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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알리다 [2024.09~10] #2 인권으로부터의 사색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모든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표방하는 구호이다. 선진 인권 사회를 향한 이상이 담긴 글귀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진단이기도 하다. 인권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이고 천부적인 권리이지만, 그만큼 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인권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주제가 또 있을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국가인권위원회와 EBS가 공동 기획한 〈인권사색〉은 네 가지 주제를 통해 인권을 조명한다. 남종영 기후변화와 동물연구소장, 은유 작가, 조기현 작가,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실장이 연단에 올랐다. 강연은 오늘날 인권 시민으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인권에 대한 다양하고 폭넓은 시선을 제공한다. 시의성 높은 네 가지 주제를 통해 인권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 시대의 인권과 동물권
남종영 기후변화와 동물연구소장

 

남종영 기후변화와 동물연구소장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22년 기후 위기를 인권 문제로 공식 선언했다. 기후 위기는 인간의 생명, 신체, 건강 등 모든 기본권을 위협하며, 그중에서도 취약 계층에게 큰 피해를 유발한다. 남종영 소장은 우리 사회가 기후 위기를 인권 문제로 인식하면서도 기후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 동물을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후 위기의 연원은 자연을 착취하면서 끊임없이 생산과 축적을 거듭하는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구를 집어삼키는 이 식인적인 체제 하에서 자연과 동물은 인간의 이윤 창출을 위한 주변부로 전락한다. 즉, 자연과 생명을 지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행태는 결국 인류에게도 파멸을 가져올 것이 명백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뉴질랜드의 ‘왕거누이강 법안’과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생태 법인 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는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돌고래 무리가 종말을 앞둔 지구를 떠나며 인류에게 남긴 작별 인사다. 남종명 소장은 우리가 떠나보낸 돌고래들도 같은 인사를 전하며 바다로 돌아갔을 것 같다고 말한다. 앞으로 더 많은 돌고래가 자유를 되찾아, 이 인사가 더욱 자주 인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미등록 이주 아동
은유 작가

 

은유 작가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라는 표현은 ‘미등록 이주 아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은유 작가는 부모가 체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존재를 부정당하거나 체류 자격 문제로 한국을 떠나야 하는 미등록 이주 아동의 일화를 소개한다. 소개된 사례 중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바탕으로 체류가 허가된 희소식도 있지만, 한편으로 인권위의 도움조차 받을 길이 없는 사각지대에서 무수한 아동이 속수무책으로 추방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뒤따랐다. ‘가장 어려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국가 인권을 측정하는 지표’라는 말처럼 한 사람의 존재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즉, 미등록 이주 아동을 비롯한 소수자를 향한 존중은 혐오와 차별이 없는 세상을 향하는 이정표이다. 다행히도,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주 아동 김민혁 군의 사례는 인권 친화 사회를 향한 전망이 밝다는 희망을 심어 준다.

 

 

영 케어러와 우리 모두의 인권
조기현 작가

 

조기현 작가

 

장애, 질병, 약물 중독 등을 겪는 가족을 돌보는 10~20대 청년을 ‘영 케어러(가족 돌봄 청년)’라고 한다. 영 케어러는 돌봄을 전담하며 또래와 다른 생활 환경에 놓이는 만큼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고 우울감 또한 상당하다고 한다. 조기현 작가는 어느 날 아버지가 치매 증상을 보이면서 ‘아빠의 아빠’가 됐다. 하지만 돌봄으로 발생한 고립을 누구의 탓으로 전가하지 않고 복지 서비스를 통해 해결해 나갔다. 그는 돌봄을 민폐나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필요할 때 의존할 수 있는 권리로 명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 케어러를 비롯한 가족 돌봄은 여성의 희생을 요구하는 젠더 불평등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존의 가족 돌봄은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유지된 ‘신화’이며 여성을 착취하는 가부장제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가족에 의존하지 않는 공공 돌봄 체계를 마련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돌봄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람은 모두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태어나 다시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늙는다. 모두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건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책무이다.

 

 

기업은 왜, 지금 인권에 주목하는가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실장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실장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만약 당신이 이를 단순히 '이윤 창출'로만 정의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시각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요구가 점차 강화되면서,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 구조) 경영이 부인할 수 없는 글로벌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선진국을 중심으로 ESG 열풍이 불고 있는 와중에도, 세계 곳곳에서 아동 노동과 강제 노동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기업 관리의 책임을 정부나 국제기구에만 한정하지 않고, 개인 차원에서 ‘소비자 주권’을 행사하여 기업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기업의 인권 의식을 새로운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대화형 인공지능이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등을 차별하거나, 인공지능을 활용한 채용 과정에서 백인 남성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타나는 사례는, 기업 경영에 인권을 반영 해야 할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에 다시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산업혁명 초기, 장시간 노동과 아동 노동의 온상이자 환경 파괴의 주범이던 기업 활동이 이제는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는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인류 문명과 역사 진보의 중요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한계를 직시하며, ESG 경영을 비롯한 사회적 책무를 기업들이 다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 | 이시준(국가인권위원회 별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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