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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브릿지 [2024.09~10] 역사에 열린, 시민에 열린, 평화에 열린 군대를 만들기 위하여

 

“오늘 이 곳에 여러분들과 함께 올 수 있어서 참 좋았고요”

 

재작년 한국전쟁 다크투어 기행지였던 충남 청주의 마지막 장소에서 기행 소감을 나누는 자리, 함께 활동하는 신재욱 활동가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목이 메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난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다크투어 풍경 l 2022년 10월 청주의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지에서 참가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다크투어 풍경 l 2022년 10월 청주의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지에서 참가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열군)는 2019년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계기에 주목하여 일련의 기획사업을 진행했다. 우리가 주목했던 공간은 용산의 전쟁기념관이었다. 군대가 만든 한국전쟁의 기억 공간이자 국가의 공식 기억 공간이기도 한 곳이다. 고조선 시대부터 이 땅에서 일어난 전쟁의 역사를 담았다고는 하나 전시물의 60% 이상이 한국전쟁과 관련되었다는 점, 전쟁기념관의 건립 취지가 반공과 반북을 중심으로 하는 전후세대 안보관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전쟁기념관 전시의 핵심은 한국전쟁이다. 군인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영웅들의 이야기, 적대와 힘에 의한 안보라는 논리가 주된 내러티브를 이룬다. 우리는 한국전쟁과 관련한 다른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었다. 전쟁이라는 사건은 어떤 시공간에서 일어나면 군인 뿐 아니라 그 시공간에 있는 모든 이들, 특히 어린이와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도 커다란 고통을 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2019년 전쟁기념관의 한국전쟁 관련 전시내용과 관련한 세 차례의 토론회와 네 차례의 기획강좌를 진행했다. 한국전쟁과 관련한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2020년에는 ‘허락되지 않은 기억’이라는 이름의 사진전을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 군대와 국가가 허락한 기억의 집합소인 전쟁기념관과는 다른 전쟁피해자를 중심으로 전쟁기념관이 기억하기를 거부한 기억들을 전시했다. 그 기억은 한국전쟁 당시 군대가 자신이 지켜야 할 국민들을 학살했던 불편한 기억들이었다.

 

 

2022년 초에 발행한 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 ‘허락되지 않은 기억을 찾아서’
2022년 초에 발행한 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 ‘허락되지 않은 기억을 찾아서’

 

다음 해인 2021년에는 전국으로 전쟁의 고통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누구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책을 만들었다. 제목은 ‘허락되지 않은 기억을 찾아서’. 우리나라 곳곳 80여 곳의 장소, 2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달려 만든 책이었다. 그 공간들을 갈 때마다 우린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우리들 뿐’이라는 것을. 인적 없는 산등성이 어디이거나, 봉분조차 없는 무덤이거나, 넝쿨에 휩싸여 알아볼 수조차 없는 안내문들... 돌아오며 우린 약속했다. 이곳에 사람들과 같이 오자고. 2022년 가을, 책을 활용한 한국전쟁 다크투어를 기획했고 청주의 민간인 학살지를 사람들과 찾았다. 신재욱 활동가의 눈물은 기행에 함께해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자 약속을 지킨 것에 대한 다행스러움이 아니었을까.

 

열군은 우리사회에서 군대의 문제에 주목해 활동하는 시민단체다. 한국군, 워낙 거대한 조직이기에 인권, 민주주의, 평화 등 우리사회의 많은 영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조직 자체의 폐쇄성, 안보정책의 비밀주의 등은 시민사회의 접근과 개입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닫힌 군대를 열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30년이 넘도록 군대가 정치의 전면에 나서 지배권력으로 존재했던 한국사회의 경험으로 군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존재하지 않을 때 파괴되는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를 목격해 왔다.

 

 

올 해는 열군이 창립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창립 10주년을 맞아 열군은 한국군을 ‘열린군대’로 만들기 위한 세 가지 활동방향을 설정했다.

 

열군 창립 10주년 단체사진 l 2024년 4월 26일 열군 창립 10주년 행사 때 회원들과 함께 한 모습
열군 창립 10주년 단체사진 l 2024년 4월 26일 열군 창립 10주년 행사 때 회원들과 함께 한 모습

 

첫 번째는 ‘역사에 열린’ 군대를 만들기 위한 활동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군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함에도 오히려 자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나아가 학살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전쟁 때도 그랬으며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그랬다. 학살과 독재로 얼룩진 과거를 반성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군대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해나가려 한다.

 

두 번째는 ‘시민에 열린’ 군대를 만들기 위한 활동이다. 군대가 안보 및 국방정책의 수행자일 수 있으나 그 목적은 시민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안보 및 국방정책은 시민의 관점에서 수립되고 수행되어야 한다. 군대가 안보 및 국방정책에 관한 독점적 지위를 내려놓고 시민의 요구와 제언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군대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해나가려 한다.

 

세 번째는 ‘평화에 열린’ 군대를 만들기 위한 활동이다. 전쟁기념관이 주되게 던지는 메시지인 적대와 힘에 의한 안보는 지금도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적대와 힘만으로는 평화를 가져오기 어렵다. 대화와 협력, 화해는 평화를 유지하고 앞당기는 가장 유효한 방안일 수 있다. 열군은 한국군을 대화와 화해를 통한 평화의 방안까지 수용할 수 있는 군대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해나가려 한다.

 

 

군대는 양날의 칼과 같다.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자칫 모두를 고통에 빠트리는 위험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군대는 시민에 의해 감시되어야 하며 통제되어야 한다. 작은 힘이지만 군대에 대한 감시자이자 비판적 제언자의 역할을 해나가려는 열군의 활동에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글 | 박석진(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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