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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3 <특집> [2019.05] 여군 인권과 차별

글 이기성

 

남성 조사관이 여군의 인권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군에서 생활할 때 소수 여군과 함께 복무했지만, 여군의 인권과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이 부분이 명쾌하게 정리됐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래서 여군 관련 사건을 여성 조사관에게 이관해보려고도 했으나, 어떤 사유든 간에 결국 스스로 마무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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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한 군대 내 여군 성차별

여군 1세대인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취임 시 자신이 군 복무 중에 상급 지휘관으로부터 “여군들을 술자리에 보내라”는 지시를 받고, 고심 끝에 여군들을 완전군장 차림으로 보낸 적이 있다는 웃지 못할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이는 여군 인권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는 이 같은 사례가 일선 부대에서 사라졌겠지만, 여군 1만 명 시대에 맞춰 여군의 지위 향상과 차별 시정을 요구하는 진정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군 사건으로는 ‘여군 화장실 등 편의시설 부족과 주임원사 및 대대장의 여군에 대한 이해 부족 사건’이 있다. 진정인은 피해자인 현역 여군 부사관의 친구였다. 친구 사이인 여군 부사관이 부대에서 심각한 차별과 배제로 정신과 입원 치료까지 받고 있는 사실이 안타까워 피해자를 대신해 인권위에 진정을 한 것이다.

접수 경로가 친구에 의한 제삼자 진정이기에 피해 여군이 조사를 원하는지에 대한 의사 확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조사관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피해자에게 무턱대고 전화하거나 찾아갈 수는 없었다.

 

인권위, 피해 여군을 만나다

피해 여군의 남편이 현역 군인인 상황을 어렵게 알게 됐다. 남편을 통해 피해 여군과 대화를 시도했다. 안타깝게도 피해 여군은 인권위 조사가 개시되면 현역 군인인 남편이 부대 측으로부터 어떠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봐 인권위 조사에 선뜻 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에 따라 인권위에 진정하는 것은 군인의 권리 중 하나임에도 현역 간부인 피해자는 이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권위는 진정인과 피해자의 마음까지 세심히 배려하고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해 조사를 진행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예상치 않게 피해자에게 2차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회복시키기 난감하기 때문이다.

이후 피해 여군의 남편을 통해 자녀가 감기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음을 알았다. 그곳에서 피해 여군의 남편을 만나기 위해 작은 인형을 선물로 준비한 뒤 근처로 찾아갔다. 카페에서 남편을 만나 그간 피해 여군을 지켜본 사정과 심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남편과 면담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다. 오후 10시경, 피해 여군에게 다음날 조사관을 만나길 희망한다는 연락이 왔다. 인권위에 대한 신뢰의 반응이었다.

다음날, 피해 여군과 여성 조사관이 편히 대화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고, 나는 부대 야외 훈련장 등을 확인하며 피해자의 진술 내용을 기다렸다. 점심을 먹고 시작한 피해 여군의 진술은 오후 10시 30분이 돼서야 끝났다. 피해 여군이 그동안 참고 억눌러왔던 울분을 토로한 것이다. 진술서의 양도 일반 진술인의 배인 18장 분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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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인권 증진과 지위 향상을 위해

대대장과 주임원사가 제출한 서면 답변서 및 진술의 내용은 일정 부분 거짓이었으며, 인권위 심의에 출석해서도 거짓 입장을 고수했다. 조사관은 참고인, 부대 관계자, 전역자, 관련 기록, 현장 확인 결과 등을 확인했다.

피해 여군이 대대급 부대에서 300여 명의 남군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화장실을 갈 때마다 행정반에 들러 열쇠를 받아써야 했던 사실, 여자 화장실이 자주 고장 나 피해 여군은 급할 때 플라스틱 재질의 탄통을 요강으로 사용한 사실, 야외 유격훈련을 나가서 유격장에 설치된 여군 화장실을 대대장 및 주임원사가 사용해 피해 여군은 1.6㎞ 떨어진 타 부대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던 사실, 이러한 고충을 문제 제기하자 피해 여군을 사무실 밖 컨테이너 시설에 혼자 근무하게 하려 한 사실 등을 확인했다.

권고 이후 대대장과 주임원사는 그 책임에 상응하는 조치를 받았다. 피해자는 병원 진료를 꾸준히 받으며 치료하고 있으며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는 것으로 확인했다. 인권위는 국방부와 협조해 훈련장 내 여군 화장실 추가 설치 등 후속 조치와 현장 점검을 진행했다.

한편 조사관은 위 진정 사건과 별개로 2017년도 ‘여군 대위가 상관의 성폭력 등에 의해 사망한 사건’을 직권 조사한 바 있다. 조사 결과 남군 지휘관들이 신임 여군의 배치를 적극적으로 선호하지 않으며, 여군의 장기 복무나 진급 선발을 위한 근무 평정권을 악용해 여군에 대한 성추행·성폭력 사건 발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또한 피해 여군들에 대한 지원과 보호 시스템 등이 적절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사관은 조사를 마치며 여군을 동료로 인정하고, 전장에서 나를 위해 엄호사격을 해주는 전우로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과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이와 같은 인권위의 여군 인권 증진과 지위 향상을 위한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조사관의 책상 위에는 해병대에서 여군의 육아휴직에 대한 불이익과 진급 차별을 주장하는 사건이 놓여 있다. 변화하고 있으나 아쉬움이 많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이기성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조사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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