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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인권 [2018.06] 그건 혐오예요 - 상처를 덜 주고받기 위해 해야 하는 말

편집부

 

그건 혐오예요 책표지입니다. 여러 피부색의 여성과 남성을 그린 일러스트입니다.

글 홍재희 외
펴낸 곳 행성 B

 

 

그건 혐오예요
- 상처를 덜 주고받기 위해 해야 하는 말

 

혐오는 언제나 약자를 향한다. 혐오의 주 표적이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 소수자, 동물 등 사회적 소수자가 되는 이유다. 이 책은 사회적 소수자를 중심으로 어떤 말과 행동들이 혐오인지 짚고, 혐오가 어떤 배경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그 뿌리와 메커니즘을 추적한다.


저자 홍재희는 전문 작가나 학자가 아니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아버지 세대의 가부장 제도는 무엇인가를 성찰한 장편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이메일>을 만들었고 같은 제목으로 책도 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홍재희 감독의 동료인 6명의 독립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한 장씩 맡아 서술하고 있다.


1장에서는 <쇼킹 패밀리>, <레드 마리아2> 등을 통해 여성과 가부장제를 다룬 경순 감독이 여성 혐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터넷에 횡행하는 여성 혐오 발언 중에 ‘여적여’가 있다. ‘여성의 적은 여자’라는 뜻이다. 1장의 주된 내용도 여성이 혐오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그 여자와 나는 다르다는 구별로 시작되는 여성의 여성 혐오로 시작해 결국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이롭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실제로도 여성 인권이 높은 사회일수록 남성이 살기 편하다는 것은 유럽 선진 국가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2장을 맡은 이길보라 감독은 자신의 부모가 청각장애인이라 그 얘기를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 담았다. 책에서 맡은 이야기도 장애인 혐오다. 그는 고도성장 압축 성장을 한 한국 사회가 성장 동력을 상실하자 기득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장애인-이성애자-남성을 중심으로 그렇지 않은 나머지를 쳐내면서 기득권을 유지했다고 본다. 3장은 외국인 혐오다. 이를 이야기하는 이는 <계속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 등의 이주노동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은 주현숙 감독이다. 자신 역시 유색 인종이자 종종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한국인들은 본인이 백인이라고 착각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 책에서도 이를 이야기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당사자로 감옥에서 출소한 김경묵은 4장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담당했다. ‘죽음을 부르는 군대를 거부합니다’라는 글을 쓴 그는 이 책에서 ‘개인을 지우는 군대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군대에서 체화하는 위협과 공포, 전체주의 시스템이 사회에서도 유지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종북 게이’ 이야기가 있는 5장은 성 소수자 혐오 세력을 추적한 <불온한 당신>의 이영 감독이 썼다. 그 역시 성 소수자 당사자이자 혐오의 실질적인 대상으로서 ‘처음은 성 소수자겠지만, 마지막은 누가 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성 소수자로 시작된 혐오가 세월호 유가족에게로, 평범한 시민으로 퍼져가는 사회를 말한다.


마지막 6장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비인간 동물에 집중하고 있는 황윤 감독이 맡았다. 아직 인간이 살기도 어려운데 동물이 무슨 대수냐고 하지만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사회 인권의 척도임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각 장마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와 사람은 다르지만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문제는 같다. 혐오는 점점 퍼져가고 있다. <그건 혐오예요>는 혐오와 싸워 이길 방법을 제시한다. ‘타자에 대한 공감’. 공감 능력을 타고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공감을 연습하고 배워야하며, 타인의 처지에서 그의 삶을 상상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감할 수 있다면 소통할 수 있고, 소통하면 이해하게 되는데 이해한 이후에는 혐오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혐오를 혐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데서 혐오 끊기가 시작되고 혐오를 혐오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정치가 아닌 문화와 교육 그리고 운동으로 바꿔갈 것을 제시한다.

혐오와 혐오 표현에 대해 다양한 책이 나오고 있다. <그건 혐오예요>에서 혐오를 혐오라고 말하고 가르치는 것이 시작이라고 했으니 이제 우리는 혐오와 이별하는 첫 번째 단계를 시작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그건 혐오에요. 책 그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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