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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2017.01] 인생 마지막 직장 - 경비원으로 살아간다는 것

글. 박영희 사진. 이소연

 

 

인생 마지막 직장
경비원으로 살아간다는 것


‘24시간 일하고 뺨 맞아도 참아야 하는 경비원은 현대판 머슴’

‘출근길 아파트 주민에게 90도로 인사하는 경비원’

‘일처리 미숙하다는 이유로 경비원 월급 안 준 아파트 대표자 무죄 판결’
‘택배로 인한 갈등에 아파트 대표자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경비원’

‘경비 업무에 주차 관리까지 경비원의 이중고’

‘고급 아파트 경비원 입주민 막말에 분신자살’

‘아파트 경비원 그들의 실제 고용주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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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봐요


  2013년 8월, L아파트 경비원으로 입사한 최기범 씨는 숨이 턱 막혔다. 1평이 채 될까 말까 한 경비실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하룻밤 경비를 섰더니 온몸이 쑤시더라고요.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았는데도 별 효력이 없고요.”

 

  다음날 최 씨는 아파트 소장과 경비원 반장에게 양해를 구한 뒤, 지하 배관실에 휴게쉼터를 만들었다.
“경비원 48명이 격일제로 근무하는 아파트에 경비원 휴게쉼터를 만든 건 내가 시초였죠.”

  그러면서 최 씨는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었다.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근로 시간 도중에 사용자의 지휘·명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되는 시간을 말한다. 그러나 최 씨의 휴게쉼터는 생각보다 열악했다. 찬바람이 숭숭 살갗을 헤집고 들어오는 공간에 낡은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날 잠에서 깼더니 쥐가 옆에서 자고 있더라는 최 씨의 말이 더욱 실감 나게 다가왔다.


“L아파트는 휴게시간이 8시간 주어지는데,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경비원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휴게시간에도 야간 순찰을 돌아야 하니 급여를 낮추려는 고용주의 꼼수로 봐야지 않을까요?”
그런가 하면 근무 때는 화를 참느라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한다. 경비원 조장과 반장의 무리한 행동 때문이다.
“욕설은 다반사고, 자른다든가 재계약을 안 해준다는 엄포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니 치사하고 더럽죠. 직장에서 반말은 언어 폭행에 해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꾹 참아야 하는 게 경비원의 숙명이고요. 손쉽게 들어갔다, 손쉽게 잘리는 게 우리나라 경비원의 현실이잖습니까.”

  아파트 주민들과의 마찰도 적잖은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최 씨는 그중 세 가지를 꼽았다.
“경비 업무 중에서 제일 힘든 게 택배물 관리죠. 경비실이 비좁아 물건을 쌓아둘 장소도 없을뿐더러, 16개 택배 회사로부터 무더기로 택배물이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자칫 분실했다간 주민들과 두고두고 말썽거리가 되지 않겠어요.”
  입사 며칠 뒤였다. 화가 난 최 씨는 경비실 문을 아예 잠가 버렸다. 하루 칠팔십 개가 넘는 택배를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택배로 인해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인데 어떡하겠어요. 소장과 반장이 닦달하면 그만둘 각오도 돼 있었고요.”

  두 번째는 경비실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입주민이 이사를 갈 때다.
“그날은 아침부터 한바탕 전쟁을 치렀네요. 사다리차로 이삿짐을 내리려면 주차장 확보가 급하잖습니까. 그런데 글쎄, 주차된 차량 주인이 해외여행을 떠났지 뭡니까. 이사가 바쁜 세입자는 경비원한테 화풀이하느라 목에 핏대를 세우고요.”
  세 번째 어려움을 묻자 최 씨는 그 현장을 직접 보여주었다. 아파트 동(棟) 입구에 생활 쓰레기를 모아놓은 곳이었다.
종량제 봉투가 쌓여 있는 그곳에 검은 비닐봉투가 몇 개 보였다. 누군가 몰래 내다 버린 불법투기 봉투였다.
“입이 닳도록 이야기를 하는데도 매번 이런 일이 생겨 참 힘드네요. 아파트 화단에 버린 담배꽁초는 양반이고, 배달시켜 먹은 음식 찌꺼기를 봉투째 버린 철면피들이 한둘 아니란 말이죠.”


