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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콩떡 인권위 [2024.09~10]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지는 것

 

국제인권과 백가윤 사무관

 

국제연대를 위해 ‘인권 이어달리기’를 계속하고 있는 백가윤 사무관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녀만의 열정과 신념이 담긴 인생 이야기를 지면의 한계로 모두 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필자도 「국가인권위원회 20년사」를 집어 들었습니다. 인권위의 시작부터 켜켜이 쌓여온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야말로 인권위를 지탱하는 힘이 아니었을까요. 힘든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되새겨봅니다.

 

백가윤 사무관

 

Q. 다양한 인권업무 경험을 거쳐서 인권위에 오셨다고 들었어요.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유엔에 가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영국에서 인권학을 공부했고, 방콕에 있는 아시아 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죠. 3년 반 정도 현장에서 국제인권메커니즘을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런데 아시아 지역 단체에서 3년 반쯤 일하다보니 제가 누군가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다리 역할만 하고 있는 거예요. 유엔 특별보고관이 오면 컨퍼런스를 하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해서 미팅도 했지만, 정작 제가 집회를 해본 적이 없었죠. 그때 많은 한계를 느끼고 한국에 들어와서 현장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Q. 현장 활동가로 일하셨던 때는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사실 활동가가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활동가로 일한 것이 자랑스러워요.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하거든요. 활동가만큼 한정된 자원으로 이슈 극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전략적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없을 거예요. 일하면서도 매번 자유롭게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는 게 정말 좋았어요. 그러던 중 참여연대에서 제주도 강정해군기지 문제를 담당하게 됐는데요. 125개 단체가 모인 그룹의 간사 역할을 맡아 환경, 평화, 인권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게 되었죠.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전경들을 보았어요.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모여서 함께 목소리를 모아내는 장면도 보았어요. 그 현장에서 내가 혼자 싸우고 있는 게 아니구나,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구나 하는 점을 느꼈죠.

 

Q. 인권위에서 국제인권 업무를 시작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사자들이 갖고 있는 분노와 억울함을 풀어내서 대변하는 것이 활동가와 인권옹호자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제 역할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안을 유엔인권메커니즘을 이용해서 국제사회에 가져가는 것이고요. 그런데 단체가 할 수 있는 것과 인권위가 할 수 있는 게 다르잖아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도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국제회의 안에서도 인권위만이 담당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Q. 인권 영역에서 공무원과 활동가로서의 역할이 다르다고 느낄 때도 많으실 것 같아요.
2015년 유엔 자유권 규약 국가보고서 심의 때 NGO대표단으로 참여했어요. 그때가 참 엄혹한 시기였거든요. 국제사회에 한국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는 위원들까지 붙잡고 복도에서 브리핑을 했어요. 정말 열심이었던 기억이 나요. 그 결과 유엔 자유권위원회 위원들이 발음도 어려운 한국인 활동가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정부의 답변을 요구했을 때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어요. 올해 고문방지협약 국가보고서 심의 과정에서, 구금·보호 시설수용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에도 NGO 활동가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던 덕분인데요.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 공무원 4년차가 된 나에게 저런 마음과 열정이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만은 정말 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Q. 항상 파이팅 넘치게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고, 추진하시는 모습을 보면, 인권에 대한 열정이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 같아요.
인권 업무를 하다 보면 매 순간 저를 가슴 뛰게 하는 일들이 생겨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계획을 하다 보면 신이 나서 심장이 뛰거든요. 예전에 저희 아버지께서 ‘무슨 일을 하던지 너만 행복하면 다 괜찮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씀은 평생 제 가슴 속 화두로 가져가고 있어요. 짧은 인생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Q. 국제인권 분야에서 인권위 업무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인권위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이기 때문에 직원을 떠나 한 사람의 인권옹호자로서,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저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에요. 그래서 저는 국제인권 연대와 관련해서 동료들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아낌없이 주고 싶어요. 그게 내부적으로 누구의 성과이든, 결국 인권위의 성과가 되는 거니까요. 특히 국제인권연대에서는 장기적인 비전이 가장 중요해요. 매일 얼굴 보는 사람과 네트워크 빌딩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연대하고 성과를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요. 조직이 이런 국제인권과만의 특성을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물론 조직운영 관점에서 현실적인 한계가 있겠지만, 그동안 국제사회의 권고가 있기까지 국제연대를 위한 무수한 노력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Q. 인권위가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는 조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인권위는 인권 활동가들이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하며, 추위에 눈을 맞고 목숨 걸고 만든 조직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반적인 정부부처와 달리 지난한 싸움 끝에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으로 만들어진 국가기관이라는 무게감을 느껴야 해요. 「국가인권위원회 20년사」에 인권위 설립 이후 진정 접수 첫날 유시춘 상임위원이 한 말이 나와요. “앞으로 인권위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못 배우고 가난하고 그래서 주류로부터 소외된, 낮은 곳에 거주하는 이들일 것임이 분명하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처지가 못 되는 이들과 부당한 차별을 어디에 기대 해결할 일 없는 이들이 올 것이다. 인권위는 이들의 높이에 맞추어 낮은 데서 살아야 한다. 권력이 있다면 이들을 위해서 써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이 말을 기억해야 해요.

 

Q. 앞으로도 인권운동을 계속 할 수 있는 바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를 움직이게 하는 힘, 나태해진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일으키는 힘은 결국 피해 당사자들과 동료들이에요. 사실 인권운동은 이기는 결과를 보기가 정말 어렵잖아요. 계속 지는 싸움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 있으니 나는 외롭지 않다고 생각해요. 인권 운동은 이어달리기 같아요. 제가 뛰다가 지치면 그 뒤에는 항상 제 바통을 받아줄 동료가 있고, 동료가 달리는 동안 나는 숨을 좀 고르다가, 다시금 내가 그의 바통을 이어 달리는 거죠. 이게 저의 가장 든든한 뒷배예요. 그러면서 나는 과연 다른 동료의 바통을 받아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나, 기꺼이 나의 바통을 받아줄 동료가 옆에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 인권운동을 계속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아요.

 

 

진행 | 박정현(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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