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6.08] 철갑의 괴수

글 정도경 그림 조승연

 

철갑의 괴수



옛날 옛적 조그만 강아지가 살았습니다. 강아지는 어느 날 숲 속 깊숙이 들어갔다가 철갑을 두른 괴수와 마주쳤습니다. 괴수는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강아지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약하고 나는 강하다. 얌전히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너를 해치겠다.”

  강아지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강아지는 할 수 없이 괴수를 따라갔습니다.

  괴수는 강아지에게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먹을 것을 잡아오라고 시켰습니다. 잡아온 사냥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괴수는 강아지를 때렸습니다. 그러면서 괴수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약하고 나는 강하다. 그러니 나는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너는 내 명령에 따라야 한다.”

  강아지는 매를 맞을 때마다 언젠가 크게 자라 강해져서 괴수처럼 뭐든지 마음대로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강아지는 큰 개가 되었고 괴수는 나이 들어 약해졌습니다. 괴수가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큰 개는 괴수를 물어뜯고 철갑을 빼앗았습니다. 괴수가 저항하려 했지만 큰 개는 괴수가 했듯이 물고 때리며 짖었습니다.

  “이제 너는 약하고 내가 강하다. 그러니 나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괴수를 물어 죽이고 철갑을 몸에 두른 큰 개는 괴수의 집을 떠났습니다. 큰 개는 숲으로 나와서 아기 새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큰 개는 그중 작고 약해 보이는 한 아기 새에게 다가가서 무섭게 위협했습니다.

  “너는 약하고 나는 강하다. 얌전히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너를 해치겠다.”

  아기 새는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여러 동물이 모여들었습니다. 그중 현명한 까치가 말했습니다.

  “약하건 강하건 이 세상에선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한다. 서로 해치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모두 다 망할 뿐이다. 우리는 너에게 보복하지 않을 테니 너도 더 이상 난동 부리지 말고 네 갈 길을 가라.”

  큰 개는 자기보다 작고 약해 보이는 까치를 비웃었습니다.

  “너는 약하고 나는 강하다.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를 물어 죽이겠다.”

  그러자 이번에는 크고 사나운 곰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거대한 곰이 뒷발로 일어서자 철갑을 두른 개는 창백해졌습니다. 곰은 하늘을 가릴 듯이 크고 힘세고 사나웠습니다. 곰이 앞발로 내리치자 개가 그토록 믿었던 철갑은 조각조각 갈라졌습니다. 개는 괴수가 아니라 그저 한 마리 개가 되었습니다.

  “힘없는 아기 새를 해치려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거대한 곰이 분개하며 외쳤습니다. 개는 어리둥절해졌습니다.

  “너는 힘이 센데 어째서 약한 자의 편을 들지? 힘센 자는 본래 약한 자를 해칠 권리가 있다. 약한 자는 해를 입고 싶지 않으면 힘센 자의 기분을 맞춰주고 자비를 빌어야 한다.”

  곰은 더욱 분개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너보다 힘이 세니까 나는 너에게 벌을 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곰은 개를 때려서 내쫓았습니다. 개는 깽깽 울면서 도망쳤습니다.

  “내가 강아지였을 때는 더 심한 일도 당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는데! 왜 저 힘센 곰은 약한 아기 새를 돕는 거지? 이건 잘못됐어! 억울하다!”

  곰은 존중과 협동, 배려는 여러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본 소양이라는 사실을 개에게 제대로 설명해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조금 후회했습니다.

  그러자 현명한 까치가 말했습니다.

  “저 개의 세상 보는 눈은 이미 비뚤어져 있다. 자기보다 힘센 곰이 말했다면 듣는 척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보지 않을 때는 또 자기보다 약한 자를 괴롭혔을 거야.”

  동물들은 한숨을 쉬고 모두 평화롭게 공존하는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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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님은 소설가로 중편 <호(狐)>로 제3회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문이 열렸다> <죽은자의 꿈>과 단편집 <왕의 창녀> <씨앗>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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