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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세상 [2016.11] 동네북 치듯이 이리저리

글 박영희 사진 이강훈

 

'지방 병원들이 '간호사 품귀' 현상을 호소하고 있다. 간호사가 부족해 병상 규모를 줄여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간호사가 없어 병원 문을 닫을 판” “의료사고가 날까 걱정”이라고 아우성이다. 현재 면허를 가진 간호사는 35만여 명이지만, 활동 간호사는 절반이 채 안 되는 16만 명에 불과하다.' -조선일보 2016. 11. 1.

 


“중소병원 간호사가 부족한 것은 단순한 임신이나 출산, 육아 문제가 아니다. 간호사 쏠림현상이 가장 큰 문제다. 수도권 병원에 취업하기를 원하는 간호사들은 1년씩 대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지방 병원의 간호사 처우가 개선되지 않으면 간호사를 아무리 많이 육성해도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김옥수 간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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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으면 안 된다 뛰어야 한다


7시로 잡은 약속이 30분가량 늦춰졌다. 지난 6월 부산의 C병원에 입사한 한나영 씨는 처우 개선을 위한 파업 집회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며 애써 웃어 보였다.
  “요즘 제 마음이 병원을 그만둘까 말까, 왔다 갔다 해요. 간호학을 공부할 때만 해도 의료는 전문직에, 세계 어디를 가든 필요한 일일 거라 생각했는데 제 꿈이 너무 컸나 봐요. 다들 시간에 쫓겨 그런지 일을 자세히 안 가르쳐주더라고요. 이해가 잘 안 되니 행동이 더뎌지고, 나중엔 자신감마저 잃게 되고요.”

 


  외과 입원병동에 근무하는 나영 씨의 첫 번째 실수는 주사에서 비롯되었다. 환자의 팔에 놓아야 할 주사를 배액관(drain line)에 놓는 것을 본 고참 간호사가 뛰어온 것이다. 그날 나영 씨는 근무가 끝나도록 호된 질타를 받아야 했다.
  두 번째 실수는 A환자의 소변줄을 뺀다는 게 그만 B환자의 것을 빼고 말았다.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데이 근무(오전 7시~오후 3시)는 정신이 없어요. 실수해 욕먹더라도 다음 환자를 봐야 하니까요. 물론 환자들에게 너무 미안하죠. 결국 손해를 보는 건 죄 없는 환자들이잖아요.”

 


  입사 6개월째로 접어든다는 나영 씨의 얼굴이 몹시 지쳐 보였다. 데이 근무는 오전 7시부터 시작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새벽 4시경 잠에서 깨어 병원에 도착하면 5시 30분. 정상 근무시간까지 나영 씨는 환자들 수액, 알레르기 반응, 시술과 수술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챙겨야 한다.
  “고참 간호사의 한마디 한마디는 곧 법이나 다름없어요. 저처럼 신참 간호사는 걸으면 안 되고요. 환자가 찾을 때도, 고참 간호사들이 부를 때도 무조건 뛰어가야 해요. 새벽 5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놓아선 안 되는 구조죠. 출근 때 입고 나간 옷이 그새 땀으로 흠뻑 젖기 일쑤고요.”
  수술을 앞둔 환자나 수술을 마친 환자가 들어오는 날은 병동에 한바탕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혈압과 혈당 체크해야죠, 금식 알려야죠, 피검사 해야죠…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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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사는 의사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환자들 중에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를테면 영양제를 놓아달라고 했을 때다. 애석하게도 나영 씨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밖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을 때 나영 씨는 까닭 모를 비애감마저 들곤 한다.
  “영양제 하나 해결해주지 못하느냐고 제게 퍼붓던 환자들이 의사가 나타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아세요? 간호사한테 막무가내였던 환자들이 의사한테는 예, 예, 하며 입도 벙긋 못하는 거 있죠. 마치 동네북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루에도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 아니에요.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 아예 물을 안 마시고 근무할 때가 많단 말예요. 정 급하면 1인실에 입원 중인 환자 혈압 재러 갈 때 양해를 구한 뒤 그곳 화장실에서 해결하고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최근 들어 병원에 입원 환자가 줄었다고 했다. 나영 씨는 지금이 딱 좋다며 알듯 모를 듯 미소를 지었다.
  “식사를 마친 뒤 양치할 시간이 생겨 좋아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숨 가쁘게 달려왔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요. 입사 후 세 번째 힘들었던 사건은 환자가 수액이 잘 안 들어간다며 저를 향해 수액주머니를 내던진 일이었어요. 저로서는 방법이 없었어요. 먼저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해결책부터 찾아야 했으니까요.”
  수액 튜브가 꼬여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간호실로 돌아온 나영 씨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끝내 참지 못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환자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지만 의료계의 현실은 열정과 절망이, 긍정과 부정이 엇갈린 만남처럼 교차했다. 더욱이 데이·이브닝·나이트로 돌아가는 3교대 근무는 간호사끼리 서로 탓하고 미워하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두 달 전 간호사 한 명이 빠져나가 6명이 할 일을 5명이 하고 있는데요, 저라고 마음이 좋겠습니까. 중간에 간호사가 퇴사하면 그 짐을 남은 간호사들이 다 떠안아야 한단 말이죠. 빈자리가 언제쯤 채워질지, 그 또한 알 수 없는 일이고요.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잔뜩 예민해져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루 평균 10시간(데이)에서 12시간(나이트)을 근무하는 나영 씨는 자신의 적응 기간을 1년으로 잡았다. 1년만 무사히 잘 버티면 지금의 갈등과 어려움도 차츰 수그러들 거라는 생각에서다. 다른 하나는 환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점이다. 혈관 주사를 놓은 뒤 테이프라도 하나 더 붙여드렸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실행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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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신규'


