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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17.04] 봄나무처럼 싱그러운 사람, 이동우

인터뷰 진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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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미세먼지 걱정 없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던 4월의 어느 날,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이동우 씨를 만났다. 자유롭고 유쾌하며 평온하게 라디오 진행하는 모습을 한 시간 가량 지켜본 뒤 시작된 인터뷰는 즐거웠고, 왠지 새로운 꿈을 꾸어 볼 용기를 갖게 했고, 내 주변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조곤조곤 또박또박 힘주어 들려준 그의 치열한 일상과 유쾌한 생각, 아마 당신도 분명 빠져들 것이다.

 

 

인권_ 인터뷰 전에 와서 <한낮의 음악선물> 진행하시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너무 재미있고 시원한 느낌이었어요. 7년째 매일 하고 계신 라디오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이동우_ 라디오 진행자들이 거의 같은 생각을 하실 거 같은데 라디오는 정서적으로 TV와 달라요. TV보다 훨씬 더 진솔하게 소통 해야 하니까 착한 정서가 있어요. 그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라디오를 즐겨 듣죠. 진행자 분들도 그런 정서를 좋아하면 오래 하는 거예요. 저는 그런 게 잘 맞아서 라디오를 오랫동안 하고 있는데 데뷔하고 지금까지 라디오를 쉬어본 적이 없어요. 라디오는 불특정 다수의 사연들을 매일매일 받잖아요. 사연이라는 게 결국 그들의 인생이거든요. 살면서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사니까 인생 선배가 많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라디오는 제 인생의 선생님 같아요.


인권_ 하루를 어떻게 쓰고 계신가요


이동우_ 출퇴근 하다시피 하는 일은 라디오고요. 라디오를 중심으로 오전, 오후를 나눠 씁니다. 주로 만나는 사람이 많이 있죠. 아무래도 공연도 하고 앨범을 내고 음악 활동을 하니까 밴드 연습도 많이 하구요. 이런 저런 일들을 하다 보니 관계자들 만나서 회의도 많이 해요. 개인적인 시간은 오전 일찍, 그리고 저녁 늦게 입니다. 그때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운동도 해요.


인권_ 아침형 인간이신가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이동우_ 상당히 아침형입니다. 일찍 눈뜰 때는 5시, 6시 사이에 일어나요. 동네 한 바퀴 걷다 보면 일찍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잖아요. 그들을 보면 오랫동안 못 누워 있겠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몸이 불편해지고 나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활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명상도 하고 책 읽으며 보내요. 하루 중 가장 편안하고 좋은 시간이죠. 전날 과음만 안했다면요.(일동 웃음) 하긴 과음을 해도 늦게까지는 못 자요. 눈이 떠져요. 강박 같은 게 있나 봐요.

 

인권_ 최근 발간한 앨범 <워킹>에 실린 노래들의 가사를 모두 직접 쓰셨습니다. 어떻게 영감을 받으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특히 '커피나무'라는 노래가 인상적이었어요. 혹시 실제 그렇게 프러포즈하셨나요? 누가 그렇게 노래에서처럼 프러포즈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동우_ 영감이 올 때는 금방 써지기도 하는데 보통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쓰고 조금씩 조금씩 지워가며 완성합니다. '커피나무'는 실제 이야기는 아니에요. 앨범에 노래마다의 짧은 생각들을 썼는데 거기에 '나는 왜 그런 청혼을 상상 속에서만 하고 현실에서는 못했을까 후회 된다'고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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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_ 누군가 아마도 이동우 씨 대신 실행에 옮길 것 같은데요.


이동우_ 커피나무만 있으면 안돼요. 그거만으로는 아주 형편없는 프러포즈고, 작고 반짝이는 게 있어야 해요. 반지 때문에 좋은 거지 커피나무는 부수적이죠.(일동 웃음)

 

인권_ 다큐멘터리 영화 〈시소〉를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보고 났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경쾌해지고 가벼워졌어요.


이동우_ 중증장애인 2명을 찍어야 되는 거니까 촬영이 쉽지 않았어요. 특히 편집 과정이 힘드셨죠. 장애인 2명이 나오고 거기다가 남남. 한국 정서상 외면하기 좋은 걸로만 골라놓은 거라 편집이 중요했어요. 누굴 보게 하려고 찍은 거니까 어떻게든 보게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편집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이태리 영화감독이 하게 됐어요. 그의 편집 의도는 '영화를 한편의 시로 만들고 싶다'라는 거였고, 제가 보더라도 좋았어요.

