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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턴〉

문화 이음 [2019.09] 30대 CEO와 70세 인턴의 뜻밖의 만남
영화〈인턴〉

글 이상헌

 

4년 전 이맘때쯤, 추석 극장가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흥행 대박을 터뜨린 영화가 있다. 바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 <인턴>이다. 추석 시즌을 겨냥했던 쟁쟁한 영화들이 봄날의 벚꽃처럼 활짝 피고 반짝 지는 동안, <인턴>은 한결같은 순위를 유지하면서 전국에 360만 명의 관객과 만났다. 이 영화가 관객들을 사로잡은 비결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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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설정을 반전시키다

영화 <인턴>의 주연은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두 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앤 해서웨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인턴의 모습에 부합하려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처럼 앤 해서웨이가 인턴 역할을 맡아야겠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턴은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극중 70세 노인 ‘벤’이다. 앤 해서웨이는 직원 220명 규모의 온라인 의류 쇼핑몰의 CEO ‘줄스’ 역을 맡았다. <인턴>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느끼는 설정을 간단히 뒤집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동력으로 삼는다. 로버트 드 니로의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대부 2>, <성난 황소> 등 엄청난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장악했던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어느 날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미소를 건네는 젠틀맨으로 나타났다. 관객들은 그가 보여주는 베테랑 배우의 품격을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인생 이모작을 넘어 이제는 삼모작을 장려하는 백세 시대, 직장에서 은퇴하고 노년을 즐기던 벤은 줄스의 회사에 고령자 인턴으로 채용된다.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CEO 줄스를 돕는 것. 인터넷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회사에 들어오면서 USB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벤은 꿋꿋이 ‘배울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벤은 줄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눈 깜빡임까지 연습하는 노력파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잘하고 무엇보다 친화력이 좋다. 처음에는 내심 거부감을 나타내던 줄스도 벤을 믿고 신뢰하기 시작한다.

 

현실과 판타지가 만나는 접점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영화는 언제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젊은 여성 CEO, 집안일을 전담하는 남편 그리고 고령의 인턴은 그동안 보기 드물었을 뿐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극중 줄스의 일상에는 현실에서 여성 직장인이 겪을 수 있는 수많은 고충들이 담겨 있다. 엄마와 늘 옥신각신하고, 육아를 전담하는 남편에게 늘 미안해하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은근한 무시와 차별에 욱하는 모습을 보인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인턴>에서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펼쳐 보인다.
그런데 벤의 캐릭터는 조금 독특하다. 분명 현실을 바탕으로 만든 캐릭터인데, 왠지 현실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벤은 지혜롭고 인생 경험이 풍부하면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나이를 앞세우지 않는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하며 필요한 곳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한다. 또 기회를 소중히 생각한다. 그래서 인턴 지원이든 사랑 고백이든 망설이지 않고 실천에 옮기는 타입이다. 겉으로 중후한 매력을 뽐내면서 내면은 예민한 감성으로 가득 차 있다.
줄스가 잘 나가는 기업의 CEO면서도 인간적으로는 빈틈투성이인데 반해, 어느 모로 보나 결점 없는 벤의 모습은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다. 감독이 벤이라는 캐릭터를 이렇듯 빈틈없이 그려낸 두 가지 이유를 추정해 보자면, 그중 하나는 줄스의 성장을 돕기 위함일 것이다. 줄스는 회사에서도 사적인 관계 속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사적인 문제는 대부분 바쁜 업무 때문에 그녀가 가까운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게 되면서 시작된다. 벤은 줄스가 처한 위기 상황을 모두 캐치하면서 그녀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때로는 문제를 대신 해결하기도 한다. 벤은 함께 하는 공간을 넓혀 둘 사이의 서서히 거리를 좁힌다. 처음에는 사무실에서만 마주쳤지만 줄스의 기사를 자처하며 운전석을 차지하더니, 자연스럽게 줄스의 집에도 드나들게 된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벤에게 줄스는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개인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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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

영화에서 벤이 완벽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감독이 바라는 바람직한 어른의 모습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어른일까? 혹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세상이 빠르게 변화할수록 또 세대 간에 향유하는 문화의 차이가 극명할수록 이런 질문이 중요하다. 영화가 그려낸 벤의 성품은 곧 위의 질문에 대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만의 해답이다. 사람들이 벤에게 감화되는 것은 그가 주변 모두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진심으로 대한 덕분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상대방의 성별과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벤은 상대가 누구든 어떤 편견도 없이 소통할 줄 알고, 결코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인턴>이 롱런하며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아마 감독이 제시한 아이디어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꼰대’란 단어는 우리 사회의 상하 갈등을 상징하는 말이다. 일상에서는 나이를, 회사에서는 직급을, 사회에서는 지위를 근거로 그보다 아랫사람에게 자기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젊은 세대는 꼰대라 부른다. 아랫사람 관점에서는 보통 그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와닿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어느 사회나 세대와 지위 간 갈등이 있겠지만, 일제 식민지와 군사정부를 거치며 사회적으로 상명하복의 문화가 스며든 우리 사회에서 그 반작용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젊은 세대의 불만과 피로가 쌓일 무렵 등장한 <인턴> 속 벤의 모습은 어떤가.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진짜 어른’의 모습 아니던가. 신기한 점은 북미를 제외하고 <인턴>의 흥행 순위 1위, 2위, 3위가 한국, 일본, 대만이라는 점이다(boxofficemojo.com 기준). 비슷한 사회 구조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특히 이 영화에 공감하는 바가 컸다는 반증일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줄스의 회사가 처음 등장하는 <인턴>의 오프닝 장면을 보면 감독은 최첨단을 걷는 사회의 단면을 잘라 전시하듯 연출한다. 세계 반대편의 사람들과도 SNS 친구를 맺어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할 만큼 긴밀히 연결돼 있다. 벤이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나이가 일흔이 넘었고 세상의 흐름에 둔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는 그가 인턴을 지원하고 난생처음으로 찍어보는 자기소개 영상을 찍을 때부터 시종일관 그의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려 깊은 태도를 보인다. 줄스나 다른 직장 동료들 그리고 새로운 사랑 ‘피오나’도 그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또한 현실 여성들이 겪는 삶의 고충과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보여주면서 줄스와 벤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단서를 제시한다. 우리는 언제나 혼자인 것 같지만 주변의 누군가는 우리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그래서 나의 고충도 서로 이해해줄 수 있다는 것. 줄스처럼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사회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대 변화에 따라 삶의 양상이 다양해졌다. 젊은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한 벤은 그들을 편견 없이 대한다. 우리는 벤의 태도처럼 사람들의 개성과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더 많은 포용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변하든 우리 삶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벤처럼 완벽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어렵다.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 살면서 나름대로의 고충을 겪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벤의 모습을 지향점으로 삼을 수도 있고, 그의 태도에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인턴>은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태도로 관객들의 마음을 녹이며 우리 사회에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상헌 님은 영화 칼럼니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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