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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3 <특집> [2019.09] 김칠두 신드롬으로 신중년 읽기

글 이호선

 

휘날리는 은발, 겁 없는 턱수염, 세련미를 구축한 우리나라 실버모델 1호 ‘김칠두’가 나타났다. 패션모델의 의미를 넘어 늙음의 로망이자 젊음의 미래고, 노인의 신세계를 열며 실버 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는 이 남자! 사실 이 남자는 1955년생에 망한 순댓국집 사장님이자, 쌀도매와 과일가게 그리고 연탄배달을 두루 섭렵하고, 면접에 숱하게 떨어진 늙은 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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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모델, 김칠두에 열광하는 이유

큰형 ‘일두’에서 시작해 일곱 번째 아들 ‘칠두’. 1955년 전쟁의 끝 무렵 베이비 붐 첫해에 존재감 없는 일곱 번째 칠두로 태어났으니, 한국의 현대적 성장과 늙음을 두루 몸에 익혔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런웨이’는 6·25 전쟁을 지나 월남전 시기를 거치고 민주화의 여정을 눈으로 보고 난 뒤 IMF와 금융위기까지 겪고 나서야 시작됐다. 그리고 현재 김칠두와 함께 런웨이를 함께 걷고 있는 제2, 제3의 늙은 김칠두들이 세상을 뒤집어놓고 있다.
그 세대들은 지나온 세월마다 가난이었고, 발달의 단계마다 새로운 역사를 이고 진 채로 성장했다. 60세가 넘으면 노인이라고 부르던 세대를 짓누르고 스스로 ‘신중년’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세대 사이에서 세상을 변화시켜온 또래집단이다. 마천루를 경험한 첫 세대이자, 엘리베이터를 타본 첫 세대, 집 전화와 미니스커트 그리고 마이카를 이용한 첫 세대는 여전히 그 성장과 풍요를 온몸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제 황혼에 접어든 이들이 무력한 늙은이에서 당당히 신시장의 운영자이자 새벽 홈쇼핑의 주역으로, 안티에이징의 선두주자로, 한국 경제의 주체로서 당당히 실버시장 점령자로 나타났다.
공교육을 받기 시작한 이 세대는 민주화의 주역으로 나타나 이제 조부모 교육 경제의 주역이자 평생교육의 주체로 성장했다. 더 뜨거운 평생교육 시대를 열고 자기 계발에 투자하며 기꺼이 교육적 모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 당당한 시대의 선구자들이 열었던 이혼과 재혼의 시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는 이 시대 ‘신늙은이들’의 변혁적 부유물이라 할 것이다. 이 세대는 아저씨 아줌마가 아니라 루비족(Refresh, Uncommon, Beautiful, Young)으로, 경제력을 넘어서 행동하는 결제력으로 문화 및 취미활동에 기꺼이 투자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를 뛰어넘어 스타 유튜버의 면모를 보이며 세대를 연결하는 독보적 콘텐츠 저장소로서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혁명가다. 시대에 짱돌을 던졌던 이들이 이제 인류를 향해 새로운 드래곤볼을 던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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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시니어 모델 김칠두 (출처: KT- [당신의 초능력 KT 5G ] 지금까지 이런 요금제는 없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적 콘텐츠

