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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세상 [2017.02] 정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박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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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에 정의는 없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박준영 변호사가 공동 저자로 참여한 〈지연된 정의〉의 서두에 실린 글귀다. 이 책에서 그는 재심 사건의 본질에 대해 말한다. 활자 그대로 ‘재심(再審)’은 이미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그 재판에 결함이 발견되어 법원이 다시 심리하는 일이다. 공명정대한 판결이라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을, 왜 재심을 해야 했을까. 포인트는 ‘재판에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심 사건은 보통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회적 약자가 범인으로 지목된 경우가 많아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청소년, 장애인, 노숙자와 같은 사람들이다 보니 반항심을 표출하다가도 권력 앞에서 쉽사리 포기해버리죠. 그래서 자신이 하지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자포자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420조에서는 판결의 증거가 된 것이 허위인 것으로 증명될 때, 유죄 선고를 받은 것에 대해 무고죄가 증명될 때,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이 무죄 또는 면소 등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때 재심을 허용하고 있다. 억울하다면 법원에 상고할 수 있고, 국선변호인 제도도 있는데 이들은 왜 도중에 포기를 해야 했을까. 그는 피해자들이 사건 조사와 법정에서 숱하게 맞닥뜨려야 할 벽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범인이라는 직접적인 물증·단서 없이 의심을 확신으로 키웠고, 그 과정에서 원칙을 어겨가며 수사를 했다. 검찰은 경찰의 조서에 의존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고, 국선변호인은 허위자백을 강권했다. 끝으로 법원은 별다른 검증도 없이 유죄를 선고했다. 박준영 변호사가 재심 변호를 담당한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1999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2000년)’, ‘수원 노숙소녀 사망사건(2007년)’, 그리고 현재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2000년)’ 등이 그 예다. 그는 이들에게 허위 자백을 한 이유를 묻기 전에 “왜 허위 자백을 해야만 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먼저”라 말한다. 지적장애 5급의 미성년자 3명이 강도가 되어 슈퍼를 털고 할머니를 질식사시켰다고 알려진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의 재심에서 그는 이렇게 변론한다.

 

“헌법이 정한 바대로 이 사건 피고인들이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를 받았나요? 이들이 법 앞에 평등했나요? 오히려 역차별을 받지는 않았나요? 국가는 장애가 있거나 미성년자였던 이들, 그리고 이들의 가정을 어떻게 보호했나요?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 검사, 그리고 재판을 했던 판사는 이들에게 봉사자였나요? 이들에 대한 책임을 진 사실이 있나요?”


┃  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거울 같은 존재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소녀의 시신이 학교에서 발견됐을 때 지적장애 노숙인 2명과 가정 밖 청소년 5명을 범인으로 몰아갔던 ‘수원 노숙소녀 사망사건’에서 담당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노숙을 하던 아이들이기 때문에 들고양이 같은 야생성을 가졌다.” 가정 밖 청소년은 거칠다는 편견, 그 뒤의 강한 권력 앞에서 이들은 저항 대신 순종을 택했다.


  그렇게 사건들은 그대로, 여러 사건들에 파묻혀 지나갈 수 있었다. 박준영 변호사가 이들의 사건을 접하고 억울함을 풀어줘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피해자들이 청소년 상담센터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였다.

 

‘제가 아무리 가출해서 양아치처럼 살았지만, 선생님만은 저를 믿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안 했다고 난리를 쳐도, 검사가 몰아붙여서 난동 피우면 없던 죄도 생길까 봐… 막장이라고 생각하고 인정했어요. 선생님과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썼는데 설마 제가 사람을 죽였을까요?’

