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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말하다 [2019.04] 잡지 뒷면에 끼워 넣은 홈리스 그림과 수필

글 양가희 / 사진 봉재석 / 그림 제공 임상철

 

인파가 붐비는 지하철역 출입구에서 임상철(52세)은 빨간 조끼를 입고 잡지 「빅이슈」를 판매한다. 잡지의 뒷면에는 그가 볼펜으로 그린 그림 한 장과 직접 쓴 수필이 끼워져 있다. 홈리스(homeless)로 살았던 지난 18년의이 야기가 「빅이슈」에 실려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그는 글과 그림에 자립에 대한 꿈을 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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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조각하는 잡지 판매원

「빅이슈」는 홈리스에게만 판매 권한이 주어진 대중문화 잡지다. 1991년 영국에서 창간했고 2009년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홈리스의 경우 6개월간 꾸준히 「빅이슈」를 판매하면 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얻게 된다. 지하철역 출입구 앞이나 거리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잡지를 판매하며 자립과 자활을 꿈꾼다.

임상철은 「빅이슈」 판매원 중 한 명이다. 20년 가까이 인력 사무소 등을 전전하며 홈리스 생활을 해왔다. 판매원이 된 지는 6년이 지났다. 그는 잡지 뒷면에 직접 그린 그림과 자신의 생활상을 담은 수필을 동봉해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린다.

잡지는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판매한다. 밤 10시 이후엔 낮보다 더 할 일이 많다. 매일 같이 그림을 그리고 「빅이슈」 다음 호에 내보낼 글을 다듬는다. 잡지 판매 수익금으로 화방에서 점토를 사와 조각 작업을 하는 날도 많다. 2019년 1월에는 그림과 글을 묶은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몇 차례 잡지를 구매했던 어느 출판업자의 제안과 시민들의 모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떤 날은 작업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죠. 피곤해도 저의 길이라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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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홈리스 생활의 시작

임상철은 8세 때 지병을 앓던 어머니를 여의고 보육원에 들어갔다. 중학교 졸업 후에는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만 18세가 되기 전까지 보육원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고등학교 육성회비였다. 보육원 동기가 16명으로 꽤 많아 보육원에서 부담할 돈이 상당해지자 고등학교 입학을 1년 미뤄야 했다. 1년을 허비하느니 사회 경험을 쌓고 생활비를 마련하자는 생각에 보육원을 나오게 된 것이다.

손재주가 뛰어나 조각가, 화가를 꿈꿨던 임상철은 조형물 제작 공장에 다녔다. 성형 틀에 재료를 주입하는 단순한 작업을 했지만, 점토를 다지고 조각도 드는 모습을 상상하며 일했다.

“여러 조형물 업체에 다니며 실력을 쌓아나갔습니다. 조형 분야는 학력보다 개인의 실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대리 다음 과장 그리고 팀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어요.”

홈리스 생활을 하게 된 것은 1997년에 닥친 외환위기 때문이었다. 조형물 제작 회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실직하게 됐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러 군데 이력서를 제출하고 전화를 돌렸으나 응답은 없었다. 그는 “6~7살 때 돌에 맞아 한 쪽 눈이 실명됐어요. 수술 실패로 눈동자가 하얘졌고 이후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게 됐죠. 인상이 안 좋다 보니 취업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호텔 주방 청소원으로 잠깐 일하기도 했지만, 주로 인력 사무소를 왔다 갔다 하며 하루를 사는 게 보통이었다. 벽돌을 나르다 건물 아래로 추락해 다리를 다친 적도 있고, 하루 종일 일거리를 구하지 못해 빈손으로 길을 나서야 했던 경험도 많다. 한파가 불어닥치면 피시방에서 몇 시간 쪽잠을 잤다. 지하철 첫 정거장에서 끝 정거장까지 오가며 시간을 때우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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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담은 홈리스의 일상

임상철은 2012년 1월 「빅이슈」를 알게 됐다. 1월부터 3월까지는 인력 사무소에 일거리가 거의 없는 시기다. 당시 수중에 돈 100만 원이 있었지만 일거리가 늘어나는 봄까지 버티기엔 무리였다. 길거리를 떠도는 홈리스 생활에 매우 지쳐있던 때라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사회적기업이라면 일거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하다 「빅이슈」를 알게 됐어요. 전화해서 물어보니 바로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오랫동안 판매하면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사무실에 가보기 전까지는 잡지 만드는 공장에서 일할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지도 못한 판매 일을 하게 됐으나 2주간의 수습 기간을 무사히 거쳤다. 일을 하다 보니 잡지를 사놓고 읽지 않고 버리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1년쯤 지나니 구매자들은 잡지가 읽고 싶은 게 아니라 저를 돕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에게 제가 누군지 알리기 위해 그림과 글을 잡지에 끼워 넣게 됐죠.”

그림 그리기를 다시 시작한 이후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스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스물여덟 번째 생일이라며 28권을 구입한 청년, 팬이라고 수줍게 말하는 독자, 호주에서 온 외국인 등 몇몇의 만남을 글로 옮겨 적기도 했다. 그는 많은 이들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책이 출간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제가 출간한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은 그동안 모은 펜 그림과 수필을 엮은 책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선의를 베풀어서 출간할 수 있었죠. 글재주가 있는 건 아니지만 꾸밈없이 제 삶과 일상을 이야기했어요. 책 제목은 저의 하루하루를 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작은 공방에서 조각하는 꿈

임상철은 「빅이슈」 판매와 책 출간으로 다른 삶을 살게 됐다고 말한다. 이제 그림 그리기와 조각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홈리스였던 과거에는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바랐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한 시간, 한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홈리스로 살았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공허함이 가득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죠.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단 1분이라도 알뜰하게 쓰려고 해요.”

그림 그리기와 조각에 집중하기 위해 「빅이슈」 판매를 계속할지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 하루 6시간 잡지를 판매하더라도 수익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제일 처음 「빅이슈」를 판매할 때는 잡지를 무료로 받지만 그다음부터는 판매원이 가격의 절반을 내고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권당 5,000원인 잡지를 10권 판매한다면 25,000원을 버는 셈이다.

“하루에 버는 돈이 20,000원도 되지 않습니다. 워낙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시민들도 살기 힘들어요. 잡지 구매자가 점점 줄어드니까 바깥에 서있는 시간이 아까웠어요. 자활하면서 저만의 시간을 갖는 게 어떨까 고민하고 있어요.”

또 다른 소망도 품게 됐다. 생활이 안정되면 작은 공방을 마련해 점토를 조각하고 그림을 꾸준히 그리는 것이다. 최근 부쩍 달라진 생활에 행복과 불행은 공존한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제 삶에 좋은 때가 없었다고 생각해왔는데 알고 보니 늘 불행하지만은 않았어요. 다른 홈리스들에게 불행을 붙잡지 말고 행복의 시간을 잡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들면 뜻깊은 시간을 쌓을 수 있을 거예요.”

임상철은 이제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거리를 떠돌던 과거를 흘려보내고 있다. 아픈 기억을 붙잡으면 불행의 시간이 더 길어진다고 믿는다. 그가 18년여 홈리스생활과 다른 모습의 삶을 그리며 행복의 시간을 채워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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