최 씨는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자신의 직업이 경비원인지 환경미화원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 도중 최 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통화를 마칠 무렵 “내일 봐요”라는 최 씨의 인사가 긴 여운을 남겼다. 오전 6시에 출근, 다음날 오전 6시에 퇴근하는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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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세는 추락하는 세대


“내가 근무하는 공오동(1005동)을 일컬어 ‘아오지 탄광’이라 부르죠. 경비원 한 명이 150세대를 맡고 있으니 머릿골이 좀 쑤시겠어요. 그런데도 이곳에서 4년째 버티고 있으니…….”


  최 씨는 그걸 ‘토박이 연줄’이라고 했다. 노원구에서 나고 자란 터라 150세대 중 30세대는 서로 아는 얼굴들이다.
삼 남매 맏이로 태어난 최 씨는 그의 나이 24세 때 아버지를 여읜 뒤 문방구를 차렸다. 가장의 소임이 버거웠지만 문방구는 호황을 누렸다. 서예, 글라이더, 전기회로 등 학교 측과 사전 계약한 학습용 채택물품 덕이었다. 하루 200만 원이 넘는 매상을 올린 적도 있었다.
“문방구 장사는 등교 시간 20분 전이 적기라 할 수 있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이었어요. 학생 수가 줄면서 문방구들도 문 닫기 바빴으니까요. 고물상, 음료도매상 등을 찾아다니며 재기를 노렸지만 자금 부족으로 어려운 실정이었고요.”

 

  이제 무엇을 하나? 한국에서 50세는 이미 추락하는 세대였다.
“문방구를 했던 분들이 경비원으로 들어가지 않겠어요. 구경삼아 아는 분을 찾아갔는데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경비직을 너무 가볍게 봤던 거죠.”


  새벽 4시에 기상해 도시락 세 개를 들고 출근한다는 최 씨가 급여명세서를 보여주었다. 야근 수당을 포함 최 씨의 실지급액은 136만 원이었다.
“경비직 급여가 최저시급으로 책정되어 아르바이트 수준이지요, 뭐. 이 월급으로는 서울에서 가장 노릇하기 힘들고요.”


 

  마땅한 쉼터가 없어 휴게시간에 의자에서 졸다, 그만 목이 뒤로 넘어가 사망한 경비원을 다음 날 아침 아파트 주민이 발견한 적 있다는 아픈 이야기를 들려준 뒤였다. 최 씨 입에서 불쑥 ‘대타’가 튀어나왔다.
“집안의 장손이다 보니 부모님 제사 등 대소사 챙길 일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근무 날 대타를 세우려 해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하루 대타 비용으로 들어가는 돈만 11만 원이란 말이죠. 지난해부터 명절과 여름휴가에 주던 떡값(5만 원)마저 끊겨 더욱 쓸쓸할 뿐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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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들이 ‘갑질’의 뜻이나 알겠소


  H아파트를 찾아가는 길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2014년 10월 입주민의 폭언에 시달리던 경비원이 분신한 데 이어, 최근 휴대전화 문자로 해고 통보를 하면서 언론에 다시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는데 내용은 별것 없었소. 2017년 1월 15일 18시부터 근로계약이 만료되었음을 알리는 일방적 통보였소. 노동조합 측과 아파트 대표자 측의 대화로 문제는 해결됐지만, 바로 이런 걸 두고 ‘인권 유린’이라 하지 않겠소. 구두나 문자로 해고 통보를 하면 무효란 말이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박상열 씨의 표정이 잔뜩 부어 있었다.
“H아파트는 경비원 업무에서 주차 관리가 90%를 차지해요. 조금 전에도 30대 중반의 남자와 한바탕했는데 다짜고짜 차를 빼달라며 고함을 치지 않겠소.”


