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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알리다 [2024.09~10] #4 어느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의 손편지에서 배운다

 

어느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의 손편지에서 배운다

 

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에 경북 문경초등학교에서 보내온 우편물이 도착했다. 초등학교에서 보내온 봉투는 낯설었다. 봉투 안에는 문경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손글씨로 꾹꾹 눌러쓴 민원 신청서와 인권위 응원 문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인터넷에서 문경초등학교를 찾아보니 1912년 설립되어 올해로 개교 112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학교였다. 문경초등학교에서 무슨 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게다가 인권상담조정센터가 아닌 홍보협력과에 민원 신청서를 보냈을까? 본 편집자는 이 봉투가 왜 도착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국가인권위원회의 업무를 주제로 학교에서 발표해야 한다며 수많은 질문을 던진 초등학교 5학년 재학생이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사회과목 교과서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등장하는데, 이 기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고 발표하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문경초등학교 학생들은 이 단원을 배우면서 모둠 토의를 통해 주요 인권침해 사례와 해결 방안을 요약하여 인권위에 민원 형식으로 제출했다. 민원서에는 다양한 인권침해 상황이 등장했다. 학교 급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 하는 상황, 교복만 입어야 하는 상황, 임신·출산을 이유로 퇴사를 강요당하는 상황 등이었다. 그 중 하나를 지면에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의 손편지에서 배운다

 

이 글을 보며 ‘아직’이라는 두 글자가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대하는 권리 수준은 향상되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아직’ 부족한 현실이 초등학생에게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게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다. 임신과 출산이 퇴사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당연한 사회적 약속이자 규범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것이 지켜지지 않아서 임산부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가임기 여성은 임신을 꺼리고 있다. 이것은 편집자의 의견이 아니라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민원 내용이다. 더 놀라운 것은, 여기에 적힌 정책 제안이다. 임신에 따른 퇴사 문제를 논의한 모둠에서는 강제적인 벌금 부과와 홍보 캠페인 전개를 제안했는데, 두 가지 모두 나름 합리적인 대안이었다. 이익이 우선인 기업에게 금전적인 손해를 끼치고, 시민들이 감시자로 참여하는 것은 제도와 인식을 함께 개선한다는 점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로 보인다.

 

다만 문경초등학교 학생들의 서신은 교육 목적 민원이므로 우리 위원회는 정식 민원으로 접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원서에 적힌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의 의견은 학교 인권교육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듯하다.

 

 

글 | 조홍래(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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