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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17.01] 길 위의 청춘 - 끝없는 준비: 취준생의 삶

글. 장근영

 

 


 

  나를 포함해 현재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취업준비의 경험이 있다.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인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그 시기는 다행히도 대개 몇 개월이면 끝나곤 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시절에는 말이다. 직장 생활이 시작되기에 이 시기는 그저 개인적인 경험일 뿐, 사회적으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갈수록 이 기간이 길어져서 이제는 이것이 그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경로라기보다는 ‘취준생’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굳어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청년 고용률은 OECD 평균보다 10% 이상 낮은 40% 초반이며 계속 악화되고 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월별 청년실업률은 계속 최고 수치를 갱신 중이다. 그에 따라 취준생의 숫자도 65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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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청년들은 지금 좌절 중


  물론 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곤란을 겪는 곳도 많다. 이전 세대가 그리했던 것처럼 지금 당장 취직할 수 있는 곳을 먼저 찾아서 일을 하며 경력을 쌓을 수 있다면, 지금 청년세대 역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환경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처음에 중소기업으로 시작해서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비율은 5%가 되지 않으며, 내가 일하는 중소기업이 성장하면서 나도 함께 성장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경제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한국의 기업서열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GM이나 포드 같은 전통적인 대기업이나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상위기업의 자리를 구글이나 애플이 차지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10년 전과 같은 기업들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사회는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창업과 도전정신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창업 5년 이내의 젊은 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비율은 한국이 제일 낮다.


  이런 환경에서 청년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몇몇 직업의 경쟁률은 지나치게 높아진다. 교육부의 2014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직업 1만 개 중에서 청소년들이 희망하는 상위 10개 희망직업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선호도 상위 10개 직업을 선택하겠다는 고등학생은 5명 중 2명꼴인데, 중학생에서 그 비율은 절반이고, 초등학생에서는 5명 중 3명꼴로 높다. 그 상위 10개 직업은 대부분 공공기관이나 공무원, 대기업이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2006년 이후 계속 2%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선호되는 몇몇 직업을 향한 경쟁률은 비현실적으로 높아졌다. 2016년 9급 공무원 응시자의 숫자는 22만2천 명으로 경쟁률은 54대 1이었다. 1명이 합격하는 동안 53명이 탈락해야 하는 것이다. 취준생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취준생들은 매년 실패하고 탈락하는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다. 한국의 객관적인 사회경제적인 지표는 OECD 가입국 중에서도 아직까지 견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삶에 만족하는 비율은 30위에 불과한 이유는 이와 같은 좌절감이 그 배경에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요컨대 지금 우리나라에서 취준생이라는 단계가 고착화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직업과 진로가 양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부터, 주변의 시선과 여건까지, 결국은 청년들 본인들조차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진로들을 단 두 가지로 한정해 버린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고 인정받는 직업 vs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으로 말이다. 어떤 직업이 ‘정답’인 반면에 그 외의 진로는 ‘오답’처럼 간주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사람이 일하는 곳이나 직위를 보고 그 사람의 가치 자체를 평가한다. 사농공상으로 직업의 귀천을 따지던 봉건사회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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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하고 두렵고 슬프고 겁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취준생이라는 위치는 어쩌면 직업귀천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라 할 수 있다. 전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후퇴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취준생의 위치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다. 취준생이 많은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들이 취준생의 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답으로 간주되는 괜찮은 직업을 얻기 위한 경쟁률은 비현실적으로 높다. 그래서 이들은 취업준비생이라는 이름 그대로 준비하고 실패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성공의 경험 없이 노력과 준비가 실패하는 경험만 쌓이면, 우리는 무기력을 배우게 된다. 이 세상에서 내 노력이 아무 소용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자 피터 셀리그만(P. Seligman)에 따르면 무기력의 축적은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이 세상에서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심지어 도덕성까지 약화된다. 어차피 세상이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굴러간다면, 내가 세상에 대해서 알아서 뭘 하겠나. 더구나 내 의지가 아무 소용이 없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내가 책임질 것도 없지 않겠나. 더구나 조만간 취준생 100만 명이 된다는 지금, 나만 취준생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은근한 위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길이 정답은 아니다. 더구나 다른 길도 있다. 아무리 한국 사회가 경직되어 있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기회들이 남아 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고 인공지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산업구조가 변화하고 이전의 유망 직업들이 사라지고 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직업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새로운 일들은 워낙 다양해서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전에 당연하게 여기던 취업준비의 공식, 즉 자격증을 따고 스펙을 쌓고, 지필시험과 면접시험 훈련을 하는 획일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야 찾을 수 있는 기회들이다. 중요한 것은 한번 실패한 사람이 현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시스템이다. 더욱 다양한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로 도약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저, 지금의 취준생들에게 필요한 건 단지 약간의 용기일지도 모른다. 청년들의 용기를 존중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은 오롯이 우리들의 몫이다.