  그나마 오늘은 초저녁에 일이 발생해 양호한 편이라고 했다. 한밤중에 주차 소동이 벌어지면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H아파트는 30년 전 건물이라 주차장 시설이 형편없소. 그런 데다 몇억씩 하는 외제 차를 타고 다녀 주차할 때는 두 다리가 후들거리기 일쑤고요. 한 동료가 주차 중에 사고를 내 1,200만 원을 배상한 적도 있단 말이지.”

  박 씨가 근무하는 125동은 입주민 70세대에 차량은 200여 대로, 조금 전 박 씨가 왜 주차 문제로 목청을 높였는지 그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억대 아파트에 억대 승용차를 굴리며 살아도 부럽다는 생각은 안 해봤소. 분리수거 하는 걸 보면 대충 답이 나온다 할까? 종량제봉투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갖춰져 있지 않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소. 입주민의 나이가 젊을수록 갑질 행패도 더 심하고요.”

  박 씨는 그걸 인격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름 인격을 갖춘 사람은 택배도 본인이 직접 찾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부류일수록 실망감만 커진다면서.
“경비원이 무슨 힘이 있겠소. 그저 머슴 같은 삶을 견디는 수밖에. 인생 마지막 직장이 경비원 아니오.”
지난해 가을이었다. 이틀 만에 나타난 아파트 주민이 박 씨를 향해 막말을 퍼부었다. 받아놓으라고 해서 받아놓은 택배가 문제였다.

 

 


“주문한 과일이 시들었다며 그 잘못을 나한테 뒤집어씌우지 않겠소. 택배 하나 제대로 간수 못 하는 주제에 경비실엔 왜 앉아 있느냐며 말이오.”


  박 씨도 물러서지 않았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뒤로 그만큼 시야가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경비원 문제는 용역에서부터 풀어야 해요. 용역 회사들이 수주를 받을 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단가를 후려쳐 덤핑 처리를 한단 말이지.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에게 돌아가고요. ‘파리 목숨’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소. 나도 해고 통보를 받아봐서 아는데 노조원이 아니었다면 입도 뻥긋 못한 채 당하고 말았을 거요. 아파트에 도둑이 들거나 화재 발생으로 해고를 시키겠다면 또 모를까, 주차 관리 문제로 해고시킨다는 게 말이 되오. 난 경비원이지 주차요원이 아니란 말이오.”


  처우가 먼저냐? 자존감이 먼저냐? 박 씨는 전자를 버렸다. 한때는 처우만 제대로 받는다면 그 어떤 모욕도 감내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실로 그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희박해 보였다.
“기대만큼 변하지 않는 게 무언 줄 아시오? 사람이오, 사람. 여기 사람들은 말부터가 곱지 않소.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말이오. 그런 저들이 ‘갑질’의 뜻이나 제대로 알겠소. 경비원에게 화부터 내고 모욕을 주는 것도 아마 당연한 일로 여길 것이오.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일 테니까 말이오.”


  박 씨의 이 무거운 진언(盡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아내는 J아파트 파출부로, 자신은 H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 잊을 만하면 재발하는 우리 사회의 갑질이, 완쾌가 불가능한 불치병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술은 끊었는데 담배는 더 늘었지 뭐요. 나이 지긋한 어른에게 이놈저놈 소리를 들으면 참겠는데, 자식 같은 세입자한테 막말을 들으면 죽고 싶지 뭐요.”


  경비실 벽시계가 저녁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3월부터 동을 옮겨 근무한다는 박 씨의 표정이 어두웠다. 각 동마다 껄끄러운 입주민이 있게 마련이듯 그들과의 대면이 갈수록 버겁다고 했다.
“아파트 동마다 주민들 성격이 보통 달라야 말이지요. 젊은 세입자일수록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고요. 초저녁에 대판 싸운 세입자도 나이로 보면 내 아들뻘인데, 경비원을 ‘을’로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멋대로 날뛸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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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님은 시인·르포작가로 르포집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만주의 아이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 등이 있으며, 최근 중국 연변 조선족 교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르포집 〈두만강 중학교〉, 여행 에세이 〈하얼빈 할빈 하르빈〉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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