 

인권_ 숲이 등장하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정말 시적이에요. 영화에서 임재신 씨가 스킨스쿠버 체험을 합니다. 그 분이 정말 해 보고 싶으셨던 건가요


이동우_ 그 여행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연출이 된 건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연출진이 우리가 하고 싶다는 걸 말렸어요. 안전 때문에요. 그래서 재신이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도 고민을 많이 했죠. 휠체어를 타고 바다에 내려간 게 세계에서 두 번째인데 팔다리를 다 못쓰는 사람으로서는 재신이가 최초예요. 도전 정신이 어마어마했죠.

 

인권_ 임재신 씨가 바다에서 나온 후에 '천국의 문을 두드린 거 같다'는 말씀을 하시던데요.

 

이동우_ 정말 좋아했고 '나오고 싶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만큼 좋았다는 얘긴데 비장애인도 처음 바다에 들어가면 뭐가 좋은지 잘 못 느끼고 나오거든요. 당황하고 좀 어색하다고 해요. 그래서 재신이는 더더욱 그럴 거 같았는데 단박에 좋았다고 하니까 정말 다행이었어요.

 

인권_ 영화에서 그렇게 임재신 씨만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이동우씨는 안 했는데 혹시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


이동우_ 지금 하고 싶은 거는 하나 있어요. 스카이보드. 제가 알기로는 국내에는 없다는데 그거는 정말 한번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워낙 어려운 종목이라 불가능에 가까울 거고 대신 패러글라이딩도 좋을 거 같아요. 또 나무 가꾸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점점 나무, 꽃 이런 것들이 좋아지더라고요.(일동 웃음) 왜 웃어요? 다 됐나 싶어요? 나이 들면 자꾸 산으로 올라간다고 하잖아요.(일동 웃음)

 

인권_ 편집된 영상을 직접 눈으로 보실 수는 없으니 화면을 읽어주는 걸로 보셨겠어요.

 

이동우_ 네. 배리어프리(barrier free) 버전 말씀이시죠. 〈시소〉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도 그렇게 보는데 저희들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감사하죠. 사실 어떤 배려와 어떤 장치도 장애의 불편함을 완전히 떨쳐줄 수는 없죠. 하지만 그런 장치들이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예요.

 

인권_ 영화 속에서 딸 지우가 버킷리스트를 써요. 아빠가 눈을 뜨면 같이 하고 싶은 것들을요. 지우가 그때 어떤 걸 썼고 그때 이동우 씨의 마음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동우_ 아이들은 늘 바뀌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아요. 어제 지우가 한 말을 가지고 너무 기뻐할 필요도 없고, 또 어제 지우가 한 행동 때문에 너무 가슴 아파할 일도 없는 거예요. 아이의 순수한 마음만 계속 들여다 보면 되는 거죠. 언젠가 지우가 생전 처음 했던 말인데, "지우야, 아빠 손잡고 동네 한 바퀴 산책 좀 할까?" 그랬더니 "아빠, 내가 아빠랑 같이 다니면서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러는 거예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어요. 서운한 게 아니고 아이가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이 됐어요. 그런데 말을 하고 난 뒤 아차 싶었나 봐요. 저도 너무 놀라고 지우한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하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저를 꼭 껴안아 주면서 너무 미안하고 후회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마음이 있을 때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 그게 더 훌륭하고 멋진 일이다, 앞으로도 다 얘기 해달라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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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_ 책을 많이, 다양하게 읽으시는 거 같습니다.

 

이동우_ 공부는 '드럽게' 안 했는데 책은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실명할 즈음 슬펐던 것 중에 하나가 눈으로 책을 못 읽는다는 거였어요. 점자는 중도 실명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요. 한다고 하더라도 속도가 이…동…우(읽는데 5초 정도가 걸렸다), 이 정도예요. 그러니 언제 책 한 권을 읽겠어요. 그래서 그만뒀어요. 대신 요즘은 컴퓨터가 잘 되어 있어 음성 도서로 읽죠. 독서량으로 따지면 눈으로 보던 때보다 훨씬 많이 봐요. 다만 맛이 없어요. 좋은 문장에 시선을 두고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보고 또 보는 맛이 있는 건데 이건 쓱 읽고 지나가니까 멈춰 있을 수가 없죠. 그런 면에서는 속상해요.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뭐하겠어요. 이렇게라도 읽어야지.(웃음)

 

 

 

인권_ 어떤 인터뷰에서 유머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라디오 진행하실 때도 다른 매체에서 인터뷰하실 때도 유난히 유머러스하게 기분 좋게 응대하시고요. 살면서 유머가 중요할까요

 

이동우_ 현실이 절박하다 보니 유머의 힘이 어떤 건지 비로소 알 거 같아요. 솔직히 예전에 유머는 저에게 돈벌이 수단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유머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좀 다른 삶을 살게 되다 보니까 유머가 살아가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걸 느껴요. 지나보면 아무것도 아닌 어설픈 슬픔이나 고통을 증폭시켜 죽을 지경까지 몰아가잖아요. 그때 자기든 주변 사람이든 유머라는 신선한 공기를 주입시켜 주면 금방 툴툴 털어낼 수 있는데 말이죠. 그렇게 좋은 기운과 긍정 에너지를 한방에 줄 수 있는 게 유머예요.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이 잘못하면 '코미디 수준'이라고 하잖아요? 유머가 폄하되어 있어요. IMF 같은 환난을 겪으면서 국민들의 하루 시름을 달래 준 건 코미디였어요. 문화강국 운운하지만 아직도 소위 사회적 리더라는 이들이 그 가치를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건 굉장한 슬픔이죠.

