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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담언 [2017.04] 열정페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글 유병선 / 일러스트 장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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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만우절에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였다. IT회사에서 일러스트러로 일했다는 한 청년 출연자가 들려준 경험담은 이랬다. 새벽 4시 반에 퇴근해 씻고 옷만 갈아입고 새벽 6시에 출근하기 일쑤였다고 했다. 그렇게 1년을 다닌 회사에서 처음 두 달은 7만 원을 월급이라고 받았다는 그는 “22시간을 일하면 다른 친구들보다 3배 더 많이 일하니 3배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했다. 이는 만우절 거짓말이었으면 좋았으련만 불행하게도 ‘열정페이’의 육성 증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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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는 2014년 유명 의류업체가 젊은 디자이너 지망생을 인턴으로 채용해 형편없는 보수를 지급하며 일을 시킨 부당노동행위가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널리 쓰이게 됐다. 의류업계만이 아니라 IT, 공연, 영화, 방송 등에도 구직자가 넘치다보니 열정과 재능이 있는 젊은이에게 보수는 적게 주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해주는 게 사회공헌이라고 착각하는 ‘사장님’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용절벽에 직면한 청년에게 열정(熱情)을 부추기는 세태와 불안정한 일자리의 낮은 임금(pay)을 강요하는 노동착취의 현실을 비판하는 신조어가 열정페이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청년과 노동을 대하는 태도를 묻는다. 이 서걱거리는 용어가 오락 방송에 등장할 정도로 일반화됐다면 청년들은 더 약탈당했다는 것이고, 우리 사회는 그만큼 더 불행해졌다는 의미일 터이다. 급기야 정부는 열정페이를 방지하겠다며 ‘일경험 수련생에 관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열정페이근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문제는 열정페이의 의미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열정페이를 비판하면서 청년들이 그리는 더 나은 세상은 어떤 것인지, 정부는 열정페이의 무엇을 ‘방지’하겠다고 하고, 정치권은 열정페이를 어떻게 근절하겠다는건지, 그리고 언론은 어디까지를 열정페이로 보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열정페이가 이야기되는 풍경은 어수선하다.


인터넷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어떤 사무직 회사원은 세전 월급 120만 원에 야근수당으로 1시간에 5,000원을 받고 있다며, 열정페이 여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이에 “열정페이까지는 아니고…”라는 답글이 달렸다. 그렇다면 열정페이는 보수의 문제이고 최저임금이 그 기준인 것일까?


‘알바천국’이 20~30대 구직자 1,204명을 대상으로 ‘인턴 열정페이 현황’을 설문조사했다. 응답자의 65.2%가 보수가 적고 일이 힘들어도 경험이라 생각해서 기꺼이 참아야 된다고 답했다. 청년 구직자 세 명에 두 명은 정규직 채용의 그날을 위해 열정페이를 감내하겠다는 것이다. 열정페이의 탈출구는 안정된 직장인 것처럼 보인다. 이 설문 결과는 청년 구직자들이 절박하다는 것, 그리고 열정페이란 불의한 구조를 인정하면서도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을 엿보게 해준다. 고용주들의 개과천선이나 극적인 사회적 대타협 말고는 열정페이를 벗어날 길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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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등장하는 열정페이는 뒤죽박죽이다. 올 2월 고용노동부가 국내 3대 주요 영화관 48곳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한 결과 91.7%인 44곳이 각종 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적발됐는데, 이를 두고 언론은 ‘영화관 열정페이 만연’이라 제목을 달았다. 마땅히 지급해야 할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부당노동행위도 열정페이로 봐야할까?


지난 3월 법무부 산하 공공기관인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실무 수습 변호사를 모집하면서 월 35만 원을 지급한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실무 수습 변호사’제도에 따라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 예비 변호사는 공공기관이나 법률회사(로펌) 등에서 6개월간 연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는 수련의 과정처럼 변호사가 되기 위한 ‘필수 연수’라는 것이다. 언론은 “열정페이 가운데 최악”이라고 했다. 무슨 근거인지 알 수 없는 월 35만 원 지급은 너무하다 싶기는 하다. 그렇지만 종신 전문직인 변호사의 수습도 열정페이에 포함하는 게 온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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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무급 인턴 채용 자체를 ‘열정페이’로 간주한 보도도 있다. 지난 2월 유럽연합(EU)의 감사원격인 옴부즈맨실은 EU 산하 기관의 무급 인턴을 유급으로 전환하라는 권고를 했는데, 이를 두고 열정페이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무급에서 유급으로 바꾸라는 이유가 우리의 열정페이와 의미상 반대에 가깝다. 무급이면 가난한 청년은 인턴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다.


