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 > 삶을 다루는 마음 > 날개 다친 천사들을 위한 안전한 울타리 <두빛나래협동조합>

삶을 다루는 마음 [2017.02] 날개 다친 천사들을 위한 안전한 울타리 <두빛나래협동조합>

글. 이현수 사진. 손초원

 

장성동 포항온천 입구에서 한 블록 아래, 장량 성당 맞은편에는 조금 특별한 카페가 있다. 지역 청소년들과 따뜻한 동행을 이어가고 있는 두빛나래협동조합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단순한 상담에서 나아가 바리스타를 지망하는 청소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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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아홉 살 지섭 군의 이야기


  두빛나래협동조합의 카페(이하 두빛나래)에서 일하는 김지섭 군은 2015년에 자퇴했다. 그가 다니던 학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이는 최상위권 인문계였는데, 전기 계통에서 일하고 싶은 그의 관심과는 사뭇 멀었다.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는 것은 자신뿐, 주변 친구들은 빠르게 돌아가는 학업 스케줄을 소화하기 바빴다. 더는 다니기 싫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때마침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어서, 지섭 군이 자기 뜻을 관철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부모님과의 갈등.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결국, 아버지는 지섭 군의 자퇴를 승낙해줬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학교도 자퇴했고 학생 신분도 아닌데 부모님에게 손 벌릴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용돈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가 맨 처음 일한 곳은 포항의 모 음식점이었는데 근무환경이 열악해서 오래 버틸 수 없었고, 돌잔치가 주 업종인 모 뷔페로 근무지를 옮겼다. 당장 용돈을 버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은 기뻤지만 이대로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공부는 못하고 일만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초조했다. 이때 두빛나래의 최성은 씨를 알게 됐고, 이곳 카페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가정 밖, 학교 밖 청소년들의 생활패턴을 우선하여 근무 스케줄을 짜는 두빛나래 덕분에 그는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3월 복학한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그는 이제 진짜 꿈을 꾸고 있다.


“지금 학교에서는 주변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생활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 로봇대회를 참관하면서 전기 계통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나중에 전기 분야 대학에 진학할 거예요.”


  두빛나래에서 일하는 것은 가정 밖, 학교 밖 청소년에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그는 밝혔다. 첫째는 근무시간 때문이다. 보통 그는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12시까지 일한다. ‘최근에는 라테아트에 빠져있다’며 갓 만든 커피를 내밀었다. 뽀얗게 하트가 핀 수준급 라테아트였다. 둘째는 자율적인 운영이다. 두빛나래는 청소년이 근무계획을 자율적으로 짜는 것은 물론 철마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SNS 홍보 계획 짜기와 실행까지 한다. 지섭 군 역시 이곳에서 오래 성실하게 일한 경력을 인정받아 올해부터 ‘매니저’를 맡았다. 직원들의 근태를 관리하고 커피 내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중간관리자 역할이다. 셋째는 따뜻한 분위기다. 청소년들로 구성되어있으니 일반 회사처럼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다. 이곳에서 일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뉴페이스 서시오 양은 ‘가족적인 분위기’라면서 직접 그린 웹툰을 보여줬다. 두빛나래를 사람들에게 알릴 ‘홍보웹툰’인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성격과 얼굴의 특징을 코믹하게 표현했다. 이곳을 이끄는 최성은 대표는 ‘왕 보스’라고 적혀있다. 아이들이 이토록 믿고 따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최 대표는 “같은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놨다. 그녀는 가정 밖 청소년이었고, 학교 밖을 경험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쉽게 알 수 있었다.

 

┃  두빛나래의 왕 보스, 그녀의 이야기


  “열다섯 살 때부터 전학을 가기 시작했어요. 17세부터 18세까지 학교를 네 군데 다녔으니 말 다했죠. 우리 때는 자퇴가 존재하지 않아서 전학으로 자퇴를 대신했거든요.”


  맨 처음에 그녀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중학교 1학년 때 2학년 선배들의 눈 밖에 나, 점심시간마다 밥도 못 먹고 체벌을 받았다. 학교에 가기 싫었다. 참다못해 3학년 중 일진으로 유명한 언니에게 편지를 썼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호소가 통했다. ‘성은이는 양 동생이니까 건들지 마라’라는 지시(?)가 내려오자 괴롭힘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후 일련의 사건들이 학교에서 문제가 되어 정학을 거듭 받았고, 정학이 쌓이자 대전으로 강제전학을 당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포항에서 인정받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때부터가 문제였다.


  “분명 제가 노력해서 들어간 것인데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거예요. 중학교 때 경력이 유명해서 제가 모르는 아이들도 저를 알고 있었어요. 어느 날인가는 친구들이 절 불러내서 ‘솔직히 말해라. 돈 써서 들어왔지’라고 캐물었어요. 저의 설명을 들으려는 분위기가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답을 들으려는 모양새였죠. 친구라고 생각했던 애들에게 그런 질문을 받고 나니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감정이 격해진 애들은 주먹을 휘둘렀는데, 때리는 대로 다 맞았어요. 이후 다른 학교 친구들과 가출하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인 방황의 시작이었죠.”


  학교도, 친구라 여겼던 아이들도, 부모님도 자기편이 아니었던 기억. 가정 밖 청소년들과 맥을 함께하는 강렬한 소외감이다. 이후 스물두 살에 검정고시를 보고 회계사무실, 성매매사무소 행정담당, 해당 사무소 상담원을 거치면서 자신과 비슷한 경험으로 방황하는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경북에 있는 모 상담소에서 8년가량을 몸담았는데, 실제로 가출이나 성매매와 밀접한 경험을 한 상담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관련 경험이 부족하니 상담자와 이야기할 때도 부족함이 많았죠. 여성 기관 지원도 한정적이고 지속적이지 않은 것도 저에게 떠오른 의문이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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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날개가 될래요


  청소년상담소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하자, 제도권 밖에서 여전히 고통받는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자고 결심한 그녀가 두빛나래협동조합을 만든 것은 작년이다. 성매매 여성 상담을 맡았던 자신과 법률담당자와 정신건강의, 회계사무실 근무자와 사회복지 외래교수, 경찰로 6명의 발기인을 구성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힘찬 출발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던가. 기회가 왔다. 대구대학교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2016년 2월 선정된 것. 이후 회의 끝에 협동조합으로 형태를 결정하기로 결론을 냈다. 사회적 기업으로만 진행할 경우 영리를 추구하지 못해 자생력이 떨어지고,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면 지속하지 못한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두빛나래의 이름이 탄생했다. 두빛나래는 순우리말로 두 개의 빛나는 날개라는 뜻이다. 영리와 비영리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것. 이렇게 해서 열게 된 것이 두빛나래카페다. 청소년이 일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신분적 약점을 이용한 임금체불도 만연하다. 두빛나래는 가정 밖 청소년을 중점적으로 채용하고 임금을 제때 지불하는 것은 물론 생계와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공부하고 싶은 청소년을 위해 교육지원도 하고 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하며 찾아오는 청소년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것은 물론이다.


  “공부와 생계를 병행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저희 두빛나래의 소식을 듣고 많이 찾아와줬으면 좋겠어요. 상황상 이곳에서 일할 수 없다고 해도,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내쳐진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공감해주고, 어울려줄 사람이 절실하니까요.”

 

이현수 님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남기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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