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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2 <특집> [2019.05] 제복 입은 시민, 군인의 인권

글 김광식

 

군인은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국민들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고 또 누려야 한다. 군인이 시민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때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도 한층 높아지고 군대도 발전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 같은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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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인권의 어제와 오늘

본질적으로 군인의 기본적 권리는 시민과 다르지 않다. 세계인권선언에서 말하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그리고 우리 헌법이 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제10조~제37조)을 군인에게도 똑같이 보장해야 한다. 다만, 법률에서 정한 군인 의무에 따라 군사적 직무의 필요성 범위 내에서 제한될 수 있다(?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10조 제2항). 그래서 군인을 ‘제복 입은 시민’이라 부르기도 한다.

개념적으로는 군인의 인권을 이렇게 가름하는 데 이의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좀 더 복잡하다. 15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군대 인권에 대한 관심과 개선의 노력이 시작된 건 불과 15년여에 불과하다. 그전에는 ‘군대’와 ‘인권’을 연결해서 생각하기 어려웠다. 2000년대에 들어 인권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하고 인권이 국가·사회적인 의제가 됐다. 그리고 2005년 들어 이른바 인분 사건으로 불리는 논산훈련소 사건과 GP 총기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군대의 인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이슈화됐다. 당시 병사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구타 및 가혹 행위, 성폭력 등을 빈번하게 겪었다. 아프다 해도 진료는커녕 진단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고, 전역 후에 암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애초부터 복무가 부적절한 병사들은 입대 후 부적응 상태에서 고통스러워한다. 병사들은 징병제 하에서 의무적으로 복무에 참여하지만 적절한 경제적 보상도 받지 못했고, 영장 없는 구금으로서 ‘영창 처분’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또한 종교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허용되지 않아 매년 700~800명의 젊은이들이 수감됐다.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을까? 다양한 진단이 있었지만 중론은 이렇게 모였다. 무엇보다 군이 군대의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기강만을 중시하고 장병의 인권을 경시했다는 의견이다. 국가와 군이 군인을 다른 시민처럼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통제해야 할 전투력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열악한 병영 주거 및 생활공간의 개선, 병사들의 정신적·육체적 건강관리, 복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 등 모두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게다가 군대 문화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성숙하지 못해 권위주의적이고 불합리한 지휘·통솔 방식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으며, 군 구성원 간의 상하·수평관계도 인격적 상호 존중보다는 왜곡된 서열의식과 신분의식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 침해는 물론 자살·총기 사고 같은 인명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해왔다는 것이다.

 

군대 내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2006년, 군은 군대 내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국방부와 각 군에 인권과를 신설해 정책 추진을 위한 전담 부서를 구성하고 실행 계획을 세웠다. 가장 먼저 인권교육을 서둘렀다. 교재와 각종 콘텐츠 및 교육 프로그램을 꾸리고 훈령으로 교육 체계도 정해 양성-보수-부대 교육이 연결돼 진행되도록 했다. 군 지휘관과 인권 업무 종사자 대상 교육도 실시했다. 영창 처분의 위헌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적법성 심사 제도를 만들고, 군대 내 동성애자에 대한 처우 기준도 정했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의 인권 보호 문제도 보완했다. 인권 침해 상담과 구제를 위한 조사·처리도 강화했다. 가장 괄목할 일은 사실상 군인 인권법이라 할 수 있는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을 2016년 제정·시행한 것이다. 구성과 내용이 미흡해 지금도 개정 논의가 지속되고 있지만, 이 법의 제정은 군인의 인권 증진에 기념비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논란 끝에 군 영창제도의 폐지가 확정적이고, 대체복무 제도가 시행될 예정이다. 물론 이런 과정은 군과 시민사회, 국가인권위원회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군인의 인권 상황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병영에서는 신체의 자유나 인격권·생명권과 관련한 침해 상황이 줄었다. 자살사고를 포함한 사망사고는 오랜 기간 군 인권 수준의 척도로 인식돼 왔다. 2013년 기준으로 군대 내 사망사고 117건, 자살 79건 등이 발생했고, 2018년에는 사망사고 86건, 자살사고 56건을 기록했다. 특히 병사의 자살사고는 2015년부터 현저히 감소했다. 구타·가혹 행위는 2016년까지 경험률 10%를 넘나들었으나 최근에는 1~2% 이하 수준이다. 반면 언어폭력을 통한 인격권 침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성희롱·성추행 등도 소폭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우려가 크다.