2년차까지 멋?광경영학과를 졸업할 무렵 평생 직업을서 했는데 간호부장이 버젓이 대놓고 말하지 않겠어요. 쟤는 곧잘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고요. 졸업 후 대학병원을 지망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죠. 간호실 분위기가 너무 비인간적인 데다, 한순간도 사람 냄새가 느껴지지 않아 대학병원에는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400여 병상을 운영하는 종합병원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1년차 간호사가 시어머니처럼 보였다.
  “저만 빼고 하나가 된 분위기,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첫 출근부터 설 자리를 잃고 말았으니. 반말은 예사고, 호칭마저 '신규'로 부르지 않겠어요. 자신들은 김샘, 정샘 하면서 말이죠.”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호칭도 귀에 거슬렸다. 엄연한 이름을 놔두고 왜 남의 집 개처럼 부르는 것인지… 당분간 너는 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강한 메시지처럼 들렸다.
  누구 하나 친절히 대해주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신고식을 치른 선미 씨는 이를 악물었다. 살아남아야 했고, 살아남고 싶었다. 3개월로 예정된 수습기간까지만이라도.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던가, 며느리 간호사는 좋지만 딸이 간호사인 건 싫다는. 세상은 여전히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였다.

 


  “신참은 출근도 고참 간호사보다 1시간 빠르더라고요. 오전 6시까지 출근해 병동 물품 체크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뜨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요. 밥을 먹었는지 어땠는지. 오늘은 제발 혼나지 말자, 고참 간호사한테 막말 테러 당하지 말자, '그러다 너 사람 죽인다'는 소리 그만 듣자… 입사하고 1년을 그렇게 보낸 것 같아요. 이걸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간호사를 여럿 보았고요.”

 


  미래가 있는 직업일 거라고 찾아왔으나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선미 씨에게 1년은 영문도 모른 채 왕따만 당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1년이 지났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간호사로 살아남으려면 고참 간호사들에게 아부쟁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참 간호사들은 1년차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도 달갑지 않게 여겼다. 모든 게 군대식이었다.

 


  선미 씨도 신참 때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적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모두 혈관 주사를 놓다 실패한 경우였다. 특히 환자가 아기일 경우 긴장과 두려움은 두 배로 늘어났다.
  “요즘도 문득문득 생각하곤 해요. 주사가 만약 선물이 될 수 있다면 그 환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프지 않은 주사를 놔드리고 싶다는. 제가 서툴고 부족해서 생긴 아픔이잖아요.”

