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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6.06] 당신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김민아

 

김두식 교수와 시선 사이 감독들
 
왼쪽부터 김두식 교수, 신연식 감독, 이광국 감독, 최익환 감독


출근길 지하철 안은 입술을 앙다문 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그득하다. 모두들 별일 없이 사는 거냐고 묻고 싶지만 언감생심. 영화 <시선 사이>는 머뭇거리는 그 마음을 다독여 대신 안부를 전해주는 영상 편지다. 최익환 감독의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가 까르르 웃는 소녀들의 빨간 양념 잔뜩 묻은 편지라면, 신연식 감독의 <과대망상자(들)>은 한 청년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바삐 넘나들며 써내려간 의심 가득한 편지다. 이광국 감독은 편지도 너무 직접적이라는 듯 <소주와 아이스크림>을 통해 삶에 지친 여인의 그늘진 마음을 소주병 안에 쪽지로 담아왔다. 작품별 깊은 속내는 영화 속 인권을 재미나게 풀어주었던 <불편해도 괜찮아>의 김두식 교수가 감독들을 직접 만나 들었다.


  김두식: 감독님 세 분께 공통 질문을 드립니다. 인권위로부터 인권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고는 어떠셨나요?


  최익환: 제안받을 당시 저는 영화아카데미 임기를 마치고 대학에 적을 두게 된 때였어요.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기 좋은 환경이었는데 마침 제안이 와서 반가웠어요.


  신연식: 인권위가 제작하는 영화는 영화계 사람들은 다 아는 오래된 프로젝트예요. '언젠가 나도 할 수 있겠구나.' 막연하게 생각은 했습니다. 감독들은 시기적으로 제작 사이사이에 '마(공백)'가 낄 때가 있어요. 그 타이밍에 연출 제안이 들어와서 저도 반가웠어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영장 나왔다. 이제 훈련소 가야 하는구나.” 정도랄까.(일동 웃음)


  이광국: 두 번째 장편 <꿈보다 해몽> 끝나고 다음 작업으로 무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제의가 왔어요. 인권영화 프로젝트는 평소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감독님이 다수 참여하셨기 때문에 저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서 좋았습니다.


  김두식: 세 영화 모두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마다 어떤 판타지가 느껴집니다. 영화적으로는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환상적 리얼리즘' 이랄까요. 


  신연식: 인권위 설립 초기에는 이른바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라는 분이 꽤 많이 찾아와 상담을 받고 갔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모호한 경계로 약간은 비겁하게 다뤄본 거죠. 정색하고 다루다 잘못하면 다음 영화를 못 찍을 수도 있으니까요.(웃음)


  이광국: 감독들은 영화 찍을 때 '아, 이 작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늘 생각해요. 세상의 모든 감독의 꿈은 그래서 하나이지요. 다음 작품을 찍고 싶다!(일동 웃음)



┃  청소년, 안과 밖 '사이'에 낀 존재


  김두식: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줄여서 '우떡권'이라고 하던데요, 왜 떡볶이를 소재로 삼았나요?


  최익환: 떡볶이는 인권과 가장 멀리 있는 이야기 같지만, 상상해봤어요. 닫힌 교문 안에 있는 그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 뭘까. 만약 창살 같은 교문 사이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가 보이기는 하는데 냄새만 맡고 먹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사실 졸업하고 나면 학생 때만큼 간절히 먹고 싶진 않겠지만 그때 못 먹으니까 간절히 먹고 싶은 거 잖아요. 누구라도 그렇죠. 지금 누리고 싶은 욕망이 지연되는 것, 그걸 그리고 싶었어요.


 

 

최익환 감독

 

  김두식 : 왜 사투리를 쓰는 친구를 주인공으로 삼으셨나요?


  최익환 : 전학 가면 한동안은 친구가 없잖아요. 모든 게 낯설고 주변인이 되죠. 내부에 진입하고 싶지만 쉽지 않고요. 선생님들이 이 아이를 부를 때도 이름이 아니라 '사투리' 라고 부르잖아요.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그런 이질감을 사투리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김두식: 대학은 그렇지 않은데 이 영화를 보면서 중고등학교는 쉬는 시간도 학교의 통제 아래 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어요.


