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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동화 [2017.02] 성준이의 학교가는 길

글. 고정욱 그림. 정하영

 

1


“엄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성준이는 이렇게 세 번 인사해야 집에서 나섭니다. 엄마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잘 다녀와. 성준아.”
“엄마 안녕, 엄마 안녕, 엄마 안녕.”
인사를 또 세 번 하고 성준이는 신주머니를 흔들면서 길을 걷습니다.


성준이의 학교는 집에서 삼백 미터쯤 떨어져 있습니다. 엄마가 얼마 전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와서 이제 혼자서도 얼마든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까지 가는 시간은 오래 걸립니다. 왜냐구요?
“백구 안녕, 안녕, 안녕?”
에헴 할아버지 집 앞에 끈에 묶여 있는 백구를 보고 성준이는 인사를 합니다.
백구는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 줍니다.


그렇습니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성준이는 혼자 학교에 가면서 이렇게 세상 모든 일에 참견을 해야 합니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미미슈퍼 아줌마에게도 인사를 합니다.
“우리 성준이. 학교 잘 다녀와.”
쪼그리고 앉아 길가에 내놓은 배추의 시든 잎을 떼어내던 아줌마가 허리를 펴며 웃어 주었습니다.
“네, 네, 네.”


이렇게 성준이가 다니는 사랑학교는 장애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입니다.
성준이는 학교에서 우연히 국악의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학교의 판소리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시켜보다가 목청이 좋은 성준이를 발견한 것입니다.
오늘은 그 판소리 선생님에게 방과후교실에서 판소리를 배우는 날입니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의 찬자리여~.”
내용도 잘 모르면서 성준이는 판소리가 재미있어서 흥얼대며 갑니다. 신나는 대목에선 덩실덩실 춤도 추며 길을 가는데 길가에 핀 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꽃아, 안녕. 안녕, 안녕.”
쪼그리고 앉아 꽃의 냄새를 맡습니다.

 

2

 

이때 지나가던 중학생 형들이 성준이를 보았습니다.
“야, 쟤 애자 아니냐?”
인철이는 같이 가던 성식이에게 물었습니다.


“응 우리 학교 옆에 있는 애자학교 다니는 애잖아. 히히.”
장애인을 비하하는 애자라는 말로 두 중학생은 성준이를 부르면서 킥킥댔습니다.
“쟤 이거야, 이거.”
자신의 머리 옆에서 동그라미를 몇 개 그리며 인철이가 얼빠진 표정을 했습니다. 킥킥대며 웃던 성식이는 내친김에 꽃향기에 취해 있는 성준이를 불렀습니다.


“야, 애자!”
하지만 성준이는 누굴 부르는지 모릅니다.
“애자야, 너 애자라며?”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툭툭 치자 그제야 성준이는 형들을 봤습니다. 윗사람을 보면 인사를 하라고 배운 성준이는 발딱 일어나 명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형아들 안녕, 안녕, 안녕.”

 

3

 

정작 놀란 건 두 중학생이었습니다.
“야, 이거 진짜 애자 맞네.”
“킥킥! 너도 고생문이 훤하다.”
인철이가 말했습니다.
“야, 그래도 얘는 시험도 안 보고, 성적 때문에 속도 안 상할 거 아니야?”
“부럽다. 부러워. 넌 아예 바보니까 좋은 점도 있구나.”


그때 성준이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형아들 학교 가? 나도 학교 가.”
성준이가 물었지만 그때 중학교에서 울리는 수업종 소리가 중학생을 펄쩍 뛰게 만들었습니다.
“야 뛰자!”
“윽 늦었다.!”
번개처럼 중학생 둘은 교문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형아들 안녕, 안녕, 안녕.”


형아들이 사라지자 성준이는 다시 판소리 타령을 하며 계속 갑니다.
“생각나는 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학교로 걸어가는 성준이를 보고 마당에 나와 빨래를 널던 심술쟁이 할머니가 혀를 찹니다.
“성치 않은 애가 학교는 뭐하러 다니누? 일찌감치 일이나 배우지.”

성준이는 또 인사를 합니다.
“할머니. 안녕, 안녕, 안녕.”
“듣기 싫어!”
할머니는 장애가 있는 성준이가 영 못마땅합니다. 특수학교 부근에 있다고 사람들이 장애인에게 피해 보는 게 없느냐, 집값 떨어지지 않냐며 자주 물어보니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습니다.
“전생에 업이 많아서 저래. 업이 많아서.”


성준이는 큰길을 건너야 합니다. 맞은 편에 학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길거리에 학교 가는 학생들의 발길은 다 끊어졌습니다. 하지만 즐거운 성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판소리를 흥얼대며 갑니다.

 

4


중학교 앞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선생님들이 교문 앞에서 지각한 학생들을 붙잡아 야단을 치고 있었습니다.
“너희들 지각을 한두 번 했어야지. 이 녀석들아, 정말 혼 좀 나야 되겠어.
벌점 받을래, 운동장 세 바퀴 돌래?”
지각한 몇 명의 중학생 형과 누나들은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성준이를 놀렸던 인철이와 성식이도 있었습니다.
“선생님 한 번만 봐주세요.”
학생들은 울상이 되어 투덜대며 선생님에게 애원했습니다.
“오늘 반성문 쓸래, 아니면 벌점 받을래?”
인철이는 선생님이 못 듣게 성식이에게 소곤댔습니다.
“아 정말 재수없어. 아까 그 애자 녀석만 아니었어도 우리 지각하지 않는 건데.”
인철이와 성식이는 마치 성준이 때문에 지각이라도 한 양 입술이 삐죽 나왔습니다.


“거기 뭐라고 떠드는 거야?”
선생님이 고함을 꽥 질렀습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교문 안으로 번개처럼 들어왔습니다. 성준이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잘못했어요, 우리 형아들 야단치지 마세요. 형아들 불쌍해요. 불쌍해요, 불쌍해요.”
“넌 또 누구냐?”


성준이가 싹싹 빌자 중학교 선생님은 당황했습니다. 지각해서 야단맞던 중학생들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식이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얘 옆에 있는 사랑학교 다니는 장애인이에요.”
“오 그래?”
성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빌었습니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형아들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착한 마음을 가진 성준이는 중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는 걸 보자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신 빌어서라도 형아와 누나들을 용서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허허, 이 녀석 알았다.”
마음이 풀린 선생님은 웃으면서 성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너희들을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초등학교 다니는 동생이 너희들을 용서해 주라잖아.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 녀석들아. 빨리 교실로 가.”
학생들은 우리에서 놓여난 산짐승처럼 교실로 뛰어갔습니다.
“너는 이름이 뭐냐?”
“성준이에요. 장성준, 장성준, 장성준.”
“허허, 녀석. 그래 성준이 너는 나중에 우리 학교로 꼭 와라.”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흐뭇한 얼굴로 성준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만치 가던 인철이와 성식이는 자신들이 아침에 한 행동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학교를 향해 가는 성준이 입에서는 판소리 타령이 흘러나왔습니다.
“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 후리러 나간다~”

 

 

글쓴이 고정욱 님은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고, 장애인을 소재로 한 동화를 많이 발표했습니다.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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