연대가 책임을 외면하는 정부에 끝내 진상조사를 받아들이게 했다는 점을 다시금 떠올린다. 국가가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거라는 사회적 신뢰는 무너졌지만, 그래도 시민들의 연대와 행동 덕분에 안전권과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전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 정부의 외면 속에서도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요구를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과 피해자들끼리의 연대, 시민들 간의 연대야말로 안전할 권리를 다시 우리 사회 최우선에 두는 힘이 될 것이다. 사회적 관심과 연대가 절실하다.

 

 

글쓴이 이미현은 참여연대 정책기획국장으로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맡고 있다.

 

글 | 이미현(참여연대 정책기획국장,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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