 

 


 

 


┃  다만 용기가 필요한 것일지도 몰라


빠르게 변하는 것 사이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런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라고 부른다. 그중에서도 어쩌면, 치열하고 각박한 현실을 사는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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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간 작성, 1400번의 투표

 

  최규석의 〈송곳〉은 웹툰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워낙 평가가 좋아 이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까지 만들어졌다. ‘푸르미’라는 대형마트를 배경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 측의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불편하기까지 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규직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형마트 직원들 대부분이 직접 고용된 정규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규직’도 마구잡이 정리해고를 추진하려는 조직의 압력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실제로 지금도 그렇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해도 대개는 45세를 전후해서 퇴직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심지어 안정적이라는 공무원들도 정년까지 마치는 경우는 10명 중 3, 4명에 불과하다.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진로조차도 사실은 정답이 아닌 거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든 개인은 나약하다. 개인이 불합리한 사회와 조직 앞에서 자기 권리를 찾는 길은 결국 동료를 찾아 협력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더욱 “지는 건 안 무서워요. 졌을 때 혼자 있는 것이 무섭지”라는 작품 속 대사가 깊게 다가온다.


  덧붙여, 모든 직업과 모든 진로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지속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다. 물론 작품에서도 보여주듯, 그 가치는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 나와 같은 연구자가 전부 사라진다고 해도 아마 몇 개월간은 별문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트 직원이나 청소부가 전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도시 전체가 마비되기까지 일주일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 만화를 보며 어른들이 할 일은 청년들에게 도전정신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직업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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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찬찬히 들여다보기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송곳〉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제목인 ‘실버라이닝(Silver Linings)’은 먹구름 속에서 비치는 한줄기 햇빛처럼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찾아낸 희망을 의미한다. 사실 영화는 꽤 걱정스러운 분위기로 시작된다. 주인공인 팻은 이제 막 8개월간 감금되어 있던 정신병원에서 가석방(?)되려는 참이다. 그런데 안심이 되지 않는다. 운동장 구석에서 혼자서 뭐라 중얼거리며 쓰레기봉투를 땀복 대신 뒤집어쓴 채로 열심히 운동이라는 걸 하는데 역시 아직 정상이 아닌 거 같고, 간호사가 주는 약을 먹는 척만 하고 내뱉는 걸 보니 병원 치료는 다 효과 없었던 것 같고, 나오는 길에 친구 하나 데려다준다더니 동료의 정신병원 탈출을 돕는 거였고…. 이런 남자가 힘없는 늙은 부모 집에 들어가 산다니 불안할 수밖에. 그는 당연히 직업도 없다. 정신과 진단에 폭행 전과까지 있으니 당분간은 직업을 갖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러던 그가 티파니를 만난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이후 외롭고 불안정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보다 더욱 불안정한 사람을 만나자 오히려 팻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티파니를 돕기 위해서 내디딘 한발이 오히려 팻 자신을 잡아주는 닻이 된다. 선남선녀 배우들의 아우라와 예능 댄스 프로그램 같은 슬랩스틱 코미디를 벗기고 나면 이 이야기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주제를 다룬다. 사랑을 할 자격은 누구에게 있으며 그걸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은 또 누구에게 있는 거냐는 문제 말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름대로 잘 살아간다. 아니 오히려 그 결함이 그들을 독특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든다.


  취준생으로 살아가다 보면 내가 직장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완벽해야 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사실이 아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우리가 사랑할 사람을 찾는 이유는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장점들은 반드시 그 뒤에 결점들과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다. 꼼꼼한 사람은 답답하고, 과감한 사람은 무책임하며, 활달한 사람은 불안정하기 쉽다. 반대로 우울한 사람은 그만큼 냉철하고, 겁이 많은 사람은 신중하다. 내 단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장점을 확인하는 것이고 결국 나 자신을 인정하는 길이다. 결국, 그러다 보면 나를 잘 알고 인정하는 것이 희망을 찾는 첫 번째 발걸음이라는 사실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3포 세대, 혹은 5포 세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청춘들에게 조금의 위안과 용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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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 님은 심리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하는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했고, 현재 국책연구소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며 매체심리학·발달심리학·게임심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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