 

  공권력이 개인의 인권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의 피해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청소년의 경우 가족과 학교, 친구 등 자신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청소년기는 변화의 가능성이 큰 시기입니다.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고 사고의 완성이 되지 않은 때이지만, 미래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고 삶에 대한 성숙도도 깊어지는 때죠. 그래서 질풍노도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사실 어른들도 한때 청소년기를 보냈고, 그렇기에 이 시기의 심리에 대해 모른다고 말할 수 없어요. 가정 밖 청소년을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가 함께 보호해야 할 존재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 역시 청소년 시절에 숱한 가출과 방황을 일삼았고, 고교 생활기록부에는 ‘준법정신이 요구됨’이라 쓰여 있을 만큼 ‘문제아’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어렵게 입학한 대학교도 1년이 못돼 나왔으니 공식적인 그의 학력은 고졸이다. 그런 그가 사법고시를 치르고 변호사가 됐다는 것은 그의 말마따나 아이러니이자 인생역전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 밖 청소년을 편견으로 대하지 말고,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존재로 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들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관심과 이해를 가질 때 가정과 학교에서의 시스템도 재구축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청소년들을 만나 대화할 때 빼놓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고민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것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들에게 롤모델이 되어줄 수 있는 그이기에, 단순한 의미지만 변화를 이끄는 진심의 말로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  이제는 변화의 실천이 필요한 때


  변호사로서 그의 일과는 매우 빠듯하다. 맡게 된 재심 사건도 크게 늘었고, 만나야 할 사람도 언론사들의 요청도 많아졌다. 보통 퇴근 시간은 새벽을 넘기기 일쑤고,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수원의 자택까지 오가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정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강행군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그는 곧잘 “저는 많이 유명해졌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우스갯소리로 듣는 이들도 있지만 언짢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을 텐데, 거기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 “저는 더 유명해져야 합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속뜻은 이렇다.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게 하려면, 또 이들의 사건을 알리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일 터. 우리 사회의 정의를 돌려놓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약자들의 선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마따나 유명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정의 실현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형사 재판은 종종 강요된 자백과 조작된 증거 등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이때 인권은 보호받지 못하고 추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명을 쓴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변론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강화하고, 인권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일반인에게 인권에 대해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막연한 것이 아니거든요. 누구든 동등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가치를 보호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심과 공감이 필요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응원이 필요합니다.”

  박준영 변호사는 그러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작은 일에서 큰 변화가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그가 맡았던 여러 재심 사건들처럼, 사람들의 작은 정성이 답지했던 스토리 펀딩처럼 작은 사건도 큰 변화의 물결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을 그저 작은 것에만 머무르지 않게, 하나하나의 실천을 모아 변화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언젠가 김현정 앵커의 방송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듣게 됐어요. ‘자신은 구세군 냄비가 보일 때마다 갖고 있는 돈이 1만 원이든 1천 원이든 넣고 간다’고. ‘어떤 사람은 1억 원도 1천만 원도 기부하지만, 나는 빨간 냄비가 보이면 지나치지 않고 적은 돈이라도 넣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저였다면 ‘지난번에 1만 원을 넣었으니 오늘은 지나가야지’ 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방송 속의 그는 그때마다 실천적인 행동을 했던 거죠. 저는 이런 작은 실천이야말로 변화가 시작되는 원동력이라 생각해요.”


  문제 많은 가정 밖 청소년에서 사법고시를 합격한 법조인이 되기까지, 행정 전문 변호사를 꿈꾸던 사람이 재심 전문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재심에 인색한 사법부와 피해자 인권에 대한 대중적인 무관심 속에서 용케 버텨낸 그이지만, 앞으로 그의 재심 사건들은 어떤 결과로 맺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법원에서 재심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 몇몇 사건들이 그렇다. 그의 책 〈지연된 정의〉에서처럼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시간은 어떻게 해서도 보상될 수 없는 것이다.


  “제가 특별히 정의로운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재심 사건을 통해 저의 본분에 대한 눈을 뜨게 됐어요. 물론 그에 따르는 무게감은 저의 것이 되겠죠. 사회적 약자라 불리는 가정 밖 청소년, 장애인 등도 보호받을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특히 동료 변호사들이 모여 힘을 합쳤으면 좋겠어요. 그럼으로써 사법정의를 이루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장래에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글쓴이 이종철 님은 전문 인터뷰어로 사람과 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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