 


  반대로 선미 씨는 알코올을 섭취한 환자를 보면 휴대전화기부터 꺼낸다. 녹취하기 위해서다. 알코올을 섭취한 환자가 간호사를 협박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데, 3년 전 병실에서 알코올을 섭취한 환자와 맞닥뜨린 선미 씨는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했다. 처음이라서 잘 모르기도 했지만, 설마 환자가 간호사에게 폭력을 휘두를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바로 그 일을 겪은 뒤였다. 담당의를 찾아갔지만 의사는 고개만 내저을 뿐이었다. 의사는 환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면서.
  “처음엔 답답하더니 나중엔 화가 나지 뭐예요. 병실 옮기는 것도 안 된다, 퇴원 조치도 어렵다. 그럼 간호사는 뭐죠? 의사 말대로라면 간호사는 술 취한 환자가 협박하고 폭력을 가하더라도 휴대전화로 녹취나 하며 상황을 견디라는 뜻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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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길게 쉬어본 3일



3교대 근무를 하는 선미 씨는 야근수당을 포함해 월 240만 원의 급여를 받고 있다. 그나마 자신은 다른 간호사들에 비해 나은 편이라고 했다.
  “한 달에 나이트 근무를 6일 정도 하는데요, 야근수당이 없다면 180만 원이 될까 말까 해요. 그 돈으로 병원 가까운 데서 원룸 생활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월급의 얼마를 모을 수 있을까요? 물론 부럽긴 하죠. 이브닝과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나면 정말 피곤하거든요. 특히 겨울철에는 병원 가까운 데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요.”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를 다녀온 적 있던가? 주말과 국경일을 마음 편히 누려본 적 있던가? 간호사가 된 뒤로 명절에 대한 기억마저 가물가물하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가장 길게 쉬어본 게 3일이었네요. 그것도 연차휴가를 사용해서 말이죠. 연애요? 글쎄요, 사귀는 남자가 있긴 한데 너무너무 미안하죠. 간호사라는 직업이 달력의 빨간 숫자와 인연이 없잖아요. 여름휴가는 꿈조차 꿀 수 없고요. 대학 동기들 만나면 장난 삼아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나는 새벽에 출근하고, 오후에 출근하고, 밤에도 출근하는 여자여서 연애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하나 더 있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말하는 점심시간이다. 모처럼 만에 얼굴을 보는 친구들의 수다를 듣고 있노라면 선미 씨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갖는 커피 한 잔의 여유. 이 또한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결혼도 하고 싶고 출산도 하고 싶지만 왠지 자신이 없네요. 가정을 꾸린 간호사를 보면 겁부터 나는 거 있죠. 신혼의 단꿈은커녕 출산마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같은 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 두 명이 4개월 간격으로 임신한 적 있어요. 한 간호사만 임신했을 땐 잘 몰랐는데 두 명으로 늘어난 뒤에는 간호실에 찬바람이 불지 않겠어요. 분위기도 하루가 다르게 침체되고요. 나중에 다른 간호사가 유산을 하면서 예전의 분위기로 돌아가긴 했지만 저한테는 너무도 충격적이었죠. 간호사는 임신을 해도 걱정, 못 해도 걱정이었으니까요. 축복받아야 할 결혼과 임신이 병원 측에서 보면 결코 반가운 선물이 아니었던 겁니다.”

 


  지방 병원에서 간호사 1명을 채용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으로 들렸다. 설령 그렇더라도 반문의 여지는 남았다. 선미 씨도 그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간호사들의 결혼과 임신에 대해 다시 입을 열었다. 
  “지방 병원에서 중견 간호사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병원은 생명을 다루는 곳이잖아요. 병원이 먼저 변화를 보이지 않는 이상 간호사 부족 현상은 두고두고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고요. 다른 것도 아니고, 임신이 어떻게 정해진 숫자처럼 순번으로 정해질 수 있죠? 임신한 간호사들이 유산하는 것을 지켜볼 때면 얼마나 무서운데요. 벌써 한두 번 목격한 게 아니란 말이에요. 출산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에게 3교대 근무는 그만큼 무섭고. 두렵다는 생각마저 들고물아홉 살이 된다는 선미 씨는  전문 트레이너를 통해 맞춤형 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 여름부터 갑자기 체력이 떨어진 탓이다??이오리듬이 깨진 것 같아요. 돈보다는 건강이 우선이라 있지 않을까요?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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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님은 시인·르포작가로 르포집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만주의 아이들> 등이 있으며, 최근 중국 연변 조선족 교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르포집 <두만강 중학교> 여행에세이 <하얼빈 할빈 하르빈>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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