어떤 인류가 ‘늙음’이 시대를 밝힐 줄 알았던가? 김칠두의 흩날리는 백발은 런웨이의 조명이 되고 패인 주름이 멋의 상징이 된다. 느린 걸음이 가장 세밀한 관찰을 통한 탄성의 공간을 만들 줄 아무도 몰랐다. 이제 시대의 경제 주체가 걸어간다. 나아가 세대의 문화 주체가 걸어간다. 엔조이 쇼퍼들이 기꺼이 정치에 입김을 내고 질 좋은 식사를 찾아다니며 욕망의 소비자이자 다중 욕망자의 걸음으로 걸어간다.
바로 이들이 초고령 사회의 첫 심리 모델들이다. 늙음의 정의를 쇠퇴에서 선택으로 바꾸는 이들, 시대의 시선을 당연에서 놀람으로 바꾸어놓는 이들, 꼰대를 넘어 다음 행보를 고대하게 만드는 이들, 지금 이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보라. 인류의 오랜 편견을 깨고 새 문화를 창출하고, 스스로의 장벽을 넘어 다른 세대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늙음 그 의존의 시기를 창조의 시기로 바꿔놓았으며, 염색을 통한 저항적 노화를 자기 사랑을 통한 주도적 노화로 바꿔놓고 있다. 그 상징의 중심에 모델 김칠두가 있고, 김칠두 신드롬은 세대 신드롬의 상징과 같다.
누구나 청년기엔 주역이고, 중년에는 꼰대이며, 노년에는 신기루와 같이 산다. 있긴 한데 잘 보이지 않는 노년의 존재감, 나타나지만 누군가에게는 허상이고 다른 이에게는 고통인 신기루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을 지나 21세기에 도달했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배우나 못 배우나 동일한 뉴스를 접한다. 잘 살아도 좀 덜 벌어도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됐고 치아가 없으면 임플란트로 사는 시대가 되더니, 이젠 줄기세포로 젊어지고 남의 심장도 내 것 삼아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이른바 100+ 시대다. 옛날 같았으면 이미 옥황상제를 두 번은 만났을 나이를 멀쩡히 살아가며 연장된 중년기를 선택한 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을 기대해볼 만하다. 정보의 세상에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풍요로운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라. 복고를 레트로라 부르며 빠져드는 젊은 세대들을 끌어안고 있는 지금 트렌드의 문화적 원조들이 다음 세대의 돌림노래를 살아서 듣고 있다. 이들 만한 살아있는 콘텐츠가 어디 있는가? 이들은 아직 부양할 윗세대들의 역사적 기억마저 담고 있는 이들이다. 윗세대의 노래와 놀이, 그들의 기록과 기억을 담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적 콘텐츠로 윗세대 100년의 역사와 지금 세대의 이후 미래 역사를 동시에 포함하는 포괄적 기억 탱크들이다. 이들이 입을 열면 랩이건 타령이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엮여 세대 역사의 브랜드가 창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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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출처: 유튜브)

 

 

미래의 노년을 다시 생각하며

인문학이 번성하던 최근 몇 년간 젊은이들이 한국사와 세계사에 열광하던 시기였다. 이때 신중년들은 젊은이들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이들의 과거를 뒤지고, 늙은이들은 젊은이들의 현재를 읽기 시작했다. 매체를 배우고, 트렌드를 분석하고, 늙음을 젊음으로 해석하기 위한 과정을 거쳤다. 젊은이와 늙은이는 서로 배우며 서로를 읽기 시작한 셈이다. 성장 기억을 가진 세대가 성장하는 세대와 함께 상호 성장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젊은이들에게 배우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기뻐한다. 김칠두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늙음을 다시 생각한다. 우리도 김칠두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그의 멋짐에, 그의 걸음에, 그 늙음의 세련됨이 어필될 수 있음을 확인했기에 우리도 함께 열광했다. 그의 걸음이 당당해서가 아니라 존재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아름다움에 끌리고 열광하고 결국 그 아름다움이 되고자 한다. 같은 것에 열광한다는 것은 같은 것을 소망한다는 말과 유사하다. 김칠두 신드롬은 과거와 전혀 다른 새 늙은 인류의 욕망 신드롬인 셈이다.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은 거의 유사하지만 완전히 다른 인류이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이기에 이 둘은 서로 교미가 불가했고, 결국 역사는 호모 에렉투스가 호모 사피엔스에게 자리를 내어주도록 허락했다. 이제 신노년의 시대가 시작됐다. 달라진 이 세대를 이 시대가 읽어주기를 바란다. 굽은 허리에 힘없는 뒷방 늙은이는 잊어주길 바란다. 이제 노년은 새로이 허리를 펴고 더 세련된 도구를 가지고 시작한 신인류, 아니 신 늙은 인류이다. 이제 그들이 직접 만든 황금 벽돌길을 따라 세대의 잰걸음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호선 님은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 학과장이자, 한국노인상담센터 센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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