침해 상황이 적잖이 호전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면 침해 구제 제도의 작동 상황이 중요하다. 군이 다양한 인권 침해 구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신원 노출에 따른 사후 피해를 우려해 신고나 구제 요청이 억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병사들은 부대의 지휘계선이나 군의 제도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크지 않다. ‘조직 침묵’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편, 병사들의 경우 외출·외박·휴가, 휴식권 보장 등과 관련한 권리 차원의 요구가 점증하고 있고, 사생활 침해에 대한 민감도도 높아지고 있다. 외부와의 소통 여건은 일과 후 휴대폰 사용 이후 큰 폭으로 개선된 상황이다. 간부들의 경우 신상관리나 생활 통제 면에서의 침해 상황에 대한 불편을 지적하고 있다. 사생활에 대한 통제나 침해, 개인 재산권 행사(차량 운행 등) 침해, 개인정보 침해 등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군인들의 인권감수성이 높아지면서 군내에서의 각종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도 증가하고 있다. 간부들은 임관 출신에 따른 보직이나 진급의 차별 등을 호소하고 있다. 군 의료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진료 대기나 치료 미흡, 전문 의료인 부족 등의 사태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병사뿐만 아니라 간부의 평가도 낮은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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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변화에 따른 다각적 방안 모색 필요

그동안 군 인권 개선을 위한 일련의 과정은 전진과 정체, 후퇴를 거듭하면서 나름 변증법적 발전을 거쳐 왔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인권의 범위와 내용이 변하고, 군에서 보장·증진돼야 할 인권의 내용도 달라지고 있는 만큼 심기일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인권 측면에서 현재의 병영 상황을 요약하면, 그간 군의 인권 활동을 통해 ‘물리적-생명 보존 욕구(안전과 최소한의 신체적·정신적 건강)’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서 보편적 침해 양상은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여군, 간부-병사, 병사 간에 성 관련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동시에 장병들의 인권 감수성이 한층 높아지고, ‘자율 욕구’와 ‘사회적 욕구’ 충족에 대한 기대가 점증하고 있어 군 인권 정책의 영역 확장이 필요하다. 예컨대 휴식권과 사생활 보장 요구, 군 구성원 간 인격적 관계에 대한 문제 인식 증가, 군인의 정치·사회적 권리 등에 대한 정책적 고려의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군 내부적 요구라면, 외부적으로는 UN 등 국제기구의 인권 개선 요구(성적 지향에 의한 처벌 폐지 등),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책 권고(여군 인권 증진을 위한 성폭력 예방 조치 강화 및 여군 근무 여건 개선, 부적응 병사 인권 상황 개선 등), ‘국가 인권 정책 기본 계획’ 상의 개선 과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인권위는 2019년 군 인권 정책 개발 등을 위해 관련 전문가 그룹을 모아 군인권포럼을 운영하고 있으며, 분발을 바란다.

아울러 향후에는 첫째,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을 보완해 부족한 권리 규정을 보완하고 군의 인권 보장 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정교화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인권 침해 예방과 신고 및 구제를 위한 체계를 강화하는 일이다. 이는 군의 고충처리 과정과 통합해 진행해야 하며, 인권 침해 구제와 고충처리가 별개일 수 없다. 둘째, 지속적으로 문제 되고 있는 성폭력을 근절하는 일이다. 군내 성폭력 피해 실태 점검과 가해자 엄중 처벌, 피해자 지원 강화 등의 노력이 그간 계속돼 왔음에도 근절되지 않는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제도나 교육 프로그램 개선 노력이 과연 실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야 할 일이다. 셋째, 군 내 소수자에 대한 인권적 관심이 필요하다. 여성 군인, 성 소수자, 다문화 장병 등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한 방책의 강구와 실천이 시급하다. 넷째, 병사와 간부 모두가 동등한 합의 주체로서 군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와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 장교와 부사관, 병사 등 군내 각 계층의 의사가 군 운영과 부대 관리에 반영될 수 있는 대의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 이 모든 것을 추동할 수 있는 방안은 ‘군 인권보호관’ 제도를 설치하는 일이다. 일종의 옴부즈맨 제도다. 2005년에 처음 발의된 후 2019년 현재까지 14년 동안 무산돼 온 제도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제42조 제1항)에도 명시돼 있다. 이는 군인의 인권 증진을 위한 노력이 통합적이고 지속적으로 효과 있게 진행되는 데 가장 긴요한 제도인 것이다. 이 모든 일을 해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인권의 보장이 군의 생존과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적 과업이라는 점을 군 당국이 명징하게 인식하는 일이다.

 

 

김광식 님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군인의 인권, 병영 문화, 민군관계 등을 연구했으며, 현재 인권위 군인권포럼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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