  최익환: 중고등학교는 담이 있고 교문 밖을 나가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죠. 제가 고등학생일 때는 그걸 의심하거나 질문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지수는 “이게 우리를 위한 거냐. 학교를 위한 거냐.”고 질문하죠. 지수는 개인의 욕망을 따져 묻는데 선생님은 “넌 애교심도 없냐”라며 조직의 논리를 대변하는 거예요.


  김두식: 어른들과 사회는 목표를 이루기 전에는 '좀비'라고 말하고, 아이들은 목표를 이루기 전에도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셈이군요. 하지만 선생님들이 이 이야기를 전달할 때(물론 사회 체계를 유지시키는 방식일 테지만) 발생하는 무시무시한 힘과 진실이 있지 않나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속된 진실과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각 사이의 간극이랄까요.


  최익환: 저런. 영화가 그런 진실로 읽혔다면 영화적으로는 실패한 거 같은데요.(웃음) 말씀대로 선생님도 살아가는데 통용될 수밖에 없는 진실을 말한 것뿐이죠. 다만 존재하는 룰과 그것이 누구를 위한 룰인지, 그리고 안과 밖 '사이'에 끼어 있는 아이들의 상태를 말하고 싶었어요.



┃  젖은 낙엽처럼 살 것인가, 민들레 홀씨가 될 것인가


  김두식: 신연식 감독님, 제목을 피해망상자가 아닌 과대망상자(들)로 정한 까닭은 뭔가요?


  신연식: 심리 상태의 원인은 피해망상일 수 있지만 전체 프레임은 과대망상이에요. 자신을 사회와 격리해 골방이라는 좁은 세상에 가두고는 그 안에서 TV를 보며 전체 세상을 조망하는 거죠. 한정된 정보로 세계 전체의 메커니즘을 관찰하고 있다고 여기면서요.


  김두식: 그런데 이상한 건 말이죠, 청년은 눈에 띄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그가 사는 집이 허름하고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전기전자 수리점이라 그게 더 잘 눈에 띄어요. 뭐랄까 바로 신고가 들어갈 거 같은 집이거든요(일동 웃음). 영화 속 노숙인의 비중이 낮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노숙인을 '사회적 낙오자'로 인식하기도 하는데요.



신연식 감독


  신연식: 그 사람들이 왜 낙오자가 되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각론이 아닌 아주 포괄적인 생각이에요. 인간의 권위가 곧 인간의 삶인데 우리는 점점 더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방식을 선택할 권리에서 배제되는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개별적인 욕망을 다양하게 발산할 방식이 없진 않았거든요. 예를 들면 옛날에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알았죠. 단지 생산 대 소비 방식이 아니라 소통을 했어요. 시골에 기차역이 들어오면 걷던 사람, 자전거 타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모두 기차에 오르고 철도 회사는 분기별 매출액을 신경 써야 하는 시점이 오죠. 삶의 패턴을 영위하는 방식으로서의 개인의 욕망은 사라지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설계해놓은 방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소비 단위의 하나로 전락해요. 개인의 자각이 배제된 채 살아가는 거죠.


  김두식: 거대한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군요.


  신연식: 인간의 하루는 두 종류로 나뉘는 거 같아요. 서비스를 행하는 순간과 서비스를 받는 순간으로요. 영화도 이제는 서비스의 대상이에요. 좀 거칠게 말하자면 사기 아니면 포장이 아닐까 싶게, 이런 서비스를 해야 하는가 회의가 들 때가 있어요. 저는 아직도 왜 영화를 만드느냐고 누가 물어보면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말해요. 그럼 무슨 이상주의자의 발언인가 하고 비웃는 사람도 있어요. 욕망과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는 세상에 멀쩡하게 살고 있는 우리가 영화 속 사람들보다 더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요. <과대망상자(들)>은 그런 질문을 담고 있어요.


  김두식: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늘 말하죠. '젖은 낙엽'처럼 살아야 한다고. 제 삶 자체가 젖은 낙엽이라 그런지 참 마음에 와 닿는 대사예요.(일동 웃음)


  신연식: 누구나 조직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새 젖은 낙엽이 돼 있어요. 낙엽이 될까, 민들레 홀씨가 될 것인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죠.