고용노동부는 열정페이를 인턴의 문제로 여기는 모양이다. 뒤늦게 마련한 열정페이 방지 법안은 실습생, 견습생, 수습생, 인턴 등 교육 또는 훈련을 목적으로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일(업무)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일경험수련생’이란 법적 지위를 부여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구별한다는 게 골자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대학생 인턴이나 특성화고교 실습생이 법적 지위가 없어서 노동과 저임금을 강요당했던 것일까, 아니면 열정페이의 관행을 제대로 근로감독하지 못한 탓일까?


청년들의 불안정한 일터에선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고, 구직자들은 하루하루가 절박한데도 열정페이를 둘러싼 논의는 이처럼 어수선하다. 여기에는 ‘열정’과 ‘페이’의 모호한 결합도 한몫한다. 일본에는 열정페이와 유사한 ‘보람 착취’라는 말이 있다. 보수보다 ‘사회적 의미’와 일의 보람을 중시해야 한다며 청년에게 저임금을 강요하는 고용 행태를 가리킨다. 저임금이라지만 열정페이처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터무니없는 수준이 아닌데도 ‘착취’로 명시한다.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 성과물을 무상으로 챙기는 것을 가리키는 단 하나의 말이 착취다. 열정페이의 작명 때 ‘착취’로 읽으면서 ‘페이’라고 썼다면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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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무엇일까? 2011년에 출간된 책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청년에 열정을 강요하는 노동실태를 폭로한 바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20명의 청년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겠다’는 소박한 꿈이 ‘원하는 일을 하니까 참으라’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어떻게 착취당하는지를 증언한다. ‘열정페이’의 조어에 이 책이 영향을 미쳤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열정(熱情)의 우리말 사전 풀이는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다. ‘열정’에 해당하는 영어 ‘passion’은 서양 고대로부터 이성과 대비되는 감정을 가리켰고, 특히 영혼을 마비시킬 정도의 격정을 뜻했다. 이성에 가려 있던 감정(경험론 철학에선 정념이라 한다)이 중시되기 시작한 건 근대 경험론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경험론 철학이 도덕과 인간 의지의 원천이라며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20세기 들어 예술가의 예술혼이나 학자의 학구열을 지탱하는 원동력으로 열정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우리나 서양이나 열정이 직업과 관련되어 요란하게 쓰이기 시작한 것은 21세기 들어서의 일이다. ‘꿈’을 꾸라고 닦달하더니, 2000년 중반 들어 ‘열정’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꿈을 이루려면 열정이 있어야 하며, 열정을 가질 때 일의 성취감도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열정은 설명도 측정도 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래도 열정페이가 분명히 지목하는 것은 우리사회에서 열정이 청년을 응원하는 말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희망을 박탈하는 세상에서 꿈을 꾸라고 하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면 세상을 탓하지 말고 열정이 부족한 자신을 탓하라는 주문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열정이 강요되는 세태가 밉다고 열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목욕물과 아이를 함께 버리는 꼴이 된다.


세상을 바꾸려면 문제의 이름이 필요하다. 고용주는 취업난에 편승해 열정을 들먹이며 청춘의 노동을 헐값에 착취할 궁리를 하고, 절박한 청년들은 뻔히 알면서도 그 수렁으로 걸어 들어가고, 정부는 고용의 질은 따지지 않고 일자리 개수만 세고 있다. 이것이 젊음을 착취하고 미래를 약탈하고 청춘의 인권을 유린하는 구조이다. 열정페이가 이러한 구조를 온전히 드러내고, 고용절벽 시대의 청년문제를 대변하며,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는가. 저임금이 문제인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인가. 열정페이의 현실에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겠다면 열정페이란 말부터 찬찬히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모호한 말로는 불의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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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선 님은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으로 <고장난 자본주의에서 행복을 작당하는 법>, <보노보 혁명>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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