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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밑줄 긋기 [2017.03] 인권의 지역화

글 정유선

 

인권도서관

 일상생활의 인권 증진을 위하여

저자 김중섭 | 집문당 | 2016. 12. 30

 

전쟁의 반대는 뭘까? 라는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화라고 답한다. “전쟁이 없는 평화의 상태는 과연 무엇일까? 단지 총탄이 난무하지 않으면 평화로울까?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현재는 평화로운가? 이렇게 질문을 확장해가면 사람들은 답하기 곤란해 한다. 사실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어도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존재의 조건이 전쟁터인 사람들이 많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일터, 교사에게 학대당하는 어린이집 영유아, 가정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집, 성적소수자로 차별받는 군대, 언제 강제송환 당할지 알 수 없는 이주노동자, 하루 평균 54명의 성폭력 피해자가 발생하는 한국의 여성들까지 이렇게 불안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현실은 전쟁상태보다 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의 반대는 평화가 아닌 개개인이 불안하거나 억압받지 않고 일상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폭력성의 문제의 해결방법을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사회가 이렇게 불안정한 이유는 인간의 존엄과 기본 권리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며 인권보호와 증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국가와 지역공동체의 주요 책무이자 과제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 인권의 증진은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지역사회의 인권 실행 수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공동체가 함께 바꿔나가야 함을 광주, 진주, 오사카의 사례를 들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인권조례제정 운동이나 인권마을 만들기 운동 같은 지역 내 인권증진 운동을 시작한 세 지역이 모두 역사적 경험과 유산 - 광주의 5·18민주화 운동, 진주의 형평운동, 오사카의 부락해방운동 - 을 활용하여 공동체의 인권증진을 도모한 것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저자가 인권의 지역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지역공동체와 인권이 서로 친화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오랫동안 공동체가 공유해온 관습과 문화를 통해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속성을 갖는다. 이러한 공동체의 동질성과 결속력은 이질적인 것을 인정하거나 수용하는데 걸림돌이 된다.(37p) 그렇기 때문에 지역공동체를 인권 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이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을 높이는 핵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지역의 인권조례제정운동을 통한 법제도의 정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지역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 실행을 이끄는 핵심요소 중 하나는 지자체의 인권 인식과 태도이고 특히 지자체 단체장의 역할이 중요하다”(290p)고 말한다. 투표의 엄중함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도 행정부의 실행의지 없이는 지역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기 어렵다. 일본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열심히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인권마을을 위한 정책과 교육을 실행하고 있어도 정치상황이 바뀌어 지자체 장이 인권증진에 호의적이지 않으면 그동안의 노력들이 순식간에 뒤로 후퇴함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시민단체의 역할과 지역의 인권증진을 위한 위원회와 법적 장치가 중요하고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사실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반드시 지켜져야 함에 원칙적인 동의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또한, 지역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억압과 강제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공유해온 관습과 문화를 유지하려는 세력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우리의 생각 또한 그러한 관습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를 지키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성폭력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조심하지 않아서라는 통념이 존재하고, “성평등이란 의미에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양성만 인정된다. 또한, 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인과 같은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에 인색하다. 심지어는 세월호의 아이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아이들이 뛰어 놀던 공원 한편에 안전공원을 건립하려는 노력도 자신의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이웃주민이 반대한다.

 

이 책은 지금처럼 사회의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지역 공동체의 인권 증진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실천할 것인지를 꼼꼼하게 알려준다.

 

나는 전국을 다니며 폭력예방에 대한 강의, 성평등에 대한 강의를 한다. 사람들에게 오늘 안녕하신지를 물으면 다들 안녕하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구성원 중 누군가가 성적정체성 때문에, 피부색과 국적 때문에, 장애 때문에 심지어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진짜 안녕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이제 촛불대신 사람들과 지역의 인권조례를 만들러 나가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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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선 님은 성평등교육연구센터 이룸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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