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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피해치유센터 ‘함께’

줌인1 <특집> [2019.05]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
- 군피해치유센터 ‘함께’

글 김희정

 

여기, 금쪽같은 자식을 하늘로 보내고 그 슬픔을 어루만지는 일로 생을 이어가고 있는 어머니들이 있다.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이라도 하소연하고 싶어 만난 사람들. 시간은 그날 그 자리에 멈췄지만, 같은 아픔을 가진 가족들과 연을 맺게 됐다.
‘함께’는 이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떠나보낸 아들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아프고 아픈 마음이 어찌 다 어루만져질까.
그저 부둥켜안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할 따름이다.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갈 힘을 얻어 본다. 하지만 더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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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복순 2011년 4월, 육군훈련소에서 뇌수막염으로 사망한 고(故) 노우빈 훈련병의 어머니
박미숙 2016년 3월, 뇌출혈 증세를 보였으나 치료가 늦어져 사망한 고(故)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인권 반갑습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부모들을 위해 센터 운영을 결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군피해치유센터 ’함께’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공복순 아들이 군에서 사망하고 난 후 몇 년 동안 ‘갈 곳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쳐도 집에 들어가기 싫었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군에 간 아들을 잃고 마땅히 갈 곳 없는 유가족들을 위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마침 남편이 가지고 있는 사무실 한 칸을 1년간 무상임대해주겠다고 해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016년 1월 16일, 아들이 태어난 날에 ‘함께’를 설립했습니다.

 

인권 자식을 잃은 피해 가족들의 경우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공복순 저는 다시 일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남편과 같이 명상도 하고 여행을 다니며 수년간 버텨왔어요. 기운은 차렸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병원을 오가며 주기적으로 치료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실제로는 이혼하는 가정이 참 많습니다. 술에 빠져 친척, 친구와 멀어지죠. 남은 가족 간에 대화도 끊어지고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개별적인 문제로 치부해선 안 돼요. 사고 직후 국방부나 보훈처에서 어떻게 후속 조치를 하느냐에 따라 남은 가족의 인생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박미숙 저는 정말 아무 걱정 없이 아들을 군대에 보냈어요. 평소에도 걱정을 끼치거나 속상하게 한 적 없는 아들이었죠. 그렇게 착한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가족들끼리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됐어요. 하루하루 응어리만 쌓여갔죠.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정신과에 가보자고 말하더군요. 저는 아직도 완전히 이겨내지 못했어요. 지금은 아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군대의 의료 체계를 바꾸기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며 외치고 또 외치면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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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함께’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공복순 기본적으로 군에서 아들을 잃은 피해 유가족들이 만나서 심리적인 연대를 합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눈물짓고, 주 1회 정도는 재능 기부 중인 선생님에게 치유 상담도 받습니다. 매주 금요일엔 내부 회의, 월 말 금요일엔 정기 월례회를 진행해요. 무엇보다 군 의료 체계 제도 개선을 위한 각 관계 기관에 참석하는 일도 빼놓지 않고 있어요. 또한 피해 입은 가족과의 만남 주선, 군 사망사고 재판 참석, 현충일 참배 및 꽃 헌화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권 활동을 통한 성과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공복순 처음엔 저와 같은 상황에 놓인 어머니 한 사람만 구하자는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함께’를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국회, 국방부, 보훈처, 인권위, 민간 비영리단체 등으로 많이 다녔습니다. 피해 입은 가족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대화 상대를 자처했습니다. 그렇게 초반 2년은 매우 힘들었어요. 하지만 어느덧 국가 기관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및 보훈처 심사위원장, 국방부 실무진과도 면담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더욱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권 2018년 9월 국방부에서 “의료 체계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요. 군대 내 의료 체계와 군의관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박미숙 응급 환자를 방치하거나 전공의가 아닌 의료인의 오진으로 발생하는 의료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무자격 의무병의 의료 행위 근절, 민간병원 외진 권리와 전공의에게 진찰받을 수 있는 권리 확대, 응급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절차에 집착하는 군 간부들의 인식 개선 등의 개혁이 동시에 진행돼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언론 또한 군대 문제를 대할 때 자극적인 사건 보도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제도 개선을 위해 대중적으로 환기하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SNS 메신저를 통해 근무 중인 한 병사의 감사 편지를 받았어요. ‘함께’ 덕분에 의료시설이나 응급대처 부분이 많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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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군 인권을 위해 개선해야 할 제도와 정책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공복순 군 옴부즈맨 제도(군인권보호관)가 군 인권 개선의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군대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가 외부의 감시와 견제를 일절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독립된 수사권(헌병), 기소 및 재판권(군 법원)만 보더라도 한국에서 군대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죠.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늘 자체적으로 대책을 강구한다지만 그래서 바뀐 게 있나요? 왜 매년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을까요? 앞으로는 다양한 위치에 있는 시민들이 나서 관리·감독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아울러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권 군대 내 폭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관리·감독해야 할까요?

박미숙 2014년 군대에서 집단 폭행으로 숨진 윤 일병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면에는 육군 대장 부부의 갑질이 숨어 있었죠. 하루가 멀다 하고 잇따르는 군대 내 인권 침해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선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필요합니다. 군대 내 상황을 직접 조사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개선하는 일이야말로 군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시작입니다.

공복순 병사 관리 체계도 개선해야 합니다. 2014년에 일어났던 총기난사 사건은 군대의 병사 관리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내주는 단적인 예였습니다. 국방부는 후속 대책으로 기존에 ‘A, B, C 등급’으로 나눠 관리하던 관심병사 제도를 ‘도움병사’, ‘배려병사’ 등 이름만 변경하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관심병사들을 대거 소집해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그린캠프’ 또한 운영 방향과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죠. 또한 군 생활을 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예측 가능한 병사들을 징병 단계에서 미리 조처하지 못하는 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인권 마지막으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피해 가족과 국가기관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공복순 국가 차원의 군피해치유센터가 설립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해바라기센터’, 강력 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스마일센터’ 등 국가 산하의 여러 기관들처럼 국가가 군대 내 사건사고에 대해서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였으면 합니다. 보훈처는 피해 받은 장병들에게 돈이 제대로 쓰이도록 고민하고, 감사원은 제대로 군 인권 관련 사항에 대해 엄격히 감사하고, 언론이 잘못된 것에 대해 정확히 보도해 준다면 군 인권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 기대해요. 그렇게 국가기관이 제 역할을 다할 때, 그땐 ‘함께’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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