 

인권_ 우리 사회의 장애인 인권의 수준은 어느 정도까지 왔다고 느끼시나요

 

이동우_ 인권은 고사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조차도 없어요. 장애인 인식 개선이라는 말을 참 많이들 해요. 저는 그 말이 우스워요. 개선이라고 하는 건 뭔가 나빠져 있는 걸 좋게 만들 때 쓰는 용어죠. 근데 장애인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아예 없는데 좋게 만든다니요? 인식을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에요. 이제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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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_ 인식이 있는 척하고 있었던 거네요.

 

이동우_ 맞아요. 먼저 인식을 만들어야죠. 인식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제 짧은 생각으로는 하나 밖에 없어요. 교육. 저희는 처음부터 교육이 부재되어 있었어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가요. 굉장히 우매한 거고 낭비고 헛물켜는 거예요. 제가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데 이것이 '흰지팡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국민 중에 몇 퍼센트나 될까요? 제가 볼 때는 1%도 안 돼요. 이건 지팡이가 아니에요. '흰지팡이'지. '흰지팡이'에 대한 얘기만 하더라도 두 시간은 걸리거든요.

 

인권_ 벙어리장갑 대신 엄지장갑이라고 부르자는 캠페인을 보고 그 동안 한 번도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동우_ 그 사람은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개선을 한 거예요. 그런 얘기들을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분들이 메신저 역할을 부지런히 해주시는 게 현시점에서는 중요하다고 봐요. 다들 장애가 없을 거라며 살아가는데 당장 아들딸이 장애인이 되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요. 굉장히 슬픈 건데 자식이 중도 실명해서 '흰지팡이'를 짚는 거를 부모들이 오히려 반대해요. 불쌍하고 창피하다는 거예요. 이게 당사자에게는 장애보다 더 큰 장애가 돼요. 마음의 장애요. 얼마나 우스워요. 지팡이를 짚는다는 건 살겠다는 거거든요. 없으면 죽어요. 차가 와서 박아요.

  

인권_ 교육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인식들이 하루 빨리 생겨나고 사회가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계획한 일들이 있으신가요

 

이동우_ 언젠가부터 계획을 잘 안 세워요. 보통 돈 되는 일만 계획하는데 그건 계획이 아닌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반적인 계획의 개념으로 질문하시면 저는 계획이 거의 없는 거예요. 하고 싶은 건 많이 있습니다. 책 준비도 하고 있고요. 아까 말씀 드린 패러글라이딩, 스카이보딩도 있고, 나무 가꾸는 일도 꼭 해보고 싶습니다. 저로서는 모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에요.

 

인권_ 봄을 어떻게 느끼고 계신가요

 

이동우_ 봄이 이렇게 좋은 계절이라는 것을 몇 해 전부터 느끼고 있어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대체되는 감각으로 느낀다고 하면 감동이라고 하는데 사실 모르겠어요.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는 입장에서는 모든 게 절박한 거예요. 바람길을 청각과 촉각으로 느낀다고 해도 보는 것만큼 만족스럽지 못하죠. 다만 눈 뜨고도 볼 수 없었던 걸 느끼게 되니까 그 부분에 대한 감사함으로 살아가요.

 

인권_ 오늘 이야기 정말 즐겁고 감사합니다. 좋은 봄날 되시고, 공연 잘 마치시기를 기원할게요.

 

 

영화 얘기로, 책 얘기로, 음악 얘기로, 유머에 대한 철학 얘기로, 꿈 얘기로, 인권 얘기로… 마치 오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여러 주제를 넘나들었다. 그와 얘기를 주고받고 있자니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숲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나무 가꾸는 일을 하고 싶다고 그가 얘기할 때 내 머릿속에는 나무를 돌보는 미래 어느 날의 그, 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멋진 노래 가사를 쓰는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상상은 분명 현실에서 만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그의 노래에서처럼 흰지팡이를 짚고 '톡탁' 가볍고 경쾌하게 다음 약속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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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진유정 님은 다양한 매체에 여행과 사람, 삶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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