  김두식: 저도 매학기 이번 연도에 학교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합니다.(웃음) 인상적인 배우들이 등장하는데요.


  신연식: 김동완 씨는 친한 동네 주민이에요. 오광록 선배는 이전에 함께 작업한 적이 있고요. 앞뒤 생각 없이 말하는 허술한 박사님 역인데 잘 어울리겠다 싶었어요.


  김두식: '왕따'와 '갑'을 영어로 풀이하는 기발한 대사들이 등장하지만 정신없는 의사소통 속에서 실상은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신연식: 어느 조직이나 회의 들어가면 알맹이 없잖아요.(웃음)


  김두식: 내 집, 빈곤, 타인의 시선, 이런 키워드가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신연식: 영화 만들 당시가 2015년 초였는데 그런 주제가 주로 다루어졌어요. 보통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이슈가 제기될 때 쏟아지는 분석과 대책들을 보면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바뀌어 있기도 해요. 알 수 없는 세상 같아요.



┃  어떤 현상을 같이 보고, 다른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김두식: 이제 <소주와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 영화의 첫 구상은 무엇이었나요?


  이광국: 영화는 이야기이고, 이야기 학(學)이라 저는 구조적인 접근에 호기심이 많아요. 똑같은 이야기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여자 주인공이 하루 여정을 통해 이상한 체험을 하고 마지막에 그 비슷한 체험을 가족 누군가가 겪는다면 어떨까 상상해봤어요. 유령 같은 존재를 통해 자기의 미래를 상정해보는 거죠. 결국 자기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김두식: 주인공의 직업을 보험설계사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이광국: 친한 형이 보험 세일즈를 하는데 보험을 가입하고 나니 연락이 안 와요.(웃음) 그 전에는 주기적으로 연락하던 형이었는데 말이죠. 감정노동을 하는 주인공이 어느 날 독한 말을 듣고 여정을 시작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김두식: “먹고사는 거 다 힘들어, 너만 힘든 거 아냐. 너 이 일 하기 전에도 나한테 자주 연락하고 그랬어?” 이 대사가 비수처럼 꽂히더군요.



이광국 감독


  이광국: 보험은 판매하는 사람이 그게 옳다고 합리화해야 할 수 있는 일인 거 같아요.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수익을 얻으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김두식: 이 영화는 고독사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요. 영화를 통해 무얼 이야기하고 싶었나요.


  이광국: 저는 영화가 주는 해결책은 가짜이거나 위험이 크다고 느끼는 사람이에요. 어떤 현상들을 같이 보고, 다른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정도가 영화가 가진 힘이 아닐까요. 혼자 살면 어떨까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에게도 영화 속 일이 생길 수 있겠구나, 특정한 사람들의 이야기 아니고 내가 겪을 수 있는 상황이구나, 이 작품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 자주 했어요. 가족은 왜 해체될까 의문이지만 솔직히 우리는 내 옆 사람에게도 관심 없잖아요.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 라는 영화 속 대사가 그래서 중요해요. 서로 바라봐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김두식: 가족이라고 하지만 실제 남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야박할까 싶은 장면도 있습니다.


  이광국: 어느 날 제 동생이 그러더군요. 자신도 사생활이 있는데 너무 당연하다는 듯 부탁하지 말라고요. 그때 느꼈죠. 가족이라면 당연히 해줘야 한다고 짐 지우는 게 있구나. 그러니 부탁을 못 들어주게 되면 '가족인데 왜 못 들어주지' 애증의 감정도 일어나잖아요 . 참 어려운 문제인 거 같아요.


  김두식: 이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는 점 가상이 아닌 진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보내고 요새 어떻게 지내느냐고 한마디라도 안부를 묻는다면 좋겠어요.


  최익환: 지수를 통해서 용감한 사람을 보고 싶었나 봐요. 망하더라도 한 번은 자기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이요. 이 영화는 그런 지수(사람들)를 향한 러브레터에요. 금기에 대해 질문했으면 좋겠어요.


  신연식: 자각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김두식: 세 분 감독님 고맙습니